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가을 서촌 나들이 ' (박노수미술관과 친일매국노 윤덕영의 집) ▲ 박노수 가옥(박노수 미술관)의 뒷모습 ▲ 박노수 가옥 뒷쪽 굴뚝 ▲ 청운동에서 바라본 북악산 ▲ 옛 청휘각(晴暉閣)터 주변에서 바라본 서촌(西村) 서울 도심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서촌(웃대)은 경복궁(景福宮) 서쪽 동네를 일컫는다. 흔히 서촌이라 불리는 경복궁 서부는 옛날부터 웃대라 불렸으며 원래 서촌은 경희궁(慶熙宮) 과 서대문 주변 지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인왕산 동쪽까지 확장된 것이다. 또한 세종대왕이 통인동에서 태어난 인연(1397년 출생)을 내세워 2011년 이후에는 종로구청과 지역 주민 주도 로 새롭게 '세종마을'을 칭하고 있다. 서촌(웃대)은 왕족부터 양반사대부(士大夫)부터 내시와 상궁(尙宮), 의관(醫官), 역관(譯官)..
' 서울 도심 속의 전원마을, 부암동 늦가을 산책 (인왕산 자락 명소들) ' ▲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바라본 부암동 ▲ 반계 윤웅렬 별장의 뒷모습 ▲ 부암동 무계원 늦가을 누님이 그의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며 천하를 곱게 물들이던 11월의 어느 평화로운 날, 후배 여인네와 함께 나의 즐겨찾기 명소인 종로구 부암동을 찾았다. 부암동(付岩洞)은 북한산(삼각산)과 북악산(백악산), 인왕산(仁王山)에 포근히 감싸인 도 심 속의 전원(田園) 마을로 천하 제일의 큰 도시로 콧대가 매우 높은 서울의 심장부에 자 리해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정녕 서울이 맞더냐?' 고개가 갸우뚱거릴 정 도로 매우 번잡한 시내가 연상되는 도심과는 전혀 다른 산골마을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서울 도심의 또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 서울 도심 속의 포근한 전원 마을, 성북동 나들이 ' ▲ 수연산방 (상허 이태준 가옥) 싱그러운 5월을 맞이하여 후배 여인네와 함께 나의 즐겨찾기 답사지인 성북동(城北洞)을 찾았다. 도심 속의 전원(田園) 마을로 북악산 동쪽 자락에 감싸인 성북동은 20대 중반부터 1년에 여러 차례 답사나 나들이로 찾는 편이다. 그렇게 질리도록 갔음에도 돌아서면 또 안기고 싶은 곳이 또한 성북동이라 나의 마음을 두고두고 앗아가는 얄미운 곳이기도 하다. 이곳 외에도 부암동(付岩洞)과 백사실(백사골), 북촌(北村), 서촌도 나의 정처없는 마음을 들 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성북동을 거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곳의 풍수지리적 지형이다. 이곳은 호 랑이가 담배 맛을 알던 시절부터 '완사명월형(浣紗明月形)'의 명당(..
' 옥천(沃川) 늦겨울 기행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구읍 명소들) ' ▲ 정지용문학관 로비에 재현된 정지용의 모습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 북촌 겨울 나들이 ' ▲ 기기국 번사창 겨울 제국이 차디찬 위엄으로 천하를 꽁꽁 얼리던 연말에 후배 여인네와 북촌(北村)을 찾았 다. 유난히도 매서운 한파였지만 옷만 두둑히 챙겨 입으면 낮에는 햇님의 보우에 힘입어 그 런데로 다닐만하다. 날씨가 춥다고 마냥 집에 박혀있는 것도 그리 좋지는 못하지. 당당하게 겨울 제국에 대항하며 바깥 바람을 많이 쐬야 건강에도 좋고 추위에도 잘 적응이 된다. 서울 도심 속에 자리한 북촌(북촌한옥마을)은 부암동(付岩洞)과 성북동(城北洞), 북한산(삼 각산), 북악산(백악산)과 더불어 나의 즐겨찾기의 하나이다. 매년 적어도 10번 이상 발걸음 을 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그곳에 나만의 꿀단지를 숨겨놓은 것은 아니다. 북촌한옥마을 자 체가 서울 도심 속의 꿀단지나 마찬가지이니..
