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안성 아양동 보살입상(왼쪽)과 석불입상(오른쪽) 안성은 미륵불의 고장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늙은 석불이 많이 전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안성 시내인 아양동 주택가 속에 오랫동안 미륵불로 애지중지되던 석불 2기가 있는데, 왼쪽에 키가 큰 석불은 아양 동 보살입상, 오른쪽에 키가 작은 석불은 아양동 석불입상이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양동 보살입상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것으로 고려 때 것으로 여겨진다. 믿거나 말거나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어느 젊은 장수가 무예 수련을 위해 도기리 탑산에서 훌쩍 뛰어올라 알미산을 딛고 비봉산 장수 바위로 넘어가던 중에 실수로 여미륵(아양동 보살입상)의 목을 차서 부러뜨렸다고 한다. 그것 때문인지 그 장수는 전쟁에서 전사했고, 마을 분위기도 조금은 흉흉해져 마을 사람들이 ..

1. 안성 이해룡 고가 서운산 청룡사에서 남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청룡리 마을에 이해룡 고가란 늙은 집이 있다. 초가 와 기와집이 혼합된 18세기 주택으로 안채 상량문을 통해 1797년에 사랑채와 안채가 건립되었음을 고맙게도 알려주고 있다. 집은 남서향으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깥에 'ㅡ'자형의 초가집 행랑채가 있고, 그곳을 들어서면 안마당을 중심으로 'ㅡ'자형 사랑채와 'ㄱ'자형 안채가 연결된 'ㄷ'자형의 기와집 본채 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남쪽에는 중문이 있어 최근 손질된 행랑채와 연결되며, 사랑채는 4칸 반 크기로 민도리집인데, 남쪽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이 있고, 북쪽에는 대청 안채 건너방과 이어져 있다. 안채는 건넌방, 대 청, 안방이 일렬로 배열되..

1. 남사당 바우덕이 사당 청룡사 부도군에서 동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남사당 바우덕이의 사당이 있다. 안성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에 꽤 잘나갔던 남사당 광대패로 바우덕이는 그 조직을 이끌었던 사람이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공사를 크게 벌리던 시절,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가 그곳을 찾아가 신명나게 공연을 펼쳤다. 그 공연에 감동을 먹은 흥선대원군은 그들에게 친히 정3품 벼슬이 사용하 던 옥관자를 수여했는데, 그것을 계기로 천하 남사당패 중에서 최고의 기량을 지닌 남사당패로 명성 을 누리게 된다. 안성 남사당패는 청룡사가 있던 청룡골이 근거지로 바우덕이도 여기서 기량을 익히고 몸을 풀었다. 그는 젊어서 사망했는데, 청룡사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산자락에 묻혀 죽어서도 이곳을 떠나 지 않았..

1. 청룡사 봉향각 대웅전 옆구리에 자리한 봉향각은 'ㄱ' 구조의 팔작지붕 집으로 선방 및 요사로 살아가고 있다. 2. 청룡사 명부전 대웅전 옆구리에 자리한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장보살과 시왕 등 명부(저 승) 식구들의 공간이다. 3. 명부전 지장보살상과 지장시왕도 푸른색 승려 머리를 지닌 금동 피부의 지장보살상이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좌우에 거느리며 중생들 의 인사를 받는다. 그들 뒤로 화려한 색채의 지장시왕도가 후불탱으로 걸려있는데, 그는 1874년에 화 승 한봉 창엽과등삼 등이 조선 왕실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그때 석가여래삼불회도와 아미타여래회 도도 같이 조성되었다. 조성시기와 제작자, 봉안처가 분명한 탱화로 전체적인 도상과 설채법 등이 19세기 후반 서울 및 경기..

