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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둔주봉, 한반도지형(향수바람길)


' 금강 상류에 숨겨진 비경,
옥천 둔주봉(한반도지형)~향수바람길 '
옥천 한반도지형
▲  둔주봉정에서 바라본 옥천 한반도지형



 

겨울의 차디찬 한복판인 2월의 어느 평화로운 날, 대전 옆에 자리한 충북 옥천(沃川)을
찾았다. 옥천 땅에 한반도 비슷하게 생긴 지형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어 그를 찾고자 추
위를 무릅쓰고 출동한 것이다.

햇님이 아직 등청하지 않은 이른 아침, 한강 건너 영등포역에서 경부선(京釜線) 무궁화
호 열차에 나를 담았다. 열차는 2시간을 내달려 옥천역에 이르렀는데, 금강산도 식후경
(食後景)이란 크고 아름다운 명언에 따라 옥천역 부근에서 따끈하게 순대국 1그릇 말고
둔주봉에서 먹을 김밥 2줄을 구입하여(옥천버스 종점에 가격이 저렴한 괜찮은 김밥집이
있음) 안남으로 가는 옥천군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옥천읍에서 둔주봉이 있는 안남면 중심지<연주리(蓮舟里)>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중
간에 장계에서 금강을 건너가는데, 그는 내가 찾아갈 둔주봉과 한반도지형 옆구리도 지
나간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 종일 금강을 지켜봐야 된다.

안남(연주리) 종점에서 남쪽으로 3분 정도 가면 안남초교로 그 직전에 한반도지형을 굽
어보는 둔주봉으로 인도하는 길이 살짝 손을 내민다. 경사도 거의 완만한 그 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둔주봉의 북쪽 입구인 비들목재(점촌재)로 여기서 왼쪽(남쪽)으로 틀어 둔
주봉의 품으로 들어섰다. (길을 그대로 직진하면 피실나루터로 이어짐)


▲  서서히 솟구치는 비들목재(점촌재) 고갯길


▲  비들목재를 넘으면서 바라본 안남면 연주리 지역

▲  둔주봉 능선길과 만나는 비들목재 갈림길 (둔주봉 북쪽 입구)
여기서 직진하면 금강이 있는 피실나루터로 이어진다.



 

  ♠  둔주봉 한반도지형 (둔주봉정)

▲  둔주봉정 북쪽 소나무숲길

둔주봉(屯駐峰, 384m)은 안남면 연주리의 듬직한 뒷산으로 등주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동/서/
남 3면이 금강(錦江)에 접해있고 북쪽만 육지로 이어져 있는데 이 일대는 뫼가 첩첩히 둘러진
산악지대라 강이 곧게 흐르지 못하고 구불구불 굴곡미를 보이며 흘러간다. 그러다보니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속칭 반도(半島)식 지형이 많다.
둔주봉 역시 그런 지형의 하나로 동남쪽 금강 건너에도 비슷한 지형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둔
주봉의 상큼한 양념인 한반도지형이다. 한반도지형의 대명사로 추앙받는 강원도 영월(寧越)의
한반도지형을 시작으로 천하 곳곳에서 그런 비슷한 지형이 발견되고 있는데 옥천에서도 하나
발견되어 괴산 산막이옛길의 한반도지형(☞ 관련글 보기)과 함께 충북 속의 조그만 한반도를
이루고 있다.

이곳도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만 살짝 찾던 숨겨진 곳이었으나 다녀간 사람들의 글과 사진, 입
소문을 통해 찾는 이가 늘자 옥천군청이 2007년 7월부터 9월까지 한반도지형이 잘 바라보이는
둔주봉 2번째 봉우리에 전망대(둔주봉정)를 닦고 산길을 정비했으며 이후로도 계속 정성을 들
여 옥천 제일의 꿀단지로 키우고 있다. 한반도 비슷하게 생긴 지형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나
찾던 동네 뒷산이 전국적 수준의 뒷산으로 성장한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는
않음)

둔주봉 유래에 대해서는 연주리 일대가 풍수지리적으로 장군대좌형(將軍大座形)의 자리로 일
컬어져 거기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지며 '한국지명총람'에 '둔주봉'으로 나와있어 꽤 오래된
이름임을 알려주고 있다. 산봉우리에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하며, 정상부에는 삼국시대 유적
인 둔주봉산성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  한반도지형을 굽어보는 둔주봉정 (한반도지형 전망대)

