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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덕수이씨묘역 이거묘

낙성대와 가까운 낙성대현대아파트 마을버스(관악02번 정차) 정류장 서쪽 산자락에 덕수이씨묘역이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은 덕수이씨의 중시조(시조로부터 7세)인 정정공 이변을 중심으로 이
거, 이효조, 이여달, 이한현 등이 묻혀있는데, 임진왜란의 영웅이자 남해바다의 영원한 해신인 이순신
장군이 이변의 5대손이다. 즉 이곳은 이순신 장군 선조들의 묘역이다.

덕수이씨묘역 밑에는 작은 공원과 주차장이 조성되었고, 그 공원과 덕수이씨묘역 일대를 덕수공원으
로 삼아 속세에 개방했다. 하여 사당과 묘역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덤은 마음 편히 관람이 가능하
다. 그리고 묘역에서 남쪽 숲길로 들어가면 서울둘레길5코스(관악,호암산 코스)와 바로 연결된다.

 

이효조 묘 아래에 자리한 이거(?~1502)묘는 이거와 임피진씨 내외의 합장분으로 동그란 봉분과 늙은
묘표, 지붕돌 묘표, 상석, 혼유석, 문인석 2기를 지니고 있다. 봉분은 근래 밑도리에 호석을 둘렀고,
기존 묘표의 보조용으로 지붕돌 묘표를 새로 장만했다. 하지만 기존 묘표와 문인석 2기는 조성 당시
(16세기 초)의 것들이라 고색의 내음은 풍요롭다.

 

이거는 영중추부사 이변의 손자이자 이순신 장군의 증조부이다. 자는 '자미'로 생원시를 거쳐 생원이
되었고 1480년 식년시 문과에 을과 6등으로 급제했다. 1482년 경연청 설경, 1483년 홍문관 박사와
경연사경, 1484년 경연검토관, 홍문관수찬을 지냈으며, 1484년 암행어사로 경기도 지역을 시찰해
과천현감 최급을 탐관오리로 잡아서 봉고파직시켰다.

1486년 1월 승의랑 사간원정언, 1487년 이조좌랑, 1491년 7월 통덕랑으로 승진하여 수사헌부장령
이 되었으며, 1493년 종진부전첨을 거쳐 1494년 세자시강원보덕으로 세자인 연산군의 스승이 되었
다.

 

연산군 즉위 초에는 통훈대부로 승진, 장악원정지제교 겸 승문원판교, 한학교수를 역임했으며, 춘추
관편수관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1497년 1월 정3품 통정대부로 승진해 순천도호부사가 되
었고, 1499년 7월 임기만료로 행호군이 되었으며, 이후 병조참의가 되었다.

 

2. 이거묘 (이거와 임피진씨 내외묘)

호석이 둘러져 다소 젊어진 봉분과 오래된 묘표, 근래 새로 만든 지붕돌 묘표, 키가 작은 문인석 1쌍
과 키가 큰 문인석 1쌍, 상석, 혼유석을 지니고 있다. 문인석은 특이하게도 서로 키를 달리하고 있어
키가 작은 문인석을 동자석으로 잘못 보기 쉬우나 키가 큰 문인석과 비슷하게 생겨서 문인석이 맞다.

 

3. 이효조묘 (이효조와 행주기씨 내외묘)

이거 묘 윗쪽에 이효조와 행주기씨 내외 묘가 쌍분으로 자리해 있다. 이효조는 이변의 아들이자 이거
의 아버지로 이순신 장군의 고조부가 된다. 통훈대부와 통예원 봉예 등을 지냈으며, 부부의 쌍분과 늙
은 묘표, 지붕돌 묘표, 상석, 혼유석, 문인석 1기를 지니고 있다.

 

4. 이효조묘 지붕돌 묘표

무덤 앞에 세운 오래된 묘표의 보조용으로 근래 새로 장만했다.

 

5. 이효조묘 묘표

500년이 넘은 늙은 묘표(묘비)이나 글씨는 아직도 생생하여 알아보는데 전혀 어려움은 없다. 물론 저
한자를 알아야만 읽는 것이 가능하다. (비석 내용 통훈대부통례원봉례 덕수이공 휘 효조지묘, 숙인 행
주기씨부좌)

 

6. 덕수이씨묘역 가장 윗쪽에 자리한 정정공 이변 묘

이곳 묘역의 중심인 이변(1391~1473)은 고려 끝 무렵에 태어난 인물로 이순신 장군의 5대조이다.
1419년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박사가 되었고, 1427년 사역원판관이 되었으며, 1467년 왕(세조)으

로부터 궤장을 하사받았다. 그리고 1472년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그는 명나라 말(한어)에 능통해 명나라 외교에서 통역을 전담했는데, 참으로 한심한 것이 집안에서
도 가족들에게 우리말 대신 명나라 말만 쓰게 했고, 심지어 친구와 만날 때도 오로지 명나라 말로만
떠들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조선 위정자들에게 징그럽게 만연했던 명나라에 대한 꼴사나운 사대주
의와 명나라 말과 문화에 대한 지나친 모화사상을 지닌 한심한 작자로 이런 사람이 충무공 이순신
의 5대조라니 그저 충격과 공포일 따름이다.

1473년 고금의 명현과 절부의 행적을 명나라 말로 번역한 훈세평화를 저술했으며, 바로 그해 82세
로 사망했다.

 

7. 이변묘와 연꽃무늬 묘표

이변과 양성이씨 내외의 쌍분이 나란히 자리해 있고, 그 앞에 고려 말~조선 초기에 많이 등장하는 연
꽃무늬 묘표를 세워 무덤 주인을 알려준다. 봉분은 근래 성형되어 밑도리에 호석이 크게 둘러지는 등,
많이 젊어졌지만 그 앞에 있는 묘표는 15세기 후기 것 그대로라 고색의 내음이 철철 넘쳐 흐른다.

 

8. 근래 세워진 이변묘 지붕돌 묘표

 

9. 이변의 부인인 양성이씨묘와 오래된 연꽃무늬 묘표

 

10. 이변묘 문인석

이변묘는 부부의 쌍분과 늙은 묘표, 새 지붕돌 묘표, 문인석 1쌍, 장명등, 상석, 혼유석을 지니고 있다.
늙은 묘표와 문인석, 장명등은 15세기 후기 것으로 가치가 높은데, 이곳 묘역에서 가장 늙은 존재들
로 그 시절 무덤 석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변묘 문인석은 눈과 코가 유난히 크며, 눈과 표정은 고된 세월에 제대로 지친 모습 같다.

 

11. 이변묘 장명등

지붕돌을 지닌 조그만 장명등이 이변묘 앞에 다소곳이 세워져 있다. 그 역시 문인석, 연꽃무늬 묘표와

함께 15세기 후기 것이다.

 

 

12. 뒷쪽에서 바라본 이변, 양성이씨묘

이변을 중심으로 한 덕수이씨 묘역은 15~16세기 무덤들로 비록 근래에 봉분이 적지 않게 성형이 되
었고, 지붕돌 묘표와 몇몇 석물을 새로 달긴 했으나 조성 당시의 석물과 묘표를 넉넉히 지니고 있어
지방문화재 자
격은 충분해 보인다. (후손들이 지방문화재 지정에 크게 관심이 없는 모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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