' 우리나라 서원의 영원한 성지,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 ▲ 전교당에 걸린 도산서원 현액 - 한호(韓濩, 한석봉)의 글씨이다. 여름 제국(帝國)이 봄을 몰아내고 한참 성하(盛夏)의 기반을 닦던 6월 한복판에 우리나라 서원의 성지로 격하게 추앙받는 안동 도산서원을 찾았다. 아침 일찍 부산에서 동대구행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서 팔공산 은해사(銀海寺)로 넘어갈 요량이었으나 변덕이 발동하면서 안동(安東)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경북 한복판에 자 리한 안동으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안동 제일의 고찰, 봉정사(鳳停寺)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도산서원 가는 67번 시내버스가 막 기지개를 켜고 있길래 다시 변덕을 발휘하여 그곳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안동 외곽으로 가는 안동시내버스 대부분은 안동역(교보생명)에서 출..
' 서울 서촌(西村) 둘러보기 ' ▲ 이상범 가옥 담장 ◀ 배화여고 생활관 ▶ 백세청풍 바위글씨 ▼ 박노수 가옥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 옛 청휘각(晴暉閣)터 주변에서 바라본 서촌 서울 도심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서촌(웃대)은 경복궁(景福宮) 서쪽 동네를 일컫는다. 원래 서촌은 서대문 동쪽 동네를 일컬었고, 지금의 서촌은 '웃대'라 불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 르면서 서촌의 범위는 웃대를 넘어 자하문고개 밑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리고 세종(世宗)이 통 인동(通仁洞)에서 태어난 인연(1397년 출생)을 내세워 종로구청과 지역 주민 주도로 '세종마을 '이란 간판까지 달게 되었다. 서촌의 범위는 청운동(淸雲洞), 효자동(孝子洞), 옥인동(玉仁洞), 신교동(新橋洞), 누상동(樓上 洞), 누하동(樓下洞), 체..
* 옥인동 박노수 가옥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박노수 가옥은 1937년경에 건축가 박길룡이 지은 한식,양식 절충식 2층 가옥이다. 1973년 화가 남정 박노수(1927~2013)가 매입하여 2011년 말까지 머물렀다. 무려 서울시 지방문화재자료 1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곳은 박노수의 유족들이 종로구에 기증하여 2013년 9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세상에 문을 열었다. * 박노수 가옥 외경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 가옥 남쪽 뜨락 * 가옥 동쪽 * 박노수 가옥 담장 너머 골목길
' 서울 도심 속의 꿀단지, 북촌(北村) 산책 (재동, 가회동, 정독도서관, 안국동 일대)' ▲ 북촌문화센터 북촌(北村)은 서울 도성(都城)의 북쪽 지역으로 경복궁(景福宮)과 창덕궁(昌德宮) 사이를 일 컫는다. 이 지역은 가회동(嘉會洞)을 중심으로 삼청동(三淸洞). 계동(桂洞), 안국동(安國洞) , 재동(齋洞), 소격동(昭格洞), 팔판동(八判洞), 원서동 등에 걸쳐있으며, 경복궁 서쪽은 따 로 서촌(西村)이라 불렀다. 북촌 지역은 조선시대 때 왕족과 사대부(士大夫)를 비롯하여 돈 꽤나 주무르던 부자들이 주류 를 이루며 살던 오늘날의 강남(江南) 같은 곳이다. 조선 초기부터 형성되었지만 조선 초/중기 시절에 한옥은 남아있는 것이 없고, 조선 후기(19세기~20세기 초반) 한옥을 시작으로 왜정(倭 政)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