둔주봉 나들이는 접근성도 좋고 오르기도 편한 비들목재(점촌재)에서 시작하면 편하다. 거기
서 산길을 따라가면 둔주봉정(0.8km), 둔주봉 정상(1.6km)과 무리없이 이어지며 정상에서 다
시 비들목재로 나오거나 고성(1코스), 금정골(2코스), 피실(3코스)로 내려가도 된다. 그 3곳
으로 내려가면 둔주봉을 3면으로 포위하여 흐르는 금강과 만난다. <반대로 고성, 금정골, 피
실에서 올라가도 되나 경사가 각박하여 조금 힘듬>

고성이 둔주봉의 제일 남쪽 끝으로 비들목재에서 3.5km 거리이며 둔주봉과 금강 경계에는 좁
은 비포장길이 펼쳐져 있어 산골 벽지의 운치를 더해준다. 이 길은 피실에서 금정골, 고성을
거쳐 연주리 남쪽의 독락정마을까지 이어진다.

▲  둔주봉정 현판의 위엄

▲  둔주봉정에서 바라본 동쪽(연주리 지역)

비들목재에서 느긋하게 펼쳐진 능선 숲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조촐하게 생긴 둔주봉정이 마중
을 한다. 이곳이 둔주봉의 2번째 봉우리로 금강 건너에 펼쳐진 한반도지형을 속시원하게 바라
볼 수 있는 현장이다. 하여 2007년 여름, 옥천군청에서 둔주봉정과 전망데크를 닦아 한반도지
형 전망대로 세상에 내놓았다.
여기서는 한반도지형과 그 지형을 감싸며 구비쳐 흐르는 금강, 둔주봉 남쪽 능선이 시야에 쏙
들어오며 동쪽(연주리 방향)도 바라보이기는 하나 수목이 적지 않게 시야를 가려 조망은 별로
이다. (북쪽과 서쪽은 산으로 거의 막힘) 그러니 이곳은 오로지 한반도지형을 위한 곳이다.


▲  둔주봉정에서 바라본 옥천 한반도지형

옥천 한반도지형은 대자연 형님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은 아주 기가 막힌 작품으로 금강과 주
변 산들이 조화를 이루며 아주 걸쭉한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속세(俗世)의 때가 거의 느껴
지지 않는 이곳 풍경에 세상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두 눈과 마음이 제대로 위로가 된다.
허나 그가 아무리 한반도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도 제 눈이 안경이라고 나의 침침한 두 눈에는
양말이나 버선처럼 보인다. 하여 나 같은 사람의 그런 시각을 잡아주고자 둔주봉정 안에 동그
란 볼록거울을 설치했으니 꼭 살펴보도록 하자. 그 거울로 보면 맨눈으로 보는 것과 완전 반
대로 다가와 한반도 비슷하게 바라보인다. 인간의 눈과 특수 효과를 넣은 거울의 미묘한 차이
라고나 할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렌즈의 장난일 뿐이다.


▲  볼록거울의 시각 농간, 둔주봉정 볼록거울로 바라본 한반도지형
이렇게 보니 정말 한반도 비슷하게 바라보인다.


▲  얼어붙은 금강에 감싸인 한반도지형의 위엄

한반도지형에는 경작지를 비롯하여 백사장과 숲, 산이 있다. 지형 남쪽에는 뫼들이 칼처럼 솟
아있고 그 좁은 산골에 집들이 여럿 깃들여져 있으며, 지형 북쪽에는 백사장이 펼쳐져 금강의
푸른 물줄기와 스킨쉽을 즐긴다.
동/서/북 3면이 금강에 막혀있고 남쪽 또한 높은 산에 막혀있으니 영월의 청령포(淸泠浦)처럼
육지 속의 외로운 섬이자 하늘의 감옥 같은 곳이다. 동이면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으나 길이
험해 보통 연주리 독락정마을이나 고성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다. 그게 훨씬 접근성이 편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겨울의 한복판이라 강이 얼어붙어 나룻배 또한 강제 휴업에 들어간 상태이
다. 그러니 저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사실상 막힌 셈이다. 얼어붙은 강을 두 발로 건너가는 방
법이 있지만 설익거나 틈을 보인 얼음이 적지 않아 그건 무모하다. 그러니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  둔주봉정 밑에서 바라본 한반도지형

