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정동진 동해바다 2. 등명낙가사 등명사지5층석탑 3. 등명낙가사 청동오백나한상 4. 등명낙가사 주차장 5. 낙가사 일주문과 똥배 포대화상 6. 잘생긴 귀부와 이수 7. 일주문 부근 3층석탑 8. 이곳이 서울의 정동임을 알리는 나침판 석물 9. 등명약수 주변 10. 등명낙가사 등명약수 11. 똥배를 쑥 내민 포대화상 12. 파괴된 석탑의 잔재들 13. 등명사지5층석탑 14. 등명사지5층석탑과 만월보전 15. 만월보전 약사여래삼존상 16. 만월보전 구석에 자리한 조그만 존재들 17. 만월보전 구역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18. 등명낙가사 극락보전 19. 삼성각 20. 불이문 21. 영산전 22. 영산전 청동오백나한상 23. 영산전 청동석가여래좌상 24. 영산전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 25. ..

1. 춘천7층석탑춘천 도심인 서부시장3거리 동북쪽에 춘천7층석탑이라 불리는 늙은 석탑이 있다. 보통 절터 이름이나 동/리의 이름을 붙여 '~~사지 석탑', '~~동 석탑', '~~리 석탑' 등으로 부르지만 이곳은 어찌된 영문인지 '시'의 이름인 '춘천'을 붙였다. 이 석탑은 고려 때 것으로 여겨지는데, 봉의산 서쪽 자락에 있었다는 충원사의 유물로 보고 있다. 허나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석탑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서 자세한 것은 춘천 지신이나 봉의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다. 탑 높이는 6.2m로 2중의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얹혔다. 1층부터 4층까지 아래층 지붕돌과 위층 몸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이는 고려 때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석탑 양식이라고 한다. 지붕돌 받침은 1층부터 3..

1. 백담사 백담계곡 돌탑들 2. 설악산 백담사의 외경 3. 수렴동계곡 4. 백담사의 외경 5. 백담사 수심교 6. 백담사 만해교육관 7. 백담사 야광나무 8. 백담사 만해당 9. 백담사 화엄실(왼쪽)과 법화실(오른쪽) 10. 백담사 극락전 지장보살상과 지장탱 11. 백담사 극락보전 12.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13. 백담사3층석탑 14. 만해기념관에 전시된 영환지략 (전 10권) 15. 만해가 쓴 월남망국사 16.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유물의 하나인 황단삼회장 저고리 복제품 17. 백담사 잠수교 18. 백담계곡 건너에서 바라본 잠수교와 백담사 19. 백담계곡 돌탑의 장대한 물결 20. 돌탑과 자연석이 뒤섞인 계곡 돌밭과 얼어붙은 백담계곡 21. 수렴동계곡 하류 숲길 22. 얼어붙은 ..

1. 강릉 주문진등대 강릉의 대표 미항으로 추앙을 받는 주문진항의 북쪽 높은 언덕에 하얀 피부의 주문진등대가 도도하게 자리해 푸르른 동대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주문진등대는 1918년 3월 20일에 세워진 것으로 강원도의 첫 등대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강원도 동 해안 지역은 등대가 늦게 뿌리를 내렸는데, 이는 강원도 동해안에 특별히 발달한 항구가 없었기 때문 이다. 그러다가 부산~원산 항로의 기항지로 여객선과 화물선이 바쁘게 오가면서 많은 항구들이 생겨 났고 그로 인해 등대도 정착을 했다. 백원형연와조로 닦여진 등대 등탑은 최대 직경 3m, 높이 10m로 외벽에는 하얀 피부의 석회 모르타르 가 칠해져 있다. 이런 벽돌식 구조의 등대는 이 땅 등대건축의 초기형에 해당되는 것으로 시대가 시대 인지라 왜식 스..

1.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 강릉 도심인 옥천동에는 대창리 당간지주와 수문리 당간지주 등 2개의 늙은 당간지주가 전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 보물의 큰 지위를 누리고 있는데, 당간지주란 괘불과 깃발 등을 걸어두는 돌기둥으로 보 통 2개로 이루어져 있어 꽤 단출한 모습을 보인다. 대창리 당간지주는 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주변에서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어 이곳에 절이 있었 음을 알려준다. 허나 절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여 자세한 것은 알 도리가 없다. 1m 간격을 두고 두 돌기둥이 마주 하고 있는데, 돌기둥 사이로 깃대를 받치던 받침이나 기단부는 남 아 있지 않아 원래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바닥 부분에 직사각형의 돌을 놓은 것으로 보아 기단부도 직사각형으로 여겨지는데, 꼭대기 부분은 안에서 바깥쪽으로 곡선을..

1. 강릉 최선평가옥 (가옥 대문) 주문진읍 장덕리에 있는 옛날삼교리막국수집 동쪽에 최선평가옥이란 늙은 기와집이 있다. 그 기와집 을 보고자 여기까지 들어온 것은 아니고 막국수 1그릇 먹으려고 옛날삼교리막국수를 찾았다가 우연 히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한옥이 세워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ㅡ' 구조의 안채와 'ㄱ' 구조의 사랑채가 이어져 전체적으로 'ㅁ'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안채는 용마루 밑 에 방이 2줄로 배치된 겹집이며, 안채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고, 건너편에 있는 사랑채 툇마루와 'ㄷ'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는 모서리 부분에는 두 짝 여닫이문을 두어 바깥을 오갈 수 있게 했다. 사랑채 대청마루는 우..

