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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등사 진신사리보탑

현등사 보광전에는 석가여래의 사리를 머금은 조그만 3층석탑(진신사리보탑)과 지장시왕도, 신중도, 동종 등의 오래된 문

화유산이 깃들여져 있다. (내부 관람 가능)
진신사리보탑 1층에 깃든 석가여래의 사리와
사리장엄구는 원래 현등사3층석탑 뱃속에 있던 것으로 수정사리병과 은으로
된 원통형 사리기로 이루어져 있다.

원통형 사리기에 '성화6년(1470년) 원당인 현등사 탑을 고쳐 짓고 사리 5매를 봉안했으며, 대시주는 대방부인인 송씨와 그

의 딸, 길안현주 이억천, 절충장군 중추부첨지사 구수영이다' 란 명문이 새겨져 있어 고맙게도 조성시기와 시주자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다. 그들 중 구수영은 세종의 아들인 영응대군의 사위이다.
이렇게 왕실의 지원으로 3층석탑을 중건하고 탑 속에 석가여래의 사리를 머금은 사리기를 봉안했으나 나중에 안좋은 손에
해 석탑 뱃속이 싹 털려 사라지고 말았다. 그게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이후 삼성문화재단이 가지고 있던 것을

2006년에 겨우 되찾아왔으며, 보광전 안에 하얀 피부의 조그만 3층탑을 만들어 그들의 보금자리로 삼았다.

 

 

2. 진신사리보탑에 깃든 석가여래의 사리
작고 동그란 존재가 바로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라고 한다. 너무 작다보니 확대경을 설치해 친견하게 했는데, 사리와 사리장

엄구를 봉안할 적멸보궁 진신사리보탑을 크게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3. 보광전 지장시왕도

현등사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지장시왕도가 2개 있다. 보광전에 깃든 이 시왕도는 그림 한복판에 하얀색의 큰 원을 두

고 그 안에 지장보살과 무독귀왕, 도명존자를 두었으며,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사이 위쪽 공간에 조그만 부처를 배치했다.
좌우에는 권속을 4단으로 배치하고, 동자와 판관, 사자, 옥졸(우두,마두,앙발), 장군 등이 대칭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랫

단 중앙에는 홀을 든 판관과 본존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루마리 1개를 든 문관형 판관이 각각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이들 인물의 위에는 8폭 병풍이 있는데 본존 쪽의 양끝 폭을 접어서 원근감을 표현하고 있다. 병풍의 뒤쪽으로는 지장보살

의 머리 위까지 도식화된 구름문양을 표현했다.
부분이 잘려나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1759년 아미타회상도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4. 현등사 신중도

법당 지킴이인 신중도는 가로 122㎝, 세로 123㎝ 크기로 화면을 2등분 하여 존상의 크기를 비슷하게 그려 존상의 위계가
영되지 않았다. 오른쪽에는 범천제석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월천자와 복숭아와 병을 든 동자상을 배치했으며, 왼쪽
단에 날개 깃이 올라간 투구를 쓴 위태천이 그려져 있는데, 얼굴은 이목구비가 명확하고, 코에 비해 눈과 입이 작은 것
이 특
징이다.

이 신중도는 화기에 의해 관허당 설훈, 용봉당 경천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은 현등사에 있는 청동지장보살좌상
조각한 승려이다. 하여 같은 승려에 의해 불상과 탱화가 제작된 아주 흔치 않은 케이스라
18세기 후반 불교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를 받고 있다.

 

 

5. 현등사 석등 중수기

1893년(광서19년) 계사년 7월에 석등을 중수하면서 남긴 중수기이다.

 

6. 현등사 동종

이 동종은 현등사의 유일한 국가 문화유산으로 원래는 남양주 봉선사에 있던 것이다. 73.5cm 높이에 아담한 종으로 왜정
때 현등사로 넘어온 것으로 전
해지고 있는데, 종신을 여러 개의 구획선으로 나누고 그 안에 연잎무늬, 당초무늬, 파도무늬
등을 화려하게 새겨 넣어 장식성을 강조했다. 

두 마리 용이 서로 등을 맞대어 몸을 꼬아 만든 용뉴는 안정감을 주고, 두발을 힘차게 내딛어 천판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서
역동감을 느낄 수 있으며, 둥근 곡면을 이루는 천판에서부터 종의 입으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그 폭을 넓힌 종의 형태도 아

름답다.

이 종은 고려 후기 연복사종에서 비롯된 중원대륙 스타일의 종 양식을 따르고 있다. 특히 종의 중심부를 3개의 융기선으로

구획하고 천판에서 종의 입 사이에 다양한 무늬를 넣었는데, 작은 마름모꼴의 연곽에 구슬 모양의 연꽃봉우리와 천판의 내

림연꽃이 중앙을 향해 보상화문처럼 말려든 형태, 그 위로 표현된 구슬무늬, 종복에 크게 자리잡은 역동적인 연화당초무늬,

하대에 표현된 물거품이 일렁이는 파도무늬 등의 장식 문양은 1469년에 조성된 봉선사 동종과 흥천사 동종, 그리고 1491년

에 조성된 합천 해인사 동종 등 조선 전기의 왕실발원 범종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종의 배 부분에는 반듯한 해서체로 주종기를 돋음새김했다. 주종기는 1619년천보가 짓고 새겼으며, 종을 만든 연유, 종

제작에 사용된 재료의 양과 무게, 발원하는 내용, 참여한 사람 등을 기록했다. 주종장은 일반적으로 주종기를 작성한 천보

로 보고 있는데, 그는 조선후기 승려 주종장 가운데 유일하게 임진왜란 이전부터 활동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어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승장의 계보나 범종의 양식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다.


이 종은 1619년에 조선 전기 궁중양식 범종의 전통을 계승하여 제작된 범종이며, 주조상태도 양호하고 역동적이고 생동감
이 있는 무늬들을 조화롭게 배열하여 범종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이 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조선후기 범종 연구에 중
요한 자료가 되어주고 있다.

 

 

 

 

 

7. 확대해서 바라본 현등사 동종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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