현재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가 전부이다. (그마저도 2개로 형편없이 쪼개
져 있음ㅠ) 그러다보니 이 땅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한반도를 닮은 지형에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다소 있는 것 같다.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더한 거 같음~) 그래서 그런 지형을 찾거나
일부로 만들어 하나 같이 관광지로 요란하게 키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한반도보다 더 넓은 영역을 누비고 살던 사람들이다. 만주와 요동(遼東),
요서(遼西), 하북(북경), 산동반도, 대마도, 왜열도, 연해주 등이 싹 우리의 영역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를 너무 한반도로 국한해서 보거나 그 좁은 땅으로 만족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반드시 주변 오랑캐들을 때려잡고 그동안 잃어버린 땅의 그 몇 배를 회복하여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북한을 흡수하고 옛 땅을 되찾는 그날이 찾아오면 케케묵은 한반도지형
은 싹 내다 버리고 그에 걸맞은 지형을 찾아 키워야 될 것이다.


▲  둔주봉정에서 바라본 둔주봉 산줄기
오른쪽에 높이 솟은 봉우리가 정상, 왼쪽에 하얀 존재는 얼어붙은 금강


둔주봉정에 올라 한반도지형과 그림 같은 주변 풍경에 한참을 심취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둔주봉정 관리아저씨가 살짝 다가와 잘 구경했냐며 말을 건넨다. 그는 9시부터 17~18시(
한겨울에는 일몰 직전까지)까지 이곳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둔주봉정 서쪽에 그가 일을
보는 조그만 초소가 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한반도지형이 양말, 버선 같다고 하니 빙그레 웃으며 둔주봉정 안에 있
는 볼록거울로 한번 보라고 그런다. 하여 그 거울을 바라보니 과연 한반도 비슷하게 바라보인
다. 나 같은 사람에 대비해서 볼록거울까지 설치하여 어떻게든 한반도지형처럼 보이게 하려는
옥천군청의 치밀함에 정말 혀를 내둘렀다.

둔주봉정에서 고성까지 소요시간을 물으니 족히 2시간은 걸린다고 그런다. 원래는 둔주봉 정
상을 찍고 고성으로 내려가 금강 강변길을 따라 연주리로 나오려고 했는데 그 말에 경로를 바
꾸어 정상에서 바로 독락정으로 내려가는 빠른 길을 문의했다. 그러니 정상에선 길이 없고 한
반도지형전망대 남쪽에 그곳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다고 그런다. 하여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
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  둔주봉의 지붕을 거닐다. (둔주봉 정상)

▲  솔내음이 그윽한 둔주봉 북쪽 능선길 (둔주봉정 남쪽)

둔주봉정에서 뻔히 바라보이는 둔주봉 정상까지는 약 0.8km이다. 허나 체감거리는 거의 2배가
넘으니 이정표의 농간에 속지 말자~~!
한반도지형전망대를 나오면 바로 내리막길이 펼쳐지는데 그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 왼쪽(동쪽)
으로 내려가는 길이 살짝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는 없음) 그 길이 둔주봉정 관리원이 알려준
샛길이다. 일단 그 샛길은 접어두고 능선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했다.

하늘과 한층 가까워졌는지 지금까지 거의 보이지 않던 눈이 크게 존재감을 보이며 하얗게 길
을 덮는다. 게다가 산길도 흥분기를 보이며 낭떠러지 비슷한 곳까지 내놓으면서 긴장과 함께
체감거리를 증가시킨다. 다행히 아이젠을 챙겨와 신발에 씌우고 조심조심 다리를 움직였다.


