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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경암 대웅전
서울 강남과 송파 지역이 훤히 바라보이는 영장산(193.6m) 북쪽 자락에 망경암이란 작은 산사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서울을 바라보는 암자로 대웅전과 마애불, 미륵불 모두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과 무슨 연관이 있길래 자신이 속한 성남 시내를 완전히 등지고 늘 서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
까?
망경암은 고려 후기에 무학대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다. 조선이 개국된 이후,
조선의 역대 제왕들이 이곳을 찾아 나라에 평안을 기원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15세기 후반에는
세종의 아들인 평안대군과 제안대군의 명복을 빌고자 칠성단(七星壇)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터만 덩그러니 남아오다가 1897년 왕족인 이규승(李奎承)의 시주로 다시 절을 일으
켜 세웠다.
경내에는 대웅전 등 5~6동의 건물과 미륵불, 5층석탑이 있으며,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조선후기 마
애불이 있다. 또한 매년 10월 말에는 미륵축제를 개최한다.

2. 칠성대에 깃든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대웅전 서쪽에는 높은 바위 벼랑이 있는데, 여기서는 칠성대라고 부른다. 그 주름진 바위 피부에 감실
을 파고 높이 120cm, 폭 75cm 크기의 마애불을 돋음새김으로 새겼으며, 그 위쪽에는 14곳에 굴을 파
고 글씨를 새겼다.
이 마애불은 고종이 황제 위에 오르던 1897년, 이규승의 시주로 조성된 것이라고 전한다. 불과 130년
나이임에도 건강 상태가 매우 심각하여 얼굴과 몸 부분이 심하게 망가져 있으며, 불상이 있는 석굴 쪽
으로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접근이 거의 통제되어 있어 자세한 것은 살펴보기 어렵다.
19세기 후반에 조성된 마애불로 그리 특별한 것은 없지만 조선 후기 마애불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불상의 조성 시기, 시주자의 명단 등이 바위 위쪽에 빼곡히 새겨져 있는 점이 참작되어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얻었다.
마애불 앞에는 비석 2기가 있는데 그중 앞쪽의 조그만 비석은 망경암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이규승이
1874년에 세운 것이다.
석불 옆에 큰 비석에는 '大韓民國 廣州 靈長山 望京庵 七星臺 重修序'라는 내용과 함께 나라의 번영을
영장산 신령(靈長山靈)과 봉국사 불상(奉國世尊), 망경암 약사불(望京藥師), 칠성대 성신(七星臺 聖神)
에게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3. 망경암에서 바라본 천하 (서울 시내)
망경암은 성남시의 북쪽 지붕인 영장산 북쪽 자락 훤히 트인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보급
조망을 자랑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앞에 가천대와 복정동 지역을 비롯해 서울 송파구, 강동구,
강남구, 서초구, 광진구, 아차산 산줄기, 구리시, 그리고 멀리 북한산(삼각산)과 도봉산 산줄기까지 흔
쾌히 시야에 잡힌다. 이렇게 서울 쪽이 잘 보이니 절 이름을 서울을 바라본다는 뜻에 망경암이라 한 모
양이다. 물론 조선 후기까지 송파와 강남, 광진구, 중랑구 지역은 물론 도봉산과 북한산 주변은 서울
영역이 아니었다. (북한산성 내부는 서울 한양부에 속해있기도 했으나 그 주변은 고양, 양주 고을의
영역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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