1. 청룡사 사천왕문(천왕문) 안성의 대표 명산인 서운산(548m)에는 석남사와 청룡사 2곳의 고찰이 깃들여져 있는데, 그중 청룡 사는 서운산 남쪽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청룡사는 1265년 몽골 원나라에서 넘어온 명본국사가 창건하여 대장암이라 했다고 전한다. 1364년 나옹화상이 크게 중건했는데, 이때 청룡이 서기가 가득 서린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 다. 하여 산 이름을 서운산, 절 이름을 청룡사로 갈았다. 과연 청룡이 구름을 타고 하강했는지는 모르 겠으나 1372년에 청룡사에서 간행한 능엄경이 전하고 있어 고려 후기에 창건된 것은 명확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파괴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관음전, 서별당, 청룡당, 종각..

1. 청룡사 사적비 청룡사 직전인 청룡마을회관앞 3거리에 청룡사의 빛바랜 일기장인 사적비가 있다. 2차선 도로(청룡 길) 한복판에 조금은 외롭게 자리해 있는데, 이는 도로 확장으로 그렇게 된 것이며, 길이 좁기 때문에 비석 접근과 관람에 그리 어려움은 없다. 이 비석은 1712년에 세워졌다. 비문 내용은 승려 나준이 지었고, 글은 직산현감을 지낸 황하민이 썼 으며, 사헌부지평 김진상이 전액을 썼다. 비문에는 고려 후기에 나옹화상이 이곳 절을 중창했을 때,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만난 인연으로 산과 절 이름을 서운산 청룡사라 했다는 것과 조선 숙종 시절에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중건한 사실 등이 담겨져 있다. 비좌 위에 빗돌을 세우고 지붕돌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지붕돌 귀퉁이마다 절의 ..

' 한여름 산사 나들이 ~ 안성 운수암 ' ▲ 운수암 대방 * 마이크로소프트 에지(Edge)나 크롬(Chrome), 스마트폰으로 볼 경우 바로 윗쪽의 음악 플레이어 자리가 공백으로 길게 나오면서 음악이 뜨지 않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플로어(Explorer)로 보는 경우에만 음악과 음악플레이어가 나옵니다. 여름 제국(帝國)이 정점에 치닫던 8월의 첫 무렵, 안성(安城) 운수암을 찾았다. 수도권에서 당일 답사로 간단히 몸을 풀 곳을 물색하다가 운수암이 격하게 땡겨 그곳으로 길을 잡았는데, 12시에 도봉동(道峰洞) 집을 나서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쉬엄쉬엄 이동해 15시에 안성 서북부에 자리한 양성(안성시 양성면)..
' 안성 죽산 나들이 (매산리 석불입상, 죽주산성) ' ▲ 힘차게 뻗은 죽주산성 새해가 밝은지 정말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겨울과 봄의 팽팽한 경계선인 3월 한복판에 이 르렀다. 올해 유난히도 혹독했던 겨울 제국(帝國)은 봄의 해방군에게 밀려 소멸 직전까지 가는 듯 싶었으나 제국의 부흥을 꿈꾸는 겨울의 잔여 세력들이 도처에서 꽃샘추위를 일으켜 시간 이 다시 1~2월로 돌아가는 듯 했다. 이렇게 꽃샘추위의 패기가 잠시 대단했던 시기에 안 성마춤(안성맞춤)의 고장으로 오랫동안 추앙받고 있는 경기도 안성(安城)으로 짧은 여정 을 떠났다. 점심을 간단히 섭취하고 집 부근 방학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2시간 이상을 달려 평택 역에 두 발을 내렸다. 평택역은 경기도 최남단을 장식하고 있는 평택시(平澤市)의 관문으 ..
* 안성 고성산 운수암 고성산 무한성 안에 자리한 조촐한 산사로 1750년에 장씨 보살이 세웠다고 전한다.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절을 중건했으며, 대방에는 그가 남긴 현판이 있다.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등산 수요가 많아 안성,평택권 나들이 명소로 인기가 높다. * 운수암 대웅전 * 1870년에 지어진 운수암 대방 -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대방과 법당의 역할을 했었다. 지금은 종무소와 요사, 공양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법당은 대웅전이 그 역할을 하고 있음) * 운수암 비로전 * 운수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고려 때 조성된 석불로 왜정 말기에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그의 제자리가 어딘지는 알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