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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남주작, 남산 봄나들이



' 서울 도심의 포근한 뒷동산, 남산 봄나들이 '
남산공원 남측순환도로(남산공원길)
▲  남산공원 남측순환도로(남산공원길)
 



 

듣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그 한 글자 봄, 그 봄이 반년 가까이 천하를 지배했던 겨울
제국(帝國)을 몰아내고 천하 만물을 따스히 어루만지던 4월의 첫 무렵에 일행들과 서울
도심의 영원한 남주작(南朱雀)이자 상큼한 뒷동산인 남산을 찾았다.

봄이 도래하면서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 등 온갖 꽃과 나무들이 겨울 몰래 잉태했던 꿈
을 펼치며 앞다투어 봄의 나래를 펼친다. 이럴 때는 정말 집에 있기가 너무 섭하지. 하
여 무조건 집을 나서 나들이나 답사, 등산 등으로 봄의 향연(饗宴)을 즐긴다. 그래야만
나중에 명부(冥府, 저승)에 가서도 꾸중을 듣지 않을 것이다.

봄이 비록 겨울 제국과 제국의 부흥을 꿈꾸는 꽃샘추위를 말끔히 토벌했지만 황사와 미
세먼지 등 다른 세력이 극성을 부리며 기껏 해방에 들뜬 천하를 유린한다. 몽골과 고비
사막 등에서 일어난 봄의 단골 불청객인 황사야 봄에는 늘 찝적거리던 존재라 그렇다쳐
도 중공 잡것들이 악의적으로 날려보내는 미세먼지 패거리들이 나날이 세력을 불려나가
맑은 하늘 보기가 점점 우울해지고 있다. 우리가 남산을 찾은 날도 그 먼지가 작렬하여
시야가 곱지 못했다.
이럴 때는 집에 틀어박히는 것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좋다고 하나 날씨도 좋고 봄꽃
이 유혹하니 그러기가 힘들다. 특히 역마살 끼가 단단히 낀 나는 더욱 그렇다.


▲  벚꽃이 만연한 그랜드하얏트(Grand hyatt) 서울호텔 앞 산책로
(경리단길에서 남산야외식물원으로 넘어가는 길)



 

♠  남산 남쪽 끝에 자리한 남산야외식물원

▲  남산야외식물원 동쪽 산책로

이번 남산(南山) 나들이는 경리단길과 가까운 남산야외식물원에서 그 첫 단추를 여밀었다. (6
호선 녹사평역에서 경리단길을 거쳐 남산야외식물원으로 접근했음)
남산야외식물원은 남산 남쪽 끝자락에 넓게 둥지를 튼 싱그러운 공간으로 예전에는 외인아파
트 2동이 건방지게 남산을 가리며 흉물스럽게 자리해 있었다. 그러다가 1994년 그들을 싹 밀
어버리고 9,811㎡ 부지에 야생화공원을 닦으면서 남산야외식물원은 싹을 틔웠다.

1995년 전국 광역단체 시도에서 옮겨온 소나무 80그루로 팔도소나무숲을 닦았으며, 1997년 2
월 야외식물원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02년 4월에는 이 땅의 산야에서 자라는 야생화 185종
과 나무 93종을 심었고, 생태연못과 조그만 계곡을 덩달아 조성했다. 야생화공원을 포함한 공
원 면적은 59.241㎡, 품고 있는 식물은 10여 개의 주제로 나누어 배치했으며, 현재 식물 269
종 117,132주가 심어져 거대한 야외식물원을 이룬다.

이곳 야외식물원의 중심은 야생화공원이며, 그 외는 그냥 자연공원이다. 숲이 짙고 산책로가
잘 닦여져 있으며, 야외식물원이라고 해서 입장료를 받거나 관람시간에 제한이 있는 것은 절
대 아니다. 언제든 안길 수 있는 포근한 공간이다.


