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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청동 칠보사

북악산(백악산) 그늘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삼청동 주택가 북쪽 끝부분에 칠보사란 작은 현대 사찰이 숨
겨져 있다. 이곳은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의 절로 삼청공원 종점(종로구 마을버스 11번 종점) 서쪽이자
뮤지엄한미 삼청본관 북쪽이며, 삼청동거리의 북쪽 끝이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여기에 국가 보물로
지정된 늙은 불상을 보고자 함이다.

 

삼청동 골목(삼청로9길) 안쪽에 자리한 칠보사는 팔작지붕을 지닌 큰법당과 팔작지붕 요사, 범종각 등
건물 3~4동이 전부인 조촐한 절이다.

만해 한용운의 상좌인 춘성이 1932년에 창건해 삼각사라 했다고 하는데, 그는 1939년 광주군 성부산에
봉국사(현재 성남시 봉국사)를 세우면서 삼각사를 그곳에 통합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봉국사는 조선 중
기부터 있던 절이라 삼각사를 폐사해 건물을 그곳으로 이건시켜 봉국사 덩치를 늘려준 것으로 보인다.

삼각사가 떠난 이후, 무속인과 기도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무속, 치성이 자주 행해졌다고 하며, 그들
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절이 들어앉았다.

 

1958년 불심이 깊던 칠보화 보살이 그 당시 800여 만 원의 거액을 들여 이곳 일대를 매입했다. 그는 이
곳에 머물면서 대웅전 6칸, 염불당 3칸, 삼성각 3칸 규모의 집을 짓고 자신의 법명을 따 칠보암이라 했
는데, 1960년대에 만해 한용운의 수제자인 강석주에게 절을 무상으로 보시했다.

강석주는 이곳 주지로 머물면서 도심 수행 사찰로 절을 꾸렸으며, 광주 청량산 법륜사에 있던 불상을
업어와 이곳의 든든한 후광으로 삼았다. 그 불상이 큰법당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좌상이다.

 

2. 활짝 열린 칠보사 대문

칠보사는 좁은 경내와 위치상의 문제로 그 흔한 일주문을 두지 못했다. 하여 대문이 일주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견고한 모습의 문 양쪽 돌기둥에는 '기원도량' , '칠보사'가 쓰여있어 이곳의 성격과 이
름을 속세에 알려주고 있으며, 저 문을 들어서면 경내로 인도하는 완만한 경사의 짧은 오르막길이 나
온다.

 

3. 칠보사 대문에서 경내로 인도하는 짧은 오르막길

 

4. 오랜만에 외출을 나온 아기부처상 (관불의식의 현장)

즐거운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금동 피부의 아기부처가 거의 1년 만에 외출을 나왔다.

(이때가 석가탄신일이었음) 아기부처는 온갖 꽃들로 화사하게 치장된 관불대에 자리해 있는데, 여기
서 중생들은 그의 머리에 물을 껴얹는 관정의식(관불의식)을 행하며 자신의 고충 사항을 그에게 슬쩍
들이민다.

 

5.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

큰법당 불단에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좌우에 자리한 석가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중 가운데에 자리한 푸짐한 인상의 불상이 이곳의 유일한 보물인 목조석가여래좌상이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은 광해군 말년인 1622년에 능양군(인조)의 부인인 조씨(장렬왕후)가 왕족들과 친정
부모의 천도를 목적으로 발원하여 왕실 원찰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했던 11존 불상의 하나로 여겨
진다. (자수사와 인수사는 사망한 제왕의 왕후와 후궁, 상궁들이 출가하여 머물던 절임)

나무로 만들어 금동 피부로 도금을 입힌 것으로 17세기에 조각승으로 크게 이름을 날렸던 현진, 수연,
응원, 인균 등이 합작하여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이들 조각승들의 특징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었는데, 머
리와 상반
신을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로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다리 위에 둔 항마촉지인을 보
이고 있으며
상반신은 허리가 짧고 어깨가 넓은 반면 하반신은 다리가 높으니 이는 현진 특유의 조각
스타일이다.

반면 턱을 수평으로 깎은 네모진 얼굴에 양 볼이 볼록하게 양감이 있으며, 작고 가는 눈에 오똑한 코,
미소가
겯드려진 작은 입 등 단정하고 인자해 보이는 인상은 수연의 조각 스타일로 전해진다.

 

불상 뱃속에서는 고맙게도 복장유물이 나왔는데, 용복사 간행 ‘대방광불화엄경소’, 1622년 의왕 청계
사에
서 간행된 ‘묘법연화경’, 간행 미상의 ‘묘법연화경’, 5종의 다라니(주문), 후령통(복장을 넣는 통),
발원문, 축
원문 등이 확인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용복사 혜순이 1630~1631년에 간행한 판본이며, 발원문은 녹색 비단에 경면주사
(붉은
색 지하광물)로 내려쓴 왕실발원문이다. 이 발원문에는 ‘대비 정묘생 김씨(숙종의 계비인 인원왕
후로 추정)
'를 비롯해 주상 전하, 왕후, 세자 등 왕실의 안녕과 함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리고 후령통 안에서 발견된 1924년 축원문을 통해 현재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남한산성 내)에
있던
법륜사에 봉안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는데, 1661년 현종의 폐불 정책으로 한양도성에 있던 자수사,
인수사가
폐사되자 그곳에 있던 불상을 법륜사 등으로 옮겼다. 그 법륜사가 20세기 들어 사라지면서
서울로 흘러들
어왔고, 칠보사 주지 강석주가 그를 입수하여 이곳으로 가져온 것이다.

 

조성 시기가 정확하지 않지만 복장유물의 경전들과 불상의 형태, 이목구비, 주름 표현 등 양식적 특징
을 통
해 17세기 초로 여겨지며, 2018년 10월 국가 보물의 큰 지위를 얻었다.

 

6. 큰법당 신중탱

신중탱은 법당 지킴이용 탱화로 위태천 등 온갖 호법신들이 정신 없이 담겨져 있다.

 

7.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과 좌우 협시 보살상(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

이곳 석가여래좌상은 통통한 얼굴을 지닌 뚱보 동네 아저씨(또는 아줌마) 같은 푸근한 인상이다. 그
좌우로
맵시가 고운 금동 피부의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상이 협시해 있는데, 이들 보살상은 근래 달
아놓은 것들이
며, 그들 뒤로 흑백모드의 석가후불탱이 든든하게 자리해 있다.

 

8. 가까이서 바라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

 

9. 칠보사 큰법당

칠보사의 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큰 건물로 경복궁에 있던 경농재의 부속건물인 대유헌을 가져
와서 지
었다고 한다.

 

10. 칠보사 느티나무

칠보사에서 가장 늙은 존재로 500~600년 이상 묵은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자료에는 800년 이상이
라고
나옴) 칠보사가 있기 훨씬 이전부터 이곳을 지켰던 나무로 매일 칠보사 경내에 일품 그늘을 드
리우고 있는
데, 나이도 많고 건강상태도 양호하여 서울시 보호수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11. 큰법당에 걸린 빛바랜 칠보암 현판

칠보암은 칠보사의 예전 이름이다. 이곳 공양밥은 맛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한데, 내가 갔을 때(2021년
석가
탄신일)는 중공 개잡것들이 천하에 악의적으로 퍼트린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 대부분의 절에서
공양밥을
중단하고 밥 대신 떡과 생수를 주었다. 이곳도 절을 찾은 중생들에게 떡을 주었는데, 비닐봉
지에 떡을 담아
서 주는 다른 절과 달리 이곳은 네모난 작은 상자에 여러 가지 떡을 담아 정성스럽게 포
장해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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