▲  둔주봉 정상으로 인도하는 북쪽 능선길

▲  겨울 제국이 깔아놓은 하얀 카페트 길을 거닐다~!
눈이 쌓인 둔주봉 북쪽 능선길


▲  둔주봉 정상 밑에 자리한 둔주봉산성 표석

둔주봉 정상 직전에 이르니 '둔주봉산성'을 알리는 조그만 표석이 마중을 한다. 거의 한반도
지형만 생각하고 온 터라 '이런 곳도 있었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이곳에도 비록 희미하
지만 옛 사람들이 씌워놓은 흔적이 있었다.

뜻밖의 만남이었던 둔주봉산성은 정상 주변에 다져진 약 150m 규모의 토성(土城)이다. 삼국시
대에 조성되었다고 하지만 위치상 백제(百濟)로 여겨지며, 지금은 그 윤곽만 흐릿하게 남아있
다. 바로 뒤에 있는 정상에 오르면 주변이 훤히 바라보여 큰 산성(山城)이나 요새는 아니어도
조그만 보루(堡壘)를 둘만한 군사적 요충지의 자격이 충분함을 느끼게 한다.

이곳을 지켰던 옛 백제 군사들도 금강 동쪽 건너편의 한반도지형을 봤을 것이다. 허나 그 시
절 한반도지형은 천하 사람들을 홀릴만한 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저 금강이 굴곡을 보이며 빚
은 지형의 하나였을 뿐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몇 배의 영토를 지니고 있었다면 결코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며 이렇게 옥천의 꿀단지로 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나
명승지나 시대와 장소를 잘 만나야 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훤칠한 존재라도 결코 뜨지
못한다.


▲  둔주봉 정상에 둘러진 둔주봉산성의 흐릿한 흔적
토성의 흔적이 봉우리의 일부로 녹아든 채 얇게 남아있다.

▲  드디어 도착한 둔주봉 정상 (384m)

둔주봉 정상은 정상을 알리는 표석 외에는 완전한 대자연의 공간이다. 여기서는 둔주봉의 존
재를 천하에 일깨워준 한반도지형은 보이지 않으나 북쪽과 서쪽의 산하가 훤히 보여 조망도
그런데로 괜찮다. 특히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금강과 그를 둘러싼 뫼들이 생생히 다가와 마치
하나의 파노라마 같으며 그 서쪽 산하 너머로 멀리 대전 외곽 산줄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  둔주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①
구불구불 흐르는 금강과 옥천군 동이면, 안남면 지역 (멀리 대전 외곽의 산들까지)

▲  둔주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②

▲  둔주봉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옥천 안남면, 안내면 지역)

정상에서 10분 정도를 머물며 아무도 없는 자연의 한복판을 마음껏 누렸다. 마음 같아서는 아
비규환의 세상에서 잠시 나를 지우며 이곳에 더 묻히고 싶었지만 내가 있어야 될 곳이 아닌지
라 그러지를 못한다. 하여 아쉽지만 자리를 정리하고 둔주봉정 방향으로 이동하여 한반도지형
전망대 남쪽에 숨겨진 독락정 방향 샛길로 들어섰다.

둔주봉 안내도에도 투명 취급을 받는 샛길이라 사람들 왕래가 적어 잡초가 좀 많았고 경사 또
한 급하여 거의 달리다시피 하여 내려왔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내려가니 산 밑에 아득하게만
보였던 독락정마을이 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270m 고지에서 순식간에 아랫 세상(해발 100m)
으로 내려왔으니 마치 순간이동을 당한 기분이다.


▲  안남천과 금강이 만나는 곳 (독락정마을 앞)



 

♠  금강 거닐기 (독락정, 향수바람길)

▲  금강과 안남천이 만나는 곳에 섬이 빚어져 있다.

독락정마을은 금강과 안남천이 만나는 곳에 자리해 있다. 연주리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지어
진 독락정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경작지로 쓰이는 섬이 있
으며 한반도지형으로 넘어가는 나루터가 있다.


▲  석축 위에 터를 다진 독락정(獨樂亭) - 충북 지방문화재자료 23호

독락정마을의 유래가 된 독락정은 마을 남쪽 언덕에 자리해 있다. 금강과 안남천이 하나가 되
는 현장을 묵묵히 굽어보고 있는 이곳은 둔주봉 주변에서 둔주봉산성터 다음으로 오래된 명소
로 절충장군 중추부사(折衝將軍 中樞府事)를 지냈던 주몽득(周夢得)이 1607년(또는 1630년)에
세웠다고 전한다.