▲  야생화들의 강인한 협동심이 빚어낸 어여쁜 화단

▲  남산야외식물원 야생화공원 산책로

▲  생태계곡 남쪽 종점과 야생화화원
야외식물원 서쪽에는 2002년에 닦여진 생태연못이 있다. 그 연못에서 발원한
조촐한 계곡이 싱그러운 자연을 머금으며 공원을 곱게 수식한다.

▲  생태계곡과 산책로

▲  생태계곡에서 만난 물레방아의 위엄
동그란 물레방아가 이곳의 고운 경치를 크게 돋군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그저 평범한 경치였겠지.

▲  단촐하게 생긴 생태계곡 징검다리
서울 도심에서 거의 흔치 않은 정겨운 징검다리이다.

▲  졸졸졸~~♪ 노래를 부르며 흐르는 생태계곡 (서쪽 구간)

▲  수중식물과 개구리가 나래를 펼치는 생태연못 (동쪽)

2002년에 조성된 생태연못에는 연꽃을 비롯해 많은 수중 동물과 식물이 살아가고 있다. 이제
막 봄에 의해 겨울 제국이 씌운 봉인이 풀린 상태라 수초가 어색한 푸른 머리를 보이며 덥수
룩하게 있지만 곧 여름이 오면 자연 속의 늪지대처럼 무성해질 것이다.
연못은 조촐한 크기로 주변에 산책로와 나무데크길이 닦여져 있으며, 연못 중간에 나무 다리
가 운치를 더한다.

*
남산야외식물원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2동 258-148 (소월로323)


▲  생태연못 서쪽

▲  소나무가 무성한 남산 산책로

생태연못을 지나 서쪽으로 가면 남산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나온다. 남산 남쪽이 대체로 경사
가 각박한 편이라 그 경사를 다소 순화시켜 길을 냈는데, 애국가에도 나오는 남산의 상징 소
나무가 삼삼하여 솔내음이 아주 진하다. 길 중간에는 약수터와 운동시설이 여럿 있으며, 그
길의 끝은 남산 남측순환도로와 만난다.


▲  솔내음이 진하게 깃든 남산 산책로
(남산야외식물원에서 남측순환도로로 올라가는 길)

▲  남산 남측순환도로(남산공원길)에 들어서다



 

♠  남산의 하늘길 거닐기

▲  하늘로 이어질 것 같은 남산 남측순환도로(남산공원길)

남산의 하늘길이자 서울 도심의 남쪽 하늘길인 남산 남측순환도로에 이르자 여기서 정상 방향
인 왼쪽(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때가 때인지라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 산수유 등이 앞다투
어 아름다움을 뽐내며 봄의 향연을 펼치고, 사람들은 그들의 즐거운 향연에 제대로 눈 호강,
마음 호강을 누리며 미세먼지에도 아랑곳 않고 봄꽃놀이를 즐긴다. 그럼 여기서 잠시 남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서울의 한복판이자 도심 남쪽에 누워있는 남산(270m, 또는 262m)은 북악산(백악산), 인왕산,
낙산(낙타산)과 더불어 한양 내사산(內四山)의 일원이다. 서울의 영원한 남주작(南朱雀)으로
북현무(北玄武)인 북악산(백악산)을 바라보고 있으며, 도성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산이란 아
주 평범한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천하에 남산이란 산이 참 많은데, 이들의 공통점은 시내와 아주 가깝고 시민들이 많이 안기는
휴식처이며, 경주(慶州) 남산(468m)을 제외하면 산세가 낮고 완만해 누구든 편히 오를 수 있
는 친근한 산이라는 것이다. 서울 남산도 대체로 그런 스타일로 그 걷는 것도 싫다면 남산을
오르는 시내버스나 시티투어버스,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금세 정상까지 간다.

