1. 곤지암 (곤지암 바위) 광주시 곤지암읍의 중심지인 곤지암리 시내에는 곤지암의 이름 유래가 된 곤지암 바위가 있다. 그는 화강암 바위로 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1m 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며, 큰 바위 윗도리에는 400년 이상 묵은 늙은 향나무가 뿌리를 내리며 주변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가 곤지암이란 간판을 지니기 전에는 바위 모습이 고양이를 닮았다고 해서 묘바위(고양이바위)라 불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곤지암으로 이름이 갈렸을까? 임진왜란 초창기에 충주 탄금대, 달천 전투에서 왜군에게 패해 군사를 죄다 말아먹고 남한강에 뛰어 들어 자살한 신립의 시신을 전쟁 이후에 군사들이 수습해 곤지암 지역에 장사를 지냈다. (신립묘는 경강선 곤지암역 북쪽 산에 있음) 그런데 그 이후, ..
1. 광주 환벽당 2. 광주 취가정 3. 담양 식영정 4. 충효교에서 환벽당, 취가정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환벽당길) 5. 식영정 앞 도로(887번 지방도)에서 바라본 환벽당 언덕 6. 창계천 조대, 용소 7. 환벽당 쌍송 8. 환벽당 돌담길 (쌍송 주변) 9. 환벽당 정문(대문) 10. 환벽당 돌계단이 닦여진 언덕 동쪽 부분 11. 광주 환벽당 12. 환벽당 현판 13. 환벽당 내부 14. 환벽당 연못과 김윤제 집이 있었던 너른 공터 15. 환벽당에 걸린 어느 현판 16. 환벽당 돌담길 (쌍송 방향) 17. 환벽당 돌담길의 끝 부분 (취가정 방향) 18. 취가정으로 인도하는 돌계단 19. 광주 취가정 20. 취가정 현판 21. 취가정 상량문 22. 김덕령의 취시가와 권필의 화답시를 머금은 현판 23. ..
' 무등산 뒷쪽에 깃든 호남 가사문학의 성지, 광주 환벽당, 취가정, 담양 식영정 ▲ 환벽당 ▲ 취가정 ▲ 식영정 겨울 제국이 한참 위엄을 떨치던 새해의 첫 무렵, 덜 추운 날을 가려서 호남 가사문학의 오랜 성지(聖地)이자 누정(樓亭) 문화의 대명사로 추앙을 받는 환벽당과 취가정, 식영정 을 찾았다. 이들은 증암천(창계천)을 사이에 두고 광주(光州) 땅인 서쪽에 환벽당과 취가정, 그리고 전남 담양(潭陽) 땅인 동쪽에 식영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행정구역만 무심히 다를 뿐, 서 로 같은 곳이나 다름이 없다. (환벽당과 취가정이 있는 충효동 지역은 원래 담양 땅이었 음) 게다가 서로 거리도 가까워 한 덩어리로 같이 둘러보면 좋다. ♠ 사촌 김윤제의 별서로 송강 정철이 그의 후광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던 곳 광주 ..
' 남한산성 늦겨울 나들이 ' ▲ 남한산성 장경사 ▲ 지수당 ▲ 연무관 차디찬 겨울 제국이 드디어 그 끝물을 보이던 3월의 한복판에 일행들과 광주(廣州) 남 한산성을 찾았다. 오전 11시에 집을 나서 지하철을 3번씩이나 갈아탄 끝에 남한산성의 서쪽 입구의 하나 인 산성역(8호선)에 이르렀다. 이 역은 해발 100m 고지에 자리해 있어 신금호역(5호선 ), 만덕역(부산3호선)만큼이나 장대한 깊이를 자랑한다. 하여 역을 빠져나오는데만 한 참이 걸린다. 어두컴컴한 지하를 벗어나 산성역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성남시 내버스 52번(성남동 대형주차장↔남한산성)을 잡아탔다. 산성역에서 남한산성 내부(산 성리)로 들어가는 버스는 9번과 9-1번, 52번, 53번이 있는데, 52번은 평일에만 바퀴를 ..
' 광주 무등산 겨울 나들이 ' ▲ 무등산 옛길 3구간 ◀ 충효동 2호 가마터 굴뚝 ▶ 풍암정 다사다난으로 얼룩졌던 묵은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또다시 밝았다. 새해만 되면 심리 상 긍정적인 기대감이 커지기 마련인데, 올해는 제발 만사가 형통(亨通)하기를 염원하며 시간을 가리지 않고 늘 불끈 솟는 나의 역마살 기운을 풀고자 예전부터 목말라했던 무등 산의 뒷통수(광주 금곡동, 충효동 지역)를 새해 첫 답사지로 정했다. 그나마 덜 추운 날을 가려 길을 나섰지만 겨울 제국(帝國)의 한복판(1월)이라 추운 것은 여전했다. 아침 일찍 매서운 새벽 기운을 가르며 영등포역으로 넘어가 광주로 가는 누리 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심전심이라고 견고한 무쇠덩어리 열차 도 나처럼 추운 날씨가 싫었는지 따뜻한 남쪽을 향해 ..
~~~ 봄맞이 광주 대촌동, 칠석동 나들이 ~~~ ▲ 칠석동 은행나무 겨울 제국이 드디어 무너지고 봄이 천하 평정에 열을 올리던 3월의 끝 무렵, 남도의 중심 지 광주(光州)를 찾았다. 광주 지인의 초청으로 간만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자연과 문화 유산에 두루 정통하고 숲과 자연을 강의하는 교수로 꽤 저명한 분이다. 그런 이의 초청을 받았으니 본인 입장에서는 그저 영광스러울 뿐이다. 아침 일찍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4시간 여를 총알처럼 달려 광주역에 발을 내린다. 거기서 지인분 부부를 만나 전남대와 중외공원으로 이동하여 남도 매화(梅花)와 산수유를 구경하고 전남대 북쪽에서 남도 정식으로 며칠을 굶어도 끄떡없을 정도로 가득 배를 채웠 다. 그렇게 점심을 먹자 그들은 광주 답사를 시켜주겠다며 내가 희..
서울 - 118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글 링크 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심우장, 성락원, 선잠단터 2013, 11 ☞ 블로그글 보기 2 종로구 경복궁, 인사동 2006, 1 ☞ 블로그글 보기 3 종로구 창경궁 (1) 2006, 10 ☞ 블로그글 보기 4 종로구 창경궁 (2) 2006, 10 ☞ 블로그글 보기 5 강남구 봉은사 1 (사월초파일) 2007, 5 ☞ 블로그글 보기 6 강남구 봉은사 2 (사월초파일) 2007, 5 ☞ 블로그글 보기 7 종로구 서대문구 세검정, 대원군별장, 홍지문 옥천암 마애좌상 2007, 8 ☞ 블로그글 보기 8 종로구 북한산 금선사 2008, 7 ☞ 블로그글 보기 9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2008, 11 ☞ 블로그글 보기 10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석구상..
* 광주 원산동에 자리한 포충사는 임진왜란 시절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과 그의 아들, 고종후, 고인후 3부자와 유팽로, 안영을 봉안한 사당이다. 1601년 호남 유생들의 건의로 제봉산 밑에 세워졌으며, 1603년 선조 임금에게 사액을 청해 포충사란 이름과 편액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살아남았으며, 1980년에 동쪽 평지에 새롭게 포충사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옛 포충사의 고직사, 충효당 등이 철거되었다. (옛 포충사는 새 포충사 서쪽 소나무 언덕에 자리하고 있음) * 정기관(유물전시관)에 있는 고경명 관련 유물과 서적, 문서들 * 포충사 (새 포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