주몽득은 이곳에 정착하여 만년을 지냈으며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서당(書堂)으로 쓰이기
도 했다. 또한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지역 선비와 관리들이 많이 찾아와 풍류를 즐겼다. 1668
년 옥천군수 심후(沈候)가 방문 기념으로 '독락정' 현판을 남겼으며 대청에는 송근수(宋近洙)
가 쓴 율시기문(律時記文) 등 10개 정도의 현판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1772년 정자를 중수했고, 1888년과 1923년 다시 수리를 했으며, 1965년 주몽득의 후손인 초계
주씨 문중에서 다시 고쳐지어 지금에 이른다.

독락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금강을 바라보고자 약간 비스듬하게 동남향
을 취하고 있다. 지형을 이용해 석축을 쌓아 자리를 닦고 그 복판에 네모난 기단을 다져 정자
를 올렸으며, 정자 양쪽 측면은 툇마루를 설치하고자 내부를 4칸으로 지었다. 동,서,북 3면은
돌담을 둘렀고 동쪽에 출입문을 냈으며, 남쪽은 금강을 보는데 지장이 없게끔 담장을 두지 않
고 앞을 완전히 트이게 했다. 대신 서서히 낮아지는 지형을 이용해 석축을 2m 정도로 다져 담
장을 대신했다.


▲  단출한 모습의 독락정
정자의 이름처럼 자연을 벗삼아 혼자 놀기에 딱 적당한 크기이다.


▲  초계주씨의 시조인 한림학사(翰林學士) 주황(周璜)의 위령비(慰靈碑)와
영모각(永慕閣, 뒤에 보이는 기와집)


독락정은 초계주씨의 조그만 성역(聖域)과 같은 곳이다. 독락정 북쪽에 후손들이 사는 영모각
과 주몽득에게 제를 지내는 영모사(永慕祠)가 있으며, 주몽득을 시작으로 이곳에 정착한 것을
기리고자 초계주씨세거비(世居碑)도 한쪽에 세워두었다.
또한 이곳과는 인연이 없지만 초계주씨의 시조인 주황의 위령비까지 세워 시조를 기리고 있다.
주황은 당나라 사람으로 후삼국시대인 907년에 신라로 넘어와 합천 초계(草溪)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고 전한다.

▲  정겨운 모습의 독락정 동쪽 돌담과
맞배지붕 대문

▲  1668년 옥천군수 심후가 썼다는
독락정 현판의 위엄

▲  독락정의 역사를 머금은 독락정 추모기

▲  붉은 피부의 현판, 송근수가 썼다는
'율시기문'일까? 잘 모르겠다.


▲  독락정에서 바라본 둔주봉 정상
방금까지 나는 저 정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문득 눈을 떠보니 독락정
툇마루에서 정상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을 보면
세월도 그렇고 인생도 정말 무상한 모양이다.

▲  독락정마을에서 바라본 금강과 한반도지형

독락정을 지나면 금강과 둔주봉의 경계를 따라 비포장 흙길이 정겹게 펼쳐진다. 얼어붙은 금
강 너머로 보이는 곳이 둔주봉정에서 바라봤던 한반도지형 바로 그것이다. 위에서 보는 것과
달리 강변에서 보니 그냥 숲이 우거진 언덕처럼 평범하게 보인다.

굽이굽이 요동치는 금강과 거의 절벽 수준의 둔주봉 사이에 놓인 비포장길(금강 강변길)은 1
차선 크기로 고성을 지나 피실까지 이어진다. 둘레길과 도보길이 천하에 크게 유행을 타면서
옥천군청도 거기에 숟가락을 얹혀 '향수바람길'이란 도보길을 내놓았는데, 그 이름은 옥천이
낳은 현대시인 정지용(鄭芝溶)의 대표 작품 '향수'에서 따온 것으로 그 코스 중 전설바닷길(
4.5km, 피실나루터~독락정)이 바로 이곳의 신세를 진다.
첩첩한 산주름 속에 묻힌 금강과 산, 숲, 흙길이 어우러진 두멧골의 진수를 보여주는 아주 아
름다운 길로 바다를 지나지도 않는데 왜 '전설바닷길'로 간판을 달았는지 의문이다. 차라리 '
전설의 강변길'이나 '한반도지형길','둔주봉길'이 낫지 않았을까? 이름이야 어쨌든 둔주봉정
에서 한반도지형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꼭 금강 강변길도 거닐어보기 바란다. 나는
한반도지형보다는 이 길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  비포장 흙길의 진수를 보여주는 금강 강변길 (전설바닷길)
가끔 차량들이 오갈 뿐 인적도 매우 드물다. (휴일에는 좀 있는 편) 산바람과
강바람 소리가 전부인 고적한 길로 처음에는 조금만 가려고 했으나 주변
풍경이 너무 고와 그 풍경에 취한 나머지 그만 고성까지 가버렸다.

