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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영월 은행나무)

하송리 은행나무는 동강이 바라보이는 영월읍내 남쪽 언덕배기에 자리해 있다. 추정 나이는 최소
1,000년, 최대 1,200년에 이르러 우리나라 최대의 은행나무로 추앙을 받는 용문사 은행나무와 연배

가 비슷하다. 높이 29m, 둘레 14.8m의 큰 덩치를 지녔으며, 용문사 은행나무와 원주 반계리 은행나

무, 서울 성균관 은행나무,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 등과 함께 은행나무 명소로 추앙을 받는다.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에는 나무 옆구리에 대정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나 어느 세월이 잡

아갔는지 흔적도 없으며, 영월읍내가 하송리 지역으로 확장되면서 나무 주변으로 집들이 꾸역꾸역 들

어와 주거지 한복판 언덕에 자리하게 되었다.

나무의 원래 줄기는 죽어 없어지고 새싹이 돋아 자란 것이라고 하며, 마을의 오랜 정자나무로 그 덩치

가 커서 영월읍내에서 거진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는 동강도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요즘에는 높은 건

물이 많이 들어서 예전만큼 보이지는 않음)

나무 속에 신령한 뱀이 살고 있어서 동물이나 곤충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전하며, 어린이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놀다가 떨어져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정성을 들여 기도를 하면 아들을 얻는다

는 이야기도 있는 등, 지역 사람들은 이 나무를 크게 애지중지하며 의지했다.

 

예전에는 나무 그늘까지 집이 가득했으나 나무 주변을 정비하면서 주변이 많이 트였다. 나무 옆으로

은행나무길이라 불리는 2차선 길이 지나가며, 쉼터와 작은 주차장이 닦여져 읍내 공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2. 북쪽에서 바라본 하송리 은행나무의 위엄

 

3. 남쪽에서 바라본 하송리 은행나무

 

4. 온양방씨 열녀각과 경주이씨 효부각

하송리 은행나무에서 가까운 영월군청4거리 서남쪽에는 효자각 2기와 열녀각 1기, 효부각 1기가 나

란히 자리해 있다. 이들은 영월읍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으로 집합시킨 것인데, 모두 비석을

품은 맞배지붕 1칸짜리 집으로 생김새는 비슷하다.

 

온양방씨 열녀각의 주인공인 온양방씨 부인은 17세에 엄병수에서 시집을 갔는데, 불과 4달만에 남편

을 여의고 말았다. 이후 시모부를 봉양하며 살았으며, 그 공로로 1873년 3월 27일 조선 조정에서 정

려문을 세웠다. 1873년 이상호가 지은 효열각기와 1929년 정규문과 이계진이 쓴 기문, 그리고 열녀

비가 들어있다.

 

그 옆에 있는 경주이씨 효부각은 김지학의 부인인 경주이씨를 기리는 비석으로 가족들이 출타 중에

시아버지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시아비에게 피를 흘려 목숨을 구했다. 하여

1867년 4월 20일 조정에서 정문을 세워주었다.

 

5. 김지룡 효자각과 엄윤 효자각

김지룡은 조선 후기 인물로 선릉참봉을 지냈다. 그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효자문으로 안타깝게도

6.25 시절에 그의 효행록이 사라져 자세한 것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현재 효자각은 1926년에 문중에

서 건립해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엄윤 효자각의 주인공인 엄윤은 영월엄씨 집안으로 1778년 6월 28일에 태어났다. 그는 통정대부 별

호군을 지냈으며, 효행이 지극해 조정으로부터 정문을 받았다. 1859년 경신년 6월 15일에 병사했으

며, 그의 종손인 엄종현이 1926년에 효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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