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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승가사 북쪽 480m 고지에 자리한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이하 마애불)은 승가사 경내에서 100m 정
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승가사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비봉능선의 일원인 사모바위의 바로
남쪽 밑이다.
승가사에서 승가대사상과 더불어 경내에서 가장 늙은 보물이나 문화유산 지정 명칭은 '승가사 마애
여래좌상'이 아닌 지역 이름을 딴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이다. 보통은 그 불상을 소유하고 있
거나 관리하는 절의 이름을 붙이기 마련인데, 경내와 약간 거리가 있고 승가사 소유가 아닌 국가 소
유로 되어 있어서 지역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문화유산 지정 명칭은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
좌상')
이 마애불은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왜정(倭政) 시절에 크게 삐뚤어진 왜
열도 학자잡것들이 고려 때 것이라며 지들 멋대로 개소리를 했는데, 월북미술가인 김용준이 1947년
12월 14일자 경향신문 칼럼에
'눈썹과 눈으로부터 코 입술이 모두 예쁘고 시원스런 표현이라든지 신라 석조의 특색인 턱 아래 한
곡선을 그어 아래턱을 만든 솜씨며, 얼굴 모양의 턱이 꽉 받치고 원만후덕하고 복스러운 맛이라든지
의복과 가부좌의 자세며 8각형으로 된 천개(天蓋)를 반쯤 돌을 파고 넣은 것과 연좌(蓮座)의 유려한
선' 등을 들어 신라 것이라 평가했다.
서울에서 가장 늙은 마애불인 삼천사지(三千寺址) 마애여래입상도 신라 말~고려 초기 것으로 여겨
지고 있어 이 둘은 서로 나이가 비슷하다.
직각을 이루며 솟은 거대한 바위의 남쪽 피부에 얇게 홈을 파고 돋음새김으로 도드라지게 결가부좌
로 앉아있는 불상을 새겼는데, 그의 건강을 위해 전실(前室, 보호각)을 만들고 머리 위에 8각의 머릿
돌(천개)을 끼어 얼굴을 보호했다. 그러다 보니 건강 상태는 양호하며, 피부도 얼굴 일부를 빼고는 하
얀 편이다.
허나 그렇다고 그의 상태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1968년 김신조의 공비패거리가 서울에 침투했을
때, 이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게 총상을 입었던 것이다. 하여 마애불은 생애 최초로 큰 수술
을 받기도 했다.
그의 갑옷과 같던 보호각은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 속에 사라지고 보호각을 끼던 구멍 4개만 윗쪽과
중간에 아련히 남아있다. 아마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자연재해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2.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의 위엄
마애불의 얼굴은 후덕한 인상의 승가대사상과 달리 조금 경직되고 근엄한 표정 같다. 이마 중간에는
백호가 살짝 찍혀 있고, 진한 눈썹은 무지개처럼 구부러져 있으며, 두 눈은 감겨 있어 눈동자가 보이
지 않는다. 코는 끝이 두툼하고 입술은 두꺼우며, 붉은색을 칠한 흔적이 있는지 빨간 기운이 조금 남
아있다. 귀는 중생의 소리를 모두 들으려는 듯 어깨까지 축 내려왔으며, 볼살이 좀 많다.
머리에는 무견정상(無見頂相, 육계)이 두껍게 솟아 있는데, 바로 위에 머릿돌을 끼워 넣어 앞으로 크
게 돌출시켜 그의 모자로 삼았다. 모자가 큰 덕분에 얼굴에는 세월이 훈장처럼 달아준 검은 여드름이
여럿 있는 것 외에는 멀쩡하며 피부도 하얗다. 그리고 모자 밑부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몸통과 머리를 이어주는 목에는 삼도(三道)가 그어져 있고, 어깨는 꽤나 단련을 했는지 당당하고 듬
직한 모습이다. 불상이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 어깨와 가슴, 젖꼭지를 속시원히 드러내고
왼쪽 어깨를 옷으로 가린 이른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옷 스타일을 하고 있는데, 우견편단은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이 단연 으뜸으로 신라 후기부터 고려시대 불상에 많이 나타난다.
몸에 걸친 옷은 얇은 편으로 왼쪽 어깨와 배, 두 다리를 가리고 있으며, 왼팔에 묘사된 옷주름은 세로
로 그어져 있어 기하학적인 추상성(抽象性)을 드러내고 있다.