남산의 원래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으로 그 옛말인 '마뫼'는 남산을 뜻한다. 인경산(引慶山),
잠두봉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1395년 조선 태조(太祖)는 남산을 높여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그를 위한 사당인 목멱신사(木覓神祠)를 산꼭대기에 세웠다. 그리고 이후 매년 제를
올리면서 국사당(國師堂)으로 이름을 갈았다.
남산 능선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한양도성이 걸쳐져 있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전국에
서 날라오는 봉화를 받았다. 조선시대 봉화는 5개 노선이 있었는데, 그 종점이자 중심지가 바
로 남산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한양을 점령한 왜군이 산허리에 왜장대(倭將臺)란 성을 쌓았으며, 병자
호란 이후 어영청(御營廳)과 금위영(禁衛營) 분영이 남산에 설치되어 서울을 지켰다. 왜정 때
는 왜군 헌병대가 산자락에 있었고, 1945년 이후에는 중앙정보부가 1호터널 북쪽에 말뚝을 박
으며 갖은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남산은 비록 인왕산, 북악산(백악산)만은 못해도 도성 경승지로 명성이 자자하여 양반사대부
들이 세운 정자와 그들이 새긴 바위글씨가 즐비했다. 허나 지금은 바위글씨 극히 일부를 빼면
남아있는 것이 없다.
가난한 선비와 하급 관리들이 산자락에 많이 살았으며, 개화기 이후 왜인(倭人)들이 남산 북
쪽과 남촌(南村)이라 불리는 청계천 이남에 터를 닦고 살았는데, 왜정 때는 남산도서관 자리
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남산 중턱에는 왜성대공원과 경성신사(京城神社)를 지으면서 그들
만의 꼬질꼬질한 놀이터로 만들기도 했다.
특히 조선신궁을 짓는 과정에서 남산의 오랜 성역이던 국사당이 신궁보다 높은 곳에 있다며
왜정이 속좁게 징징거리자 어쩔 수 없이 인왕산(仁王山)으로 자리를 옮기는 비운을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남산의 중심은 토박이 목멱대왕에서 왜열도의 온갖 잡귀들로 바뀌었다.
그렇게 왜정이 남긴 잡다한 자국들은 1945년 이후 대부분 지워졌으나 조선신궁 계단과 일부
소소한 흔적들은 자신의 정체를 꼭꼭 숨기며 구차한 목숨을 연명한다.

196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케이블카가 놓여 남산의 이름 두 자를 떨쳤고, 1965년 조선신궁
자리에 남산도서관을, 1969년에는 백범 김구(白凡 金九)의 동상을 세워 주변을 백범광장으로
삼았다. 1973년에는 국립극장이 지어졌으며, 1975년에는 6년의 대공사 끝에 천하 최대의 타워
인 서울타워(남산서울타워)가 완성되어 남산의 높이를 배로 높였다. 이 타워는 1980년에 공개
되어 남산과 서울의 굳건한 상징이 되었다.


▲  벚꽃비가 우수수 대지를 적시는 남산 남측순환도로

비록 친일파 떨거지가 지은 것이긴 하나 우리 애국가에 보면 '남산 위에 저 소나무'란 구절이
나온다. 그 구절에서 보이듯 남산은 북악산(백악산)과 더불어 소나무로 유명했는데, 특히 금
송(金松)이 많이 자랐다. 소나무 외에도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며 산을 아름답게
수식하고 있고, 도심 한복판에 솟아있어 학의 등에 올라탄 듯 국보급의 조망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산 곳곳에 남산이 베푼 약수터가 뿌리를 내리며 나그네의 목을 아낌없이 축여주고 있
는데, 그중에서 부엉바위 약수터가 제일 유명했다. 허나 이 약수는 남산3호터널이 뚫리면서
그 혈이 막혀 사라진 상태이다. 그 외에 여러 약수터가 있으나 도심 속에 있다는 단점으로 목
숨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이며, 문을 닫은 약수터도 적지 않다. 또한 그 흔한 계곡도 거의 남
아있지 않으며, 겨우 실처럼 흐르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여럿 있을 뿐이다.

