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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원사 대방(염불당)

대웅전 뜨락 좌측에 자리한 대방(염불당)은 넓직한 팔작지붕 건물로 공덕동 동도공고에 있던 흥선

대원군의 별장인 아소정의 본채 건물을 업어와 손질한 것이다.

 

1960년대에 봉원사 주지였던 영월은 6.25 때 파괴된 절 건물을 다시 짓고자 궁리를 하였는데, 마침

식민사관 쓰레기의 두목급이었던 이병도 개잡것들이 박정희 정권의 비호를 받아 동도공고를 강제로

빼앗고 그곳에 깃든 아소정을 절단을 내고자 헐값에 내놓았다. 하여 아소정 본채와 그에 딸린 석물을

구입하여 도화주 김운파 등과 1966년에 축소/변형하여 대방으로 삼았다.

건물 내부는 절 스타일에 맞게 변형을 주더라도 외형은 원래 모습으로 했으면 좋으련만 당시 인식 부

족으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이 무지하게 아쉽다.

 

비록 아소정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지 못한 채,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유일하게 남은 아소

정의 흔적으로 건물 자재는 대부분 아소정 것이며, 그 시절 현판이 걸려 있어 그런데로 흥선대원군의

독한 향기를 뿜어낸다. 게다가 경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 기존 크기에서 축소했다는 것이 저 정도이니

원래 모습은 대원군의 생전의 위엄처럼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봉원사의 손길로 이곳에 왔으니 망정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나 단체가 아소정 본채를 구입했다면 자칫

아소정 건물은 완전히 절단났을지도 모른다.

 

2. 봉원사 대웅전

봉원사의 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 집이다. 그는 봉원사가 연세대학

교 자리에 있던 시절부터 있던 것으로 1748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조금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18세기 중반 건축물로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68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는데 1990년대 초까지만 해

도 서울에서 지정문화재의 지위를 누린 사찰 건축물은 화계사 대웅전, 흥천사 극락전과 명부전, 봉은

사 선불당이 고작이었다. 그만큼 일찌감치 서울 지역 조선 후기 사찰 건축물의 대표작으로 평가를 받

았던 것이다.

 

그렇게 착했던 봉원사 대웅전은 1991년 삼천불전을 무리하게 짓는 과정에서 전기 누전으로 홀라당 태

워먹고 말았다. 그때 영조가 내린 봉원사 현판을 비롯해 건물 내부를 장식하고 있던 조선 후기 탱화들

이 죄다 잿더미가 되었으니 6.25 시절의 피해만큼이나 그 안타까움은 무지하게 컸다.

이후 2년 동안 공사를 벌여 1993년에 생전의 모습과 비슷하게 일으켜 세웠지만 떠나간 지방문화재의

지위는 되찾지 못했으며, 승려 이만봉이 탱화와 단청 대부분을 그려 건물 내부는 매우 화려하다.

 

3. 대방에 걸린 봉원사 현판의 위엄

운강 석봉이 쓴 현판 글씨이다.

 

4. 대방 앞에 놓인 연꽃무늬 석물

1960년대 아소정과 함께 이곳으로 넘어온 석물이다. 조선 후기 것으로 그에 대한 자세한 사연은 모르

겠다.

 

5. 대방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위엄

 

6. 봉원사 삼천불전

경내 우측에 자리한 삼천불전은 경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 이름 그대로 3,000불을 머금고 있다. 이곳

에는 1945년에 지은 46칸짜리 광복기념관이 있었으나 1950년 9월 25일 서울 수복을 둘러싼 우리군

과 북한군과의 싸움에서 무심한 총탄에 쓰러졌으며, 그때 영조의 봉원사 현판과 이동인, 김옥균의 유

물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후 터만 남아오다가 1988년 삼천불전을 짓기 시작하여 1997년 완성을 보았다. 무려 9년에 걸쳐 지

은 이 건물은 210평 규모로 대들보 무게만 7톤을 헤아린다고 하며, 멀리 알래스카에서 227년 이상 묵

은 나무를 수입하여 만들었다. 또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 본 건물의 특징인데, 절을 크게 돋

보이게 할 겸, 삼천불전을 짓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를 짓는 과정에서 누전으로 소중한 대웅전을 떠

나보내는 비극을 겪었다. 그런 대웅전의 희생으로 태어난 것이 바로 삼천불전이 되겠다.

 

건물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가 이 큰 건물의 주인장이다. 그를 중심으로 좌우에

조그만 금동불 3,000불을 가득 채워 두 눈을 부시게 하는데, 모두 중생의 돈을 받아 지은 원불이다.

그리고 내부 구석에는 영가들의 공간을 작게 두었다.

 

7. 대웅전에서 바라본 대방

 

8. 운수각

대웅전 좌측에는 조그만 건물 3동이 연이어 자리해 있다. 대웅전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은 운수각으로

고참 승려의 생활 공간이며, 그 옆에 조금은 낡아보이는 맞배지붕 건물은 일정 기간 동안 혼백을 봉

안하는 영안각으로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196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겉 연령은 100년은

되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좌측에 있는 1칸 건물은 전씨영각으로 평생 모은 재산을 절에 시주한 전성기 부부의 위

패를 봉안하여 매년 기일에 절에서 제를 지낸다. 역시 절이나 속세나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

이다. 봉원사에서는 그들을 부처 시절의 급고독장자로 비유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9.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석조관세음보살상

이글거리는 두광을 지닌 하얀 피부의 관세음보살이 용선을 타고 있다. (관세음보살상 뒤로 칠성각이

바라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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