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정암사로 인도하는 함백산로와 태백선 철교

이번 정암사 나들이는 2004년에 구입했던 고물 디카(삼성카메라, 이하 2004년 카메라)를 가져갔다.

2011년에 구입한 고물 디카(니콘카메라, 2011년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그 땜빵으로 가져간 것인데,

2011년 카메라를 구입한 이후 2004년 카메라는 출답사에 사용하지 않고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

무려 12년 만에 몸을 풀러 나온 2004년 카메라, 그 카메라를 7년 이상 썼음에도 그보다 성능이 좋은

2011년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에 완전히 익숙해진 상태라 처음 건드리는 카메라처럼 다루기가 좀

힘들었다. 낮은 화소(최대 320만 화소)와 낮은 디스크 용량(초고화질 320만 화소 사진은 겨우 72장만

담을 수 있음), 그리고 떨어지는 작동 메뉴 등(그래도 2004년 당시에는 꽤 나갔던 디카였음) 그래서

2004년 시절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정선 정암사 출사에 임했다.

 

정암사는 신고한터미널에서 정선군내버스가 1일 7회(일부는 정선읍 정선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신고한

경유) 운행하지만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서 정암사입구인 상갈래까지 군내버스(정선읍~상갈래, 민둥

산역~상갈래, 신고한~태백터미널 노선, 이들을 합쳐서 1시간에 거의 2회꼴로 운행함)를 타고 거기서

함백산로를 따라 2.7km를 걸어들어갔다. 만항재로 올라가는 길이나 경사는 완만하여 그리 힘든 것은

없는데, 다만 뚜벅이길이 따로 없다 보니 차량과 길을 공유해야 된다는 단점이 있어서 통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정암사로 인도하는 함백산로는 태백선과 지장천을 옆구리에 끼며 흘러가는데, 태백선은 못골 전에서

정암터널로 사라지며, 지장천은 정암사까지 쭉 같이한다.

 

2. 청정한 수질을 자랑하는 지장천

지장천은 함백산이 베푼 계곡으로 고한, 사북, 증산, 남면 등 정선의 남쪽 산하를 두루 지나 정선 가수

리에서 동강에 합류한다.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며, 남한강은 양평과 남양주 경계

에서 북한강과 하나가 되어 완전한 한강이 된다. 한강은 김포, 파주를 지나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3. 정암사와 만항재로 꾸준히 인도하는 함백산로 

 

4. 자장율사 순례길

정암사에서 적조암, 뾰족바위, 만항마을을 거쳐 만항재까지 이어지는 6.6km의 산길이다. 마음 같아

서는 저 길을 모두 거닐고 싶었지만 늘 그렇듯이 시간을 구실로 정암사만 보고 철수했다. (만항재는

예전에 가봤음)

 

5. '태백산 정암사' 현판을 내민 정암사 일주문

정암사 주차장을 지나니 맞배지붕을 지닌 일주문이 마중을 나온다. 그는 1977년에 중창된 것으로 느

릅나무로 지었는데, 현판은 정암사가 인연이 깊던 탄허가 썼다.

정암사는 무려 21년 만에 방문으로 그때도 일주문은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었다. 20여 년 만에

찾은 나를 과연 기억이나 해줄지.

 

6. 정암사 안내도

함백산(1572m) 북쪽 자락 산골에 깃든 정암사는 정선 지역에서 꽤 유서깊은 고찰이다. 함백산 자락

에 있지만 그보다 남쪽에 있는 태백산을 가져와 태백산 정암사를 칭하고 있는데, 함백산도 엄연한 태

백산의 식구라 태백산 정암사를 칭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이 절은 신라 중기에 자장율사(594~653, 또는 599~655)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시절 신라 불교의

1인자였던 자장은 선비족 나라인 당나라 이씨 왕조에서 불교를 익혔는데, 오대산과 산서성 지역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는 아주 신기한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후 선덕여왕의 부름을 받아 신라로 돌아가

게 되는데, 당나라에서 득템한 부처의 진신사리와 가사 등을 가지고 갔다.

 

자장은 신라에서 통도사와 태화사 등의 절을 세우고 90년 이상 진행된 황룡사9층목탑 공사를 마무리

짓는 등 신라 불교의 1인자로 위엄을 떨쳤는데, 진덕여왕 시절, 원효대사에게 밀려 강원도 산골로 들

어오게 된다.

그는 오대산과 함백산에 절을 지었다고 전하는데, 함백산에는 갈래사란 절을 세우니 그것이 현 정암

사의 전신으로 다음과 같은 창건 설화가 전한다.