1. 화암사 미륵대불 금강산 화암사를 칭하는 화암사 북쪽 높은 곳에는 2014년 10월 25일에 조성된 거대한 미륵대불이 동 대해를 굽어보고 있다. (화암사 경내에서 3~4분 정도 올라가야 됨) 2011년 4월 5일에 통일의 염원을 담아 조성하기 시작하여 2014년 10월에 완성을 보았는데, 화암사의 새로운 명물로 여기서 바라보는 속초와 고성의 산하, 동해바다 조망이 천하일품이다. 2. 화암사 미륵대불에서 바라본 천하 고성군, 속초시의 산하와 동해바다가 훤히 두 망막에 들어온다. 3. 북쪽에서 바라본 미륵대불 파리도 능히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하얀 피부를 지닌 미륵대불 주변으로 조그만 석불이 깃든 석 벽이 둘러져 있으며, 대불 앞에는 예불 공간이 닦여져 있다. 4. 남쪽에서 바라본 미륵대불의 위엄 5..

1. 화암사 명부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한 저승(명부) 식구들의 공간이다. 2. 똥배가 매력적인 포대화상 사람들의 똥배는 별로지만 유독 포대화상의 똥배는 복을 부른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 의 축 쳐진 배때기를 문지르며 소망을 들이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뭐라나. 3. 화암사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과 칠성, 독성 등 삼성의 공간이다. 건물 내에는 특이하게 금강산 세존봉과 삼선대 등 금강산의 풍광이 담겨진 그림이 있고, 건물 바깥에는 신선봉과 신선계곡 등의 금강산 벽화가 그려져 있다. 나는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여 놓치고 말았는데, 화암사에서는 금 강산의 12,000봉 80,009암자 중 남쪽에서 시작되는 첫 봉우리인 ..

1. 화암사 일주문 설악산 성인대 북쪽 자락이자 신선봉(1,212m) 동남쪽 자락 320m 고지에 화암사가 고즈넉하게 둥 지를 틀고 있다. 화암사는 바로 뒷산인 신선봉이나 설악산도 아닌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금강산 화암사'를 칭하고 있 는 것이 이채로운데, 여기서 금강산 중심부까지는 60km가 넘는다. 그에 반해 설악산 정상까지는 12 km 내외이다. 그럼에도 금강산을 가져온 것은 신선봉이 금강산 12,000봉의 최남단 봉우리라는 이유 때문이다. (신선봉을 옛날부터 금강산의 엄연한 일원으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화암사만의 희망사항 인지는 모르겠음, 굳이 영역을 따진다면 설악산 화암사가 적당해 보임) 이 절은 769년 진표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화엄사라 했다고 하는데, 그는 이곳 부근에 서 지..

1. 치악산 산주름에 고적하게 깃들여진 보문사 치악산 주능선 중간에 솟은 향로봉(1041m) 서쪽 자락 660m 고지에 보문사가 포근히 깃들여져 있 다. 이곳은 신라 경순왕 시절에 무착이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는 실정 이며,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 적당한 사적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경내에 고려 후기 것으로 보이는 청석탑이 전하고 있어 적어도 고려 중기 이후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중창했다고 하며, 그때 관세음보살을 봉안하고 신행결사도량으로 삼아 절 이름을 보문련사라 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이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라 ‘웃고문절’이 란 별칭도 지니고 있었다. 1930년에 강상준이 중건하고, 1971년 주지인 이백련화가 중창하여 지..

1. 겨울에 잠긴 치악산 보문사 국형사에서 고문골길을 따라 30~40분 정도 오르면 해발 660m 고지에 자리한 보문사가 모습을 비춘 다. 치악산 주능선 중간에 솟은 향로봉(1,041m) 서쪽 자락에 외롭게 깃들여진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 시절에 무착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아마도 무착이 국형사와 같이 지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으며,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 적당한 사적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경내에 고려 후기 것으로 보이는 청석탑이 전하고 있어 적어도 고려 중기 이후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중창했다고 하며, 그때 관세음보살을 봉안하고 신행결사도량으로 삼아 절 이름을 보문련사라 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이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라 ‘웃고문..

1. 대웅전 뜨락에 세워진 5층석탑 근래 지어진 탑으로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하얀 피부를 자랑한다. 2. 대웅전 석축 밑에 작게 깃든 샘터 3. 천불전 내부 석가여래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로 이루어진 석가3존상이 중심에 자리해 중생들의 하례를 받는다. 그들 좌우로 금동 피부의 조그만 불상이 무려 1,000기가 자리해 천불을 이루고 있으며, 석가3존상의 허공에는 금색 피부의 화려한 닫집이 장엄하게 자리해 가히 두 눈을 부시게 한다. 4. 호법신들을 빼곡히 머금은 천불전 신중탱 5. 대웅전 석가3존상 차분한 모습의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자리해 석가3존상을 이룬다. 6. 팔작지붕을 펄럭이는 국형사 천불전 7. 고운 자태를 자랑하는 석조관세음보살상 8. 평화롭고 차분한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