남산은 남측순환도로(남산공원길)와 북측순환도로, 그리고 여러 갈래의 탐방로가 있는데, 장
충단공원과 국립극장, 필동(筆洞), 남산골공원, 백범광장, 남산도서관, 남산야외식물원 등에
서 오르는 길이 있다.
또한 한양도성과 장충단공원, 남산봉수대, 와룡묘, 한양공원 표석, 남산골한옥마을(남산골공
원) 등의 문화유산과 백범광장, 안중근기념관, 남산야외식물원, 남산서울타워 등의 명소를 지
니고 있으며, 산 전체가 남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도심 속 나들이, 산책 명소로 그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서울을 찾은 타 지역 사람들과 외국인 잡것들 등 외래 관광객의 1/3 이상
이 남산을 찾는다고 함)

남산이 없는 서울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도심 속의 허파이자 꿀단지로 남산이 있으니
인근 북악산과 인왕산, 경복궁 등의 조선 왕궁이 합세해 도심의 녹지 비율이 좀 되는 편이지
그가 없었다면 서울은 더 지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개인적으로 나의 옛 추억이 몇 권
씩 녹아있는 현장으로 나에게도 꽤 의미심장한 곳인데, 내가 제일 많이 안긴 산이 바로 남산
으로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500회 이상은 올랐던 나의 원조 즐겨찾기 명소이다.


▲  남산 포토아일랜드 남측지점에서 바라본 천하 (이태원, 용산구 방면)
서토(중원대륙)에서 불법적으로 날라온 더러운 미세먼지에게 서울의 하늘을
도둑질 당했다.

▲  남산 포토아일랜드 남측 지점에서 바라본 남산서울타워
미세먼지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남산서울타워 조차 희미하게 다가온다.

▲  다시 남측순환도로를 거닐다 (정상 방향)

▲  한양도성과 만나기 직전 남측순환도로

▲  고개를 내민 한양도성(漢陽都城, 사적 10호)
남산 정상을 코앞에 둔 남산서울타워 종점(02, 04번 종점)에 이르니 온갖
관광객들로 뒤엉켜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  남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길 (남산서울타워 종점에서 정상 방향)
남산서울타워 종점에서 서쪽 오르막길을 3분 정도 오르면 남산 정상과
남산서울타워 밑에 이르게 된다.


▲  서울 도심의 남쪽 머리, 남산 정상(270m)

* 남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남산동, 회현동 / 용산구 용산동2가, 후암동 
* 남산공원 홈페이지는 윗 사진을 클릭한다. (중부공원녹지사업소 ☎ 02-3783-5900)



 

♠  남산 정상 주변

▲  남산 팔각정(八角亭)

하늘과 맞닿은 남산 정상에는 남산서울타워와 팔각정, 남산봉수대가 둥지를 틀고 있다. 남산
서울타워는 남쪽, 팔각정은 중앙, 남산봉수대는 북쪽에 각각 자리해 있는데, 그중 인파가 가
장 많은 곳은 남산서울타워(높이 236.7m)와 팔각정 주변이다.

팔각정은 남산서울타워와 더불어 남산의 주요 장식물로 이곳에는 원래 1959년에 이승만(李承
晩) 대통령을 치켜세우고자 세운 우남정(雩南亭)이 있었다. 여기서 우남은 이승만의 호로
1960년 4.19의거로 그가 물러나자 바로 철거되었다.
이후 1968년 11월 탑골공원 팔각정을 모델로 삼아 지금의 팔각정을 지었으며, 남산 정상을 수
식하는 존재로 삼았다. 정자 서쪽에는 한양도성 여장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산바람이 주변
에 늘 머물고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정자 자체는 60년도 채 안된 존재이나 관광객들로
늘 붐비며, 매년 1월 1일 새해 해맞이 행사가 성황리에 열린다.


▲  옛 국사당(國師堂)터 표석

남산 정상은 늘 사람들로 미어터지지만 팔각정 부근 구석에 누워있는 국사당터 표석에는 눈길
을 주는 이들이 거의 없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지나는 이들의 눈길과 관심을 호소하나 거의
외면을 받는 국사당 표석, 표석에 쓰인 국사당은 앞서 언급했던 남산의 수호신 목멱대왕의 사
당으로 1395년에 태조가 세웠다.
1404년에 목멱대왕을 호국(護國)의 신으로 높이면서 목멱신사(木覓神祠)라 불리기도 했던 남
산의 성역이자 중심이었으나 1925년 왜정이 조선신궁을 지을 때 국사당이 그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에 쓸데없이 아니꼬움을 드러내면서 다른 데로 옮기라고 난리를 쳤다. 그래서 태조와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기도를 했던 곳이라 전하는 인왕산 선바위 밑으로 눈물을 머금고 이사
를 가게 되었고, 목멱대왕의 남산은 왜열도의 온갖 잡귀들이 판을 치는 일그러진 현장이 되었
다.