▲  독락정과 한반도지형을 갈라놓은 얼어붙은 금강
얼핏 보면 얼음이 단단해 보이지만 중간에 설익거나 비리비리한 부분이 있으니
괜히 온몸을 던져 건널 생각은 하지 말자.

▲  한반도지형과 바깥 세상을 이어주는 나룻배 (독락정 나루터)
이곳에서 배를 타고 옥천 속의 섬, 한반도지형으로 들어갈 수 있다.
허나 겨울 제국이 얼음을 꽁꽁 씌워놓으면서 배는 강제로
겨울 휴가에 들어간 상태이다.

▲  강 건너로 보이는 한반도지형과 백사장

▲  한반도지형(왼쪽)과 금강, 그리고 둔주봉(오른쪽) ▼


 
▲  한반도지형의 잘생긴 서쪽 옆구리

▲  독락정마을과는 저만큼 멀어지고..

▲  시야에서 사라진 독락정마을
햇님이 둔주봉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한반도지형과 맞닿은 동쪽 강변길은
벌써부터 어둠에 잠겼다. 강변길이 거의 벼랑처럼 펼쳐진 둔주봉의
바로 동쪽 밑이라 바깥보다 일찍 컴컴해지는 것이다.

▲  고성나루터 직전 (강 건너는 여전히 한반도지형)

▲  둔주봉의 남쪽 끝이자 한반도지형 남쪽을 이어주는 고성나루터

고성은 둔주봉 남쪽 끝이자 독락정에서 피실로 이어지는 길 중간이다. 한반도지형 남쪽을 이
어주는 나루터가 이곳에 있는데, 겨울 제국에게 완전히 굴복당한 독락정 나루터와 달리 고성
나루터는 사람들이 얼음에서 강을 해방시켜 뱃길을 내고자 강 건너편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얼
음을 깨뜨린 흔적이 있다. 저 정도로는 제대로 건너가기도 어렵겠지만 겨울 제국에게 조금이
나마 단죄를 하였으니 겨울도 조금은 긴장을 했을 것이다.

고성을 지나면 강변길은 둔주봉 서쪽으로 넘어가게 되며, 둔주봉이 있는 지형도 한반도지형과
비슷한 반도형 지형으로 그 남쪽 끝이 바로 고성이다. 마음 같아서는 피실까지 가서 점촌고개
를 통해 연주리로 원점회귀하고 싶었지만 그 거리가 길고 일몰이 코앞이라 여기서 그만 발걸
음을 접고 독락정마을로 돌아갔다. 그 발걸음이 얼마나 천근만근처럼 무겁고 섭하던지 몇 번
이나 뒤를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  다시 가까워진 독락정마을

금강 강변길이 길이 좋다보니 고성까지 갈 때도 그렇고 다시 연주리로 나올 때도 그 적지 않
은 거리(3km)가 매우 짧게 느껴졌다.
연주리 중심지(안남면사무소 주변)에 이르러 읍내에서 사온 김밥으로 출출함을 잠시 달래고
17시에 옥천읍내로 나가는 옥천군내버스에 고된 몸을 실었다. 나가는 길에 장계국민관광지에
있다는 청석교를 잠시 보고자 했으나 달님이 햇님을 쪼아대며 일몰을 재촉하니 불투명한 다음
으로 흔쾌히 미루고 옥천읍내로 나왔다.

이리하여 늦겨울에 찾아간 옥천 한반도지형 나들이는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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