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북동 선잠단 (선잠단터 표석)성북동 성북초교 동쪽에는 조선시대 국가 제단 유적인 선잠단이 있다. 선잠단은 누에를 처음 쳤다는 서릉씨를 양잠의 신으로 삼아 제(선잠제)를 지내던 곳으로 여기서 누에는 의식주의 '의'를 해결해주던 소중한 존재들이다. 하여 나라에서 누에의 풍년 및 양잠 장려를 기원하는 제단을 만들어 선잠제를 지냈으며, 사직단과 선농단, 영성단 만큼이나 크게 애지중지되었다. 선잠단은 고려 때 시작되었는데, 조선으로 천하가 변경된 이후, 1414년~1430년 사이에 이곳으로 이전 조성되었다. 1475년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선잠단의 크기는 사방 2장 3척, 높이 2척 7촌이며, 사방으로 나가는 계단을 내었다. 그리고 제단을 둘러싼 상단과 하단의 담장 둘레는 각각 25보였..
1.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찬 성북동 너머로 북한산(삼각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전시안내센터가 있는 도 성 성곽 안쪽은 종로구 혜화동, 성곽 바깥은 성북구 성북동이다. 2.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 성북동 남부 지역과 숲동산을 이루고 있는 성북공원, 그리고 한신한진아파트가 두 망막에 들어온다. 3.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옛 서울시장공관) 정문 기둥에 박힌 서울미래유산 딱지 4.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정문에서 전시안내센터로 인도하는 계단길 (정문 방향) 5.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정문에서 전시안내센터로 인도하는 계단길 (전시안내센터 방향) 6.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정문 대법원장 공관과 서울시장 공관 등 ..
1. 성곽 여장이 둘러진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동쪽 뜨락 이곳은 전시안내센터 뜨락의 동쪽 구석이다. 한양도성 성곽에 완전히 막힌 곳으로 성곽 여장 너머로 혜화문(동소문) 북쪽 성곽과 혜화문, 낙산(낙타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2. 봄이 내려앉고 있는 전시안내센터 남쪽 뜨락 3. 그림 같은 2층 양옥,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옛 서울시장 공관) 집도 그림 같지만 뜨락 또한 그림 같은 풍경이다. 완전 수채화 속에 그려진 상큼한 곳. 4. 수풀과 꽃들이 달달하게 자라고 있는 전시안내센터 북쪽 뜨락 (서쪽 방향) 5. 수풀과 꽃들이 달달하게 자라고 있는 전시안내센터 북쪽 뜨락 (동쪽 방향) 6. 전시안내센터의 서쪽 모습 (옛 서울시장 공관) 전시안내센터 서쪽에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가 있다. 7...
1.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 제3전시실 유물 서울시장 제22대, 제31대를 지냈던 고건이 시장 시절, 자신의 집무실 책상 유리 밑에 항상 끼워두었 던 도시고속화 도로망도와 지하철 노선망, 그리고 2000년 7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사용했던 업무 일정표이다. 2. 오세훈이 예전 시장 시절에 입었던 개량한옥과 그들 부부의 이름이 새겨진 컵 오세훈은 온갖 말도 안되는 토목공사질과 온갖 뻘짓, 그리고 학생들 급식 문제로 개난리를 피우다가 떨려날 때까지 이곳 공관을 이용했다. 그때 입었던 개량한옥과 그들 부부의 이름이 쓰인 컵을 이곳에 남겼는데, 어리석은 서울 시민들은 그 작자를 또 시장으로 뽑아주는 희대의 개짓을 보여주었다. 오늘 도 여러모로 고통 받는천하 제일의 대도시 서울... 3. 이명박이 남..
1.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 (옛 서울시장 공관) 혜화문(동소문) 북쪽이자 한양도성 안쪽 높은 곳에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가 있다. 이곳은 예 전 서울시장이 사용하던 공관으로 왜정 말기인 1941년에 지어진 2층 목조 건물이다. 1959년까지 개인 주택으로 살다가 1959년부터 20년 동안 대법원장 공관으로 쓰였는데, 4.19혁명 재 판의 판결문이 작성된 현장이기도 하다. 1981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시장의 공관으로 쓰였으며, 이 후 버려져 철거까지 논의되다가 보존으로 결정,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로 속세에 해방되었다. 1층과 2층은 전시안내센터로 각각 2개와 3개 전시실(제1,2전시실은 1층 / 제3,4,5전시실은 2층)을 지 니고 있으며, 한양도성과 혜화문(동소문), 서울시장..
