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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월성 남문 옹성

명월성은 제주도에 아주 흔한 현무암으로 만든 평지성이다. 1510년 제주목사 장림이 명월포(한림읍)

가 방어에 취약하다 여겨 지역 백성들을 동원하여 만든 목책에서 비롯되었는데, 1592년 제주목사 이

경록이 현무암을 동원해 석성으로 크게 증축했다.

이곳 성의 규모는 둘레 1,360m, 높이4.2m이며, 동문과 서문, 남문 등 3개의 성문을 두었다. 그리고

성내에는 진사 3칸, 객사 3칸, 사령방 2칸, 공소 2칸, 공수 2칸, 무기고 4칸, 도청 4칸, 진고 4칸, 창대

청 3칸, 중화청 2칸, 진졸청 3칸, 창고 4동(2칸 규모) 등을 두었으며, 만호 1명, 치총 4명, 수솔군 82

명, 성정군 330명, 유직군 99명, 진리 22명, 서기 30명, 봉수와 연대를 지키는 별장 54명, 봉군 132명

이 이곳에 배치되었다. 성내에는 용천수를 풍부하게 베푸는 샘(개명물)이 있어 물 걱정은 없었다.

 

1764년에 어사 이수봉이 조정에 명월성을 지키는 조방장을 만호(종4품 무관)로 승격시켜줄 것을 건

의하여 이때부터 만호가 다스리는 곳이 되었다. 명월성 만호는 제주도 사람으로 하여금 삼망(관리를

발탁할 때 공정한 인사행정을 위해 3명의 후보자를 제왕에게 추천하는 것)의 단계를 거쳐 뽑도록 했

다.

왜정 때 대부분 파괴된 것을 20세기 중반 이후에 조금씩 복원 재현했다. 하여 지금은 남문(문루, 옹

성, 치)과 남문 주변 성곽 300m 정도만 있다. (명월성은 '명월성지'라는 이름으로 제주도 지방문화유

산으로 지정되어 있음)

 

2. 서쪽에서 바라본 명월성 남문 문루

명월성은 성곽과 문루, 옹성 윗도리까지 흔쾌히 개방되어 있다. 하지만 여장과 난간 등의 안전시설이

전혀 없으며, 성곽길은 까칠하고 울퉁불퉁한 돌길이라 탐방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성곽길에서

넘어지거나 벼랑 수준의 성곽 밑으로 떨어지면 정말 답이 없음)

 

3. 명월성 남문에서 바라본 동명리와 옹포리의 푸른 들녘과 그 너머로 보이는 한림읍 중심지

 

4. 옹성에서 바라본 명월성 남문

남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 형태이다. 밑도리 가운데를 성문으로 삼았으며, 그 좌우

는 현무암으로 단단하게 성벽을 다졌다.

 

5. 남문 옹성에서 바라본 명월리 지역

 

6. 명월성 만호 112명의 이름과 근무기간이 적힌 검은 피부의 길쭉한 비석 (앞면)

1764년 명월성은 만호(종4품 무관)가 관리하는 성이 되었다. 이때부터 1895년까지 이곳을 거쳐간 만

호는 112명에 이른다.

 

7. 명월성 남문 안쪽에 있는 비석들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훨씬 작은 키의 비석 5기가 모여있다. 이들은 명월성을 다스렸던 만호의

공덕비로 비좌와 비신으로 이루어진 아주 단출한 모습들인데, 오른쪽 끝 비석은 특별히 지붕돌을 지

닌 감실을 만들어 그 안에 비석을 두었다.

 

8. 지붕돌 감실에 들어있는 비석

1823년에 세워진 명월성 만호 '강~~'(한자를 모르겠음 ㅠ)의 추사비이다. 추사비는 선정비와 불망비

의 일종이다.

 

9. 명월성 만호 112명의 이름과 근무기간이 적힌 검은 피부의 길쭉한 비석 (뒷면)

 

10. 명월성로 동쪽에 있는 명월성 동쪽 성곽

 

11. 명월성 동쪽 성곽

명월성은 왕년처럼 1,360m를 온전히 달리고 싶다. 허나 복원 재현된 것은 남문 주변 300m 내외가 고

작이라 조금 달리다가 끝나버린다.

 

12. 명월성 동쪽 성곽과 그 옆을 지나는 일주서로

 

13. 명월성 남문 동쪽 성곽 (서쪽 방향)

 

14. 명월성 남문 주변에서 바라본 동명리, 옹포리, 한림읍내, 남해바다

 

15. 명월성 성곽 밖에 뿌리를 내린 어느 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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