국사당을 핍박했던 왜정도, 조선신궁도 다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그곳에 건방지게 들어앉던 왜
열도의 잡귀들도 추방되었지만 남산의 주인인 국사당은 끝내 제자리로 오지 못하고 인왕산에
뿌리를 내려 선바위와 함께 무속신앙의 성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집과 탑, 비석 등의 부동산 문화유산은 가급적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맞겠지만 사람들로 미
어터지는 이곳에 다시 와봐야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국사당 신들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
. 그만큼 남산은 많이도 변했다.


▲  남산 목멱산봉수대(木覓山烽燧臺) - 서울 지방기념물 14호

정상 북쪽에는 남산의 오랜 상징물인 남산봉수대가 도심을 바라보며 우뚝 자리해 있다. 남산
의 옛 이름을 취해 목멱산봉수대(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목멱산봉수대터')라 불리기도 하며,
서울에 있다고 해서 '경(京)봉수대'란 별칭도 있으나 그냥 속편하게 남산봉수대라 불러도 크
게 문제는 없다. 어차피 남산이나 목멱산이나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봉수대란 불을 피우거나 연기를 이용하여 변방에 소식을 알리던 옛날 통신 수단으로 주로 산
꼭대기에 설치되었다. 낮에는 연기로 알리고, 밤에는 불을 피워 소식을 전했으며, 비가 많이
오는 경우에는 봉수지기가 직접 다음 봉수대까지 힘들게 달려가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봉수대는 크게 5개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변경인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
滿江), 남해바다에서 시작하여 남산을 종점으로 삼았으며, 평소에는 봉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다다르면 3개, 경계를 넘으면 4개, 전쟁이 터지면 5개를 올렸다.

전국 봉수대의 종점 남산봉수대는 1394년에 설치되어 하루도 연기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으며, 동쪽에서부터 서쪽을 향해 5개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1895년 봉수
제도가 폐지되면서 문을 닫았고, 왜정 때 싹 철거되면서 그만 그 위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청구도(靑邱圖)를 통해 봉수대터 1곳을 발견하니 그곳이 지금 봉수대로 철저한 고증을
통해 1994년에 복원되었다. (나머지 4곳은 아직도 위치를 모른다고 함;;)

남산봉수대는 벽돌로 쌓은 5개의 봉수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은 불과 연기를 피울 일이
없는 죽은 봉수대로 남산 정상을 수식하는 상징적인 존재이자 조선시대 봉수제도의 중앙봉수
대란 의미 밖에는 없다. 그것이 현역에서 물러난 사물의 쓸쓸한 뒷모습이다. 봉수대는 관람이
가능하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가히 장관이라 이곳이 왜 조선 봉수대의 중심이 되었는
지 이해가 될 것이다. 남산이 서울 한복판에 솟아 있고 조망이 뛰어나 사방에서 날라오는 봉
수대 연락을 받기에 아주 좋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울에는 남산 외에도 무악봉(毋岳峰) 동봉수대와 봉화산(烽火山) 봉수대(아차산봉수
대터), 봉산 봉수대, 개화산 봉수대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근래에 복원된 따끈따끈한
상태로 봉산과 어설프게 재현된 개화산봉수대를 빼고 모두 서울시 지방기념물의 지위를 누리
고 있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1


▲  벽돌로 잘 지어진 목멱산봉수대
불을 피우는 봉수대는 벽돌로 쌓고 그 밑도리는 성벽처럼 돌을 다듬어서 쌓았다.
1994년에 복원된 상태라 고색의 때는 채 익지 못했으며 아직까지는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  목멱산봉수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서울 도심은 어디로 갔지?)
천하의 최대 민폐덩어리 중공이 보낸 미세먼지의 농간으로 바로 밑인 서울
도심도 짙은 안개에 감싸인 듯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차라리
저게 안개였으면 좋겠다.