1. 개화산둘레길 (강서둘레길1코스, 개화산 숲길) 2. 개화산 약사사 석불입상 3. 개화산 미타사 석불입상 4. 약사사로 인도하는 개화산자락길(금낭화로17길) 5. 약사사를 알리는 표석 6. 개화산 약사사 경내 7. 약사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뜨락 8. 약사사 범종각 9. 약사사 삼성각 10. 약사사 감로당 11. 약사사3층석탑 12. 약사사 대웅전 13. 대웅전의 붉은 닫집과 불단을 장식하는 여러 불상과 보살상들 14. 약사사 석불입상 15. 약사사 돌담길 16. 약사사에서 개화산전망대로 이어지는 개화산둘레길 17. 개화산전망대 18. 개화산전망대에 설치된 겸재 정선의 그림 설명문 19. 개화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방화대교와 난지도, 고양시 화전 지역, 서울 서북부, 북한산(삼 각산), 남산 20. 개화산..
1. 한양도성 혜화문(동소문) 혜화동로터리에서 삼선교(한성대입구)로 넘어가는 혜화동고개(동소문고개) 북쪽 가파른 곳에 혜화 문이 자리잡고 있다. 혜화문은 한양도성 사소문(북소문-창의문, 서소문-소의문, 남소문-광희문, 동소문-혜화문)의 일원으 로 처음에는 홍화문이라 불렸다. 그러다가 1511년 혜화문으로 이름을 갈았으며, 임진왜란 때 문루가 소실되어 사라진 것을 1744년에 다시 지었다. 혜화문은 동소문, 소청문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주변 지역이 새들로 인해 농사 피해가 심하자 이를 막고자 비보풍수의 일환으로 문 천정에 봉황을 그려넣었다. 고약했던 왜정 시절에 서소문, 서대문(돈의문)과 함께 강제 철거되는 비운을 겪게 되는데, 1928년 문 루를 없애고, 1938년에는 남아있던 홍예문을 부셔버리고 그 자..
1.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 2. 북한산둘레길 마실길 돌탑 3. 숙용심씨묘표 4.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 북한산초교 입구 5. 내시묘역길 (북한산초교에서 경천군 송금비 구간) 6. 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 (경천군 송금비) 7. 경천군 송금비 주변 8. 경천군 송금비에서 백화사로 이어지는 내시묘역길 9. 200년 이상 묵은 중골마을 느티나무 10. 여기소터 표석 11. 내시묘역길 남쪽 구간 (북한산 램핑장 주변) 12. 북한산둘레길 마실길 북쪽 시작점 13. 마실길 진관천 벼랑길 14. 마실길 돌탑 구간 15. 마실길 느티나무 16. 마실길 돌탑들 17. 마실길 은행나무숲길 18. 영산군 이전 묘역 19, 충희공 영산군 신도비 20. 이종 내외묘와 묘비 (영산군 이전 묘역) 21. 영산군의 손자인 이..
1. 이봉창 의사 집터 효창동 용산KCC스위첸아파트 102동 뒷쪽에는 이봉창 집터를 알리는 표석이 있다. 이봉창은 이곳 에서 1931년까지 살다가 상해로 건너갔으며, 상해임시정부의 명을 받고 왜열도 동경으로 넘어갔다.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코쿄(황거, 왜왕과 그 떨거지들이 서식하 는 곳)로 돌아가던 왜왕에게 폭탄을 던져 왜왕 패거리를 살처분시키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훈련 및 준비 부족으로 명중시키지 못하고 붙잡히면서 거사는 실패하고 만다. 그해 10월 왜국은 비공개 재판을 벌여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며, 며칠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그의 시신은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집 근처인 효창공원에 고이 안장되었다. 이봉창의 의거 이후, 이봉창 가족들은 왜정의 극..
1. 청파배다리터 청파배다리는 지금은 강제 생매장되어 사라진 만초천에 있던 배다리로 서울(한양) 도성에서 원효로, 청파동, 산천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그 배다리는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지고 없고, 청파동 3거리에 그를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이 그의 제자리는 아니며, 여기서 북쪽으로 300m 떨어진 경부선 철길에 있었는데, 그 철길은 물론 주변에도 표석을 심을 자리가 없어서 다소 거리가 있 는 이곳에 세운 것이다. (서울 장안에 세워진 역사문화유산 표석 중 제자리에서 떨어진 곳에 세워진 경우가 꽤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