 

그가 수다사란 절을 세우고 머물고 있었는데, 하루는 꿈에 이상하게 생긴 승려(또는 당나라 시절 교류

했던 승려)가 나타나

'내일 대송정에서 보자'고 했다. 꿈이 하도 이상하여 대송정으로 갔더니 문수보살이 꿈에 나타나 '태백

산 갈반지에서 만나자' 하고는 사라졌다. 하여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았으나 갈반지는 커녕

비슷한 존재도 찾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큰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발견, 그곳이 갈반지라

확정을 짓고 절을 세웠다. 그래서 절 이름을 갈래사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자장이 사북에 있는 불소 위쪽에다 사리탑을 세우려고 했는데, 탑을 쌓으면 무너

지기가 바뻤다. 그래서 기도를 했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넝쿨 3갈래가 눈 위로 뻗어나가 지금의 수마노

탑과 적멸보궁, 요사채가 있는 곳에 멈추었다. 그래서 그곳이 하늘이 점지한 자리라 여기고 절을 짓고

이름을 갈래사라 했다는 것이다.

 

갈래사에는 3개의 보탑을 세웠는데, 북쪽 금대봉에 금탑, 남쪽 은대봉에 은탑을 세우고, 가운데에 수

마노탑을 세웠다. 이중 수마노탑은 사람이 쌓은 것이라 능히 볼 수 있지만 금탑과 은탑은 도력으로 지

은 것이라 아무나 못본다고 한다. (물욕이 큰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함)

갈래사는 석남원으로 이름을 갈았는데, 이는 신령한 바위의 남쪽이란 뜻으로 그 바위는 이곳의 명물인

수마노탑이 위치한 바위이다. 이후 석남원은 깨끗한 바위를 뜻하는 정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장은 이곳에서 문수보살을 기다리다가 입적했으며, 정암사 뒤편 바위굴에 그의 유해를 봉안하고 조

사전을 세웠다. '정암사사적기'에 의하면 바위굴에서 종종 빛이 뿜어져 나왔다고 전한다.

고려 때까지 수행 사찰로 그런데로 유지되었으며, 18~19세기에 적멸보궁을 여러 차례 보수했다. 하지

만 딱히 전하는 내력은 많지 않으며, 20세기 이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경내에는 법당인 적멸보궁을 비롯해 문수전, 육화정사, 함백당, 관음전, 삼성각, 자장각, 적묵당, 범종

루, 일주문 등 10여 동의 건물을 지니고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이곳의 1급 보물인 수마노탑과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적멸보궁이 있다. 또한 절 계곡에 열목어가 살고 있어 계곡 일대가 천연기념물

(열목어서식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자장율사가 심은 것으로 전하는 주장자 나무가 있다.

 

이곳은 설악산 봉정암, 평창 상원사, 영월 법흥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사찰

로 꼽히기도 하며, 유명한 기도처이자 정선의 1급 명소로 아주 바쁘게 살아간다.

 

 

7. 정암사 육화정사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62평에 이르는 정암사에서 가장 큰 집이다. 1977년에 지어진

것으로 종무소와 선방, 강당, 요사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밑에는 주차장이 닦여져 있다.

 

8. 정암사 범종루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범종(1977년에 제작됨)의 공간이다. 범종루와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은 정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장으로 추앙을 받는다.

 

9. 자장율사 주장자

적멸보궁 뜨락에 주장자라 불리는 나무가 있다.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평소 이용하던 주장자

(육환장)를 땅에 꽂았는데, 그것이 기묘하게도 나무로 자랐다고 하며, 그 나무가 바로 이것이라고 한

다.

현재 주장자는 그 후손 나무로 여겨지는데, 나뭇가지들이 계속 회생하고 성장하는 것을 거듭했다. 수

마노탑, 적멸보궁과 더불어 정암사의 주요 명물로 국가 천연기념물의 자격이 충분하다 여겨지나 아직

까지 비지정문화재에 머물러 있다.

 

10. 남쪽 계곡 건너에서 바라본 범종각과 적멸보궁과 경내를 이어주는 돌다리(극락교)

정암사 경내는 열목어가 살고 있는 계곡을 중심으로 남쪽에 적멸보궁이 있고, 북쪽에 육화보전과 문수

전, 함백당, 관음전, 삼성각 등 건물 상당수가 포진해 있다. 그리고 수마노탑은 계곡 남쪽 가파른 언덕

배기에 따로 자리해 있다.

 

11. 정암사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정암사의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청기와 팔작지붕 집이다. 정암사는 석가여래의

사리를 봉안한 절이라 적멸보궁이란 법당을 두는데, 내부 불단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다.

이곳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하며, 1770~1771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지금 건물

은 최소 17~18세기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1858년과 1919년에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는

데, 겹처마를 드리우고 옆면에도 지붕이 뻗어 있는 팔작지붕을 올렸다. 특히 청기와를 써서 은근히 화

려해 보인다.

 

건물 내부에는 신중탱 2점과 동종 1점이 들어있으며, 건물 바로 뒷쪽 언덕배기에 석가여래의 사리가

봉안된 수마노탑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