3. 속세와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을 이어주는 108계단 (승가사 경내 방향)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은 아주 궁벽한 곳에 숨겨져 있다. 그러다 보니 속세에서 그를 이어주는 길도 승
가사 경내 뒤쪽에 닦여진 108계단이 유일하다. (예전에는 사모바위로 올라가는 길도 있었으나 폐쇄됨
) 하여 마애불을 친견하고 이 108계단을 다시 내려와야 된다.


4.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에서 바라본 북한산(삼각산) 남쪽 자락과 서울 시내 (남쪽 방향)
이곳은 북쪽과 서쪽, 동쪽이 높은 바위와 산으로 막혀있고, 오로지 승가사가 있는 남쪽으로만 조망이
트여있다. 하여 그 남쪽 틈을 통해 북한산 보현봉능선과 형제봉능선, 서울 시내가 두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중공 잡것들이 악의적으로 날려보낸 미세먼지 패거리로 인해 북한산 남쪽 자락 너머의 세상은
완전 뿌옇게 보인다.

5.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가슴을 비롯한 상반신은 꽤 묵직한 모습으로 거대한 마애불의 위엄을 더욱 드높인다. 허리는 밑부분
이 쏙 들어가 괜찮은 몸매를 보이고 있으며 팔은 강철처럼 매우 두꺼워 보인다. 그리고 오른손은 무릎
에 대고 왼손은 배꼽 밑에 두어 이른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제스쳐를 취했다. 또한 오른쪽 발
바닥은 하늘을 향해 있는데, 발바닥을 훤히 드러낸 불상이 천하에 그리 흔치가 않다.
불상이 앉아있는 연화대좌(蓮花臺座)는 꽃잎이 하늘을 향해 빵빵 열려있는 앙련(仰蓮)이 윗쪽에, 반
대로 꽃잎이 땅을 향한 복련(伏蓮)이 밑에 있는데, 연꽃무늬가 2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
꽃잎도 너무 화사하기 그지 없어 적당하게 색만 입히면 진짜 연꽃이 따로 없을 것이다.
기존 전통의 불상 양식에서 추상성을 조금 보태어 웅장하게 다져진 마애불로 신라 말~고려 초의 대표
적인 마애불이자 준수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인정받아 북한산(삼각산)에 있는 불교문화유산 중 가장
먼저 국가 지정문화유산의 큰 지위를 받았다.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과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는
1980년대에 지정됨> 게다가 상태도 양호하고 선각(線刻)도 선명하여 조성된 지 얼마 안된 따끈따끈
한 석불 같다.
신라 말에서 고려 중기까지는 전국적으로 큰 마애불과 석불이 많이 조성되었다. 게다가 비슷한 모습
이 아닌 지역마다 다른 색을 보여 개성도 강하다. 구기동 마애불은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당시 지방
세력의 지원으로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승가사가 고려 황실과도 인연이 깊다고 하므로 제왕과 황
실의 지원으로 수준 높은 석공들을 투입해 조성했을 가능성도 높다.
마애불을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장비와 기술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
위가 불상을 새기기 좋게 드러누워 있던 것도 아니다. 줄을 매달고 올라가 일일이 정을 대고 쪼아야
되는데, 그것도 그리 쉽지가 않다. 거의 몇 년에서 10년 이상은 족히 걸렸을 것이며,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 당시 석공의 뛰어난 능력과 정성, 그들이 공사에 전념하게끔 뒤를
받쳐준 지원 세력이 합작으로 이루어낸 대작품이라 할 것이며 이런 명품급 마애불이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마애불이 있는 바위 밑에는 근래에 돌로 벽을 쌓았고, 그 앞에 향로와 용이 휘감고 있는 돌기둥을 만
들어 단(壇)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 앞을 돌출시켜 양쪽으로 계단을 내었으며, 기도는 그 앞에 마련된
공간에서 하면 된다. 그리고 바위 주변은 문화유산 보호를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으니 괜히 바위
를 오르거나 마애불을 만지는 등의 짓은 하지 않도록 한다. 또한 매일 10시부터 11시(시간은 변경 가
능)까지는 승가사에서 기도를 올리는 관계로 출입을 금하고 있다.





6.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의 얼굴 (양쪽에 보이는 구멍 4개는 보호각의 흔적들)

7. 마애불의 가슴과 아랫부분, 그리고 연꽃이 활짝 열린 연화대좌


8. 밑에서 바라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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