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사성암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구례읍, 순천 황전면 지역

사성암은 구례읍내에서 4km 정도 떨어진 오산(541.7m) 서쪽 자락 가파른 곳에 자리해 있다. 사성암

의 높은 명성을 익히 들은 터라 그곳에 대한 목마름이 대단했는데, 겨울 끝 무렵에 시간을 내어 그를

찾았다.

사성암입구(죽연마을)까지는 구례군내버스가 운행하고 있지만 운행횟수가 그야말로 절망적인 수준

이다. 하지만 구례읍내에서 거리가 가깝고 섬진강 산책로를 따라 사성암입구까지 도보 접근이 충분

히 가능하다. 하여 구례읍내에서 뚜벅이 정신에 충실하며 사성암입구 하부주차장까지 40분 정도를

걸었다.

 

사성암입구(죽연마을)에서 사성암까지 안전운수사에서 굴리는 마을버스를 타면 되는데, 편도가 무

려 1,700원(왕복 3,400원)이나 한다. 그것도 마을버스 주제에 말이다. 완전히 마을버스 탈을 쓴 사성

암 셔틀버스라고 봐도 무방한데, 버스비는 주차장 한쪽에 있는 매표소에서 버스표를 사면 된다. (왕

복표도 여기서 구입하면 됨) 버스비가 부담된다면 걸어가도 되지만 지름길로 30~40분을 올라가야

된다. (사성암 밑 주차장까지 차량 접근 가능)

 

2. 사성암의 상징이자 백미, 유리광전(약사전)

사성암 관련 정보나 자료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칼처럼 솟은 벼랑에 기묘하게 닦여진 유리광전이

다. 벼랑에 기둥을 닦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는데, 유리광전은 동방정토 및 유리광세계의 대표인 약

사여래의 공간으로 사성암에서 주불전이자 법당으로 애지중지하는 곳이다.

유리광전 내에는 늙은 마애여래입상이 있는데, 그는 원효대사가 선정에 들어가 친히 손톱으로 그렸

다고 전한다. 물론 이는 믿거나 말거나이다.

 

오산 서쪽 자락 벼랑에 자리한 사성암은 544년에 연기조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기록이나 유물은 없는 실정이다. 다만 경내에 9~10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마애여래입상이

유리광전 내에 들어있어 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 이름은 절이 안긴 오산의 이름을 따서 오산사라 했으나 나중에 원효와 의상, 도선과 진각 등 4

명의 고승이 여기서 수도를 했다고 해서 사성암으로 이름을 갈았다. 즉 4명의 성스러운 고승이 거쳐

간 암자를 뜻한다.

고려 중기까지는 상당한 크기의 수도 도량이었다고 전하며, 이후 파괴와 중건이 거듭되면서 고색의

내음은 크게 말랐다.

 

각박한 벼랑에 자리한 경내에는 법당인 유리광전을 비롯해 선원, 요사채, 산왕전, 53불전, 나한전,

지장전, 공양간, 종무소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유리광전에 들어있는 마

애여래입상이 전한다. 또한 사성암을 품고 있는 오산은 경관이 아름다워 봉성지(구례향교에서 1800

년에 발간한 서적)에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 했다'

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사성암은 섬진강과 구례군 일대, 순천 황전면 지역,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곳이라 조망도 일

품이며, 오산의 정상 풍경과 사성암, 바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경승지이다. 하여 '구례 오산 사성

암 일원'이란 이름으로 국가 명승의 큰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오산 정상은 사성암 경내에서 10여 분

올라가야 된다.

 

3. 동쪽에서 바라본 사성암 유리광전(오른쪽 건물)과 53불전 및 나한전(유리광전 너머 벼랑 건물), 종

무소와 공양간

 

4. 동쪽 공양각에서 바라본 유리광전의 위엄

 

5. 동쪽에서 바라본 유리광전 아랫쪽과 53불전 및 나한전, 종무소

 

6. 유리광전 입구

우람한 모습의 금강역사상 2기가 유리광전으로 인도하는 계단 입구에 자리해 중생들을 검문한다. 금

강역사의 검문을 거쳐 조금은 각박하게 이어진 계단을 1~2분 오르면 비로소 유리광전 앞에 이른다.

 

7. 유리광전 입구를 지키는 하얀 피부의 금강역사상

 

8. 유리광전으로 인도하는 계단길

거의 직각으로 솟은 각박한 벼랑에 유리광전으로 인도하는 계단길이 닦여져 있다. 돌난간 너머로는

섬진강과 구례 지역이 훤히 시야에 들어와 일품 조망을 자랑하는데, 아무리 그러면 무엇하리. 중공

개잡것들이 악의적으로 날려보낸 미세먼지의 방해로 나의 침침한 두 망막처럼 천하가 죄다 뿌옇게

바라보인다.

 

9. 유리광전 계단길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구례의 산하

 

10. 유리광전이 둥지를 튼 각박한 벼랑

 

11. 유리광전에 깃든 마여애래입상 (사성암 마애여래입상)

유리광전 안쪽에 사성암에서 가장 늙은 존재인 마애여래입상이 진한 선각의 모습으로 깃들여져 있다.

이 마애불은 원효가 선정에 들어가 손톱으로 새긴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근거가 전혀 없으며, 간략한

음각 기법을 이유로 9~10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불상의 머리에는 낮게 솟은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으며, 옷은 양 어깨에 걸쳐져 있는데, 왼쪽 어

깨의 옷주름이 촘촘한 격자무늬를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 있고, 왼손은 가슴 아래에 대고 있

으며, 불상 뒤에는 광배가 있고, 머리 주위에도 2줄로 된 두광이 있다. 광배에는 불꽃무늬와 넝쿨무늬

가 있는데, 경주에 있는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의 무늬와 비슷하다.

 

마애불이 세월을 크게 타면서 선각도 다소 지워진 것을 근래 손질하여 아주 선명해졌다. 오히려 너무

젊어진 탓에 신라 후기 것이 아닌 근래 것으로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마애불 보호를 위해 앞에 유리막을 씌웠으며, 그 앞에 차려진 예불 공간에서 그에게 예를 표하면 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