▲  남산 정상에 묻힌 85타임캠슐
1985년 10월 17일에 묻은 것으로 딱 500년 뒤인 2485년에 봉인을 푼다고 한다.
500년 전 사람들의 물건을 본 그들의 반응은 과연 어떠할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  남산 숲길 (북측순환도로로 내려가는 길)

정상이란 자리는 오래 머물려고 들면 반드시 탈이 나는 법, 게다가 남산은 어린 시절부터 수
없이 안겼던 곳이라 20분 정도 머물고 왔던 길로 내려가 북측순환도로로 질러가는 숲길로 들
어섰다.
이 숲길은 숲이 울창한 아름다운 길로 남산 정상과 북측순환도로, 장충단공원을 빠르게 이어
준다. 예전에는 시멘트 계단길로 닦여져 있었고, 길 좌우에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으나 길을
순화시키면서 철조망을 없애고 계단을 크게 줄였다. 허나 길의 상당수는 여전히 시멘트로 되
어 있어 그 점이 아쉽다. 산에 걸맞게 흙길로 깔았다면 발걸음이 더 즐거웠을텐데 말이다.


▲  남산의 숨겨진 숲길 (남산약수터 방면)

숲길을 조금 가다보면 샛길 하나가 살짝 손을 내민다. 그 길은 한양도성 남산약수터 주변 구
간으로 이어지는 따끈따끈한 숲길로 근래 닦여졌는데, 2010년 이후 금지된 땅에서 해방된 남
산의 숨겨진 속살로 성곽 조망대로 이어지며, 성곽 조망대에서 한양도성 밑도리를 따라 남측
순환도로 시작점(남산약수터 입구)까지 이어진다.


▲  아직까지 금지된 구역으로 묶여있는 성곽 조망대 남쪽 한양도성

▲  성곽 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국립극장, 장충동 주변)
여전히 미세먼지 밑에 가려져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숲길 성곽 부분에는 성 안과 성 밖을 이어주는 나무 계단이 닦여져 있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
된 귀한 몸을 배려해 성곽 여장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통로를 내었는데, 북쪽으로 돌출된
부분에 성곽 조망대가 닦여져 있다.


▲  북쪽을 향해 거칠게 달려가는 한양도성 (성곽 조망대 북쪽)

성곽조망대에서 나무 계단을 통해 성 밖으로 넘어가면 가파른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여기서
남산약수터 입구 갈림길까지는 2010년 이후에 개방된 구간으로 성 바깥에 탐방로를 닦았다.
경사가 다소 거칠어 올라갈 때는 다소 진땀을 빼야 되며, 성곽길(성곽 안쪽)은 성곽 보존과
자연보호 때문에 아직까지 통제의 봉인에서 풀리지 않았다. 하긴 속세에 너무 풀어버리면 남
산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


▲  성곽 바깥 탐방로 (남산약수터 입구 방향)

▲  각박하게 펼쳐진 성곽 바깥 탐방로 (성곽 조망대 방향)

▲  다시 만난 남측순환도로 (남산약수터 입구)

성곽 탐방로를 내려오면 다시 남측순환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남쪽)은 남산 정상, 왼
쪽은 국립극장 방면이며, 성곽은 도로에서 잠깐 끊겼다가 길 건너편에서 다시 부활하여 제 갈
길을 간다.
우리는 왼쪽 길로 접어들어 국립극장을 거쳐 동대입구역(3호선)으로 내려갔다. 이미 정상을
찍고 내려왔으니 또 올라갈 필요는 없고 오로지 뚜벅이 길로 이용되는 북측순환도로(국립극장
~소파로)도 종종 복습을 하는 길이니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하여 남산 봄꽃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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