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완도 약산항일운동기념공원 (약산항일운동기념탑)섬이 많은 전남 완도군에는 조약도라는 큰 섬이 있다. 약산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그는 한때 약산도라 불리기도 했는데, 고금도와 약산연도교로 이어져 있어 완도읍과 육지(강진군)에서도 편히 접근이 가능하다. 격으로 운행하며 버스비는 무료 / 광주에서 약산 당목으로 운행하는 시외직행버스가 1일 2~3회 정도 운행하며 강진, 고금, 약산도 장용리 경유> 약산면의 중심지인 장용리에는 약산항일운동기념탑이 자리해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잠시 숙연하게 한다. 이곳은 장용리(약산면사무소, 약산중고교가 있는 곳)에서 당목항으로 넘어가는 길목 고개로 약산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완도 지역은 고약했던 왜정 시절,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고장이다..

1. 보성 구 벌교금융조합 보성군에서 2번째로 큰 고을인 벌교읍내에는 20세기 초/중기 근대 건축물이 여럿 전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1918년에 왜인이 지은 벌교금융조합이 있다. 그것들이 이곳에 금융조합을 세운 것은 여기가 벌교읍내 번화가로 들어서는 첫 삼거리이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건물을 지었으니 이용 수요는 물론이요, 벌교읍내의 많은 돈이 이곳을 거쳐갔 다. 왜정 시절 흔히 쓰이던 관공서 스타일로 지금은 금융조합에서 물러나 금융조합전시관으로 조용히 살 아간다. 내부에는 벌교금융조합의 역사와 우리나라 화폐, 금융사를 간단히 다룬 전시관과 소설 태백 산맥 필사 체험장, 왜정 시절과 1950~60년대 옷 체험 공간이 있으며, 건물 조성시기부터 쓰였던 큰 금고가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허나 아..

1. 벌교읍 보성여관 보성군에서 2번째로 큰 동네인 벌교읍내에는 20세기 초/중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는 보성여관이란 왜식 건물이 있는데, 그는 1935년에 왜인이 지은 2층짜리 왜식 여관이다. 벌교는 낙안군(순천 낙안면)에 속한 작은 포구로 벌교포라 불렸는데, 1910년 이후 왜열도에서 사업가 와 자본가, 일반 서민들이 잔뜩 몰려와 서식했다. 그것들이 벌교에 군침을 흘린 것은 여자만을 낀 포 구와 육상교통의 중심지로 상업, 공업, 농업의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후 경전선(삼 랑진~광주송정) 철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은 한층 좋아졌으며, 그로 인해 인구가 크게 늘어났다. 보성여관은 왜인과 돈 꽤나 주무르던 현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던 여관 겸 까페로 1층은 객실, 2..

1. 화순 쌍봉사 대웅전 2. 쌍봉사 연못 3. 연못 바위에 걸터앉은 돌거북 4. 쌍봉사 천왕문 5. 쌍봉사 대웅전 6. 대웅전 목조삼존불상 7. 쌍봉사 호성전 8. 조주대사의 진영와 철감선사의 진영 9. 쌍봉사 나한전 10. 쌍봉사 극락전 11.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2. 쌍봉사 지장전 13. 지장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지장탱 14. 시왕상과 불꽃을 휘날리고 있는 금강역사상 15. 경내에서 철감선사탑으로 인도하는 숲길 16. 쌍봉사 철감선사탑 17.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18. 쌍봉사 철감선사탑비의 뒷모습

1. 여수 충민사, 석천사 모형도 (충민사 유물전시관) 2. 충민사 숭모문 3. 충민사 외곽 공원 4. 연등동 벅수 모조품 5. 충민사 홍살문 6. 충민사 약수터 7. 충민사 정화사적비 8. 충민사 외삼문 9. 충민사 내삼문 10. 충민사 본전 11. 충민사에 봉안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12. 충민사에 봉안된 의민공 이억기 영정 13. 충민사에 봉안된 충현공 안홍국 영정 14. 충민사 사적비 15. 옛 충민사의 주춧돌들 16. 충민사 옆 석천사 17. 석천사 석조관세음보살입상 18. 석천사 대웅전 19. 석천사 석조 20. 석천사 동백나무 21. 충민사 유물전시관 22. 충민사 유물전시관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존재들 23. 왼쪽부터 계사일기(1593년), 갑오일기(1594년), 병신일기(15..

1. 보성 열선루와 보성읍성의 희미한 흔적들 (열선루와 보성읍성 석물) 보성초등학교와 보성남초등학교 사이에 열선루의 흔적과 보성읍성터의 흔적, 짧게 복원된 보성읍 성, 그리고 쉼터를 지닌 작은 공원이 있다. 2009년 이곳에 보성군청 신축 공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보성읍성터의 흔적인 4개의 활주석과 9개의 외벌대(댓돌)가 발견되었는데, 2014년에는 보성초교~부평간 도로 개설 공사를 하다가 보성초교 부 지에서 열선루의 주춧돌 4기가 발견되었다. 열선루는 보성 고을의 관아 누각으로 팔작지붕 2층 규모였다. 보성읍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 여 읍성 내부를 굽어봤는데, 이순신 장군이 1597년 8월 15일 선조의 어이없는 수군 폐지 어명을 받 았던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이때 이순신은 그 유명한 어록 '신에..

1. 보성향교의 정문인 외삼문 보성읍내에 자리한 보성향교는 1397년에 보성군수 김유양이 세웠다. 향교는 조선 조정에서 서울을 제외한 전국 고을에 세운 국립중등교육기관으로 공자와 맹자 등 두 귀에 익히 익은 동이족 출신 유교 성현과 중원대륙 성현, 신라와 고려, 조선 성현들을 봉안한 대성전과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숙식 공간인 동재, 서재, 대성전의 보조 공간인 동무, 서무 등을 지니고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1602년에 현재 위치에 다시 지었으며, 왜정 시절인 1921년 보성 유 림들이 항일 의거를 펼쳤던 곳이다. 1921년 8월 왜정이 보성향교 문묘대제에 올릴 제주에 대해서 주 세령 위반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멋대로 봉인하는 무례를 범했는데, 이에 유림들이 크게 반발하여 그 ..

1. 보성 오충사 충의당 보성읍내에 자리한 오충사는 퇴휴당 선윤지, 평양공 선형, 친친재 선거이, 매곡 선세강, 강의재 선약 해 등 보성선씨 5인이 봉안된 사당이다. 퇴휴당 선윤지는 1382년 전라도관찰사겸 안렴사로 조양, 복흘에 쳐들어온 왜구를 토벌하고 남해 관 음포에서 왜구의 잔당을 섬멸하는 공을 세웠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크게 통곡하며 보성으로 내려 와 안착했으며, 지역 사람들에게 유학을 가르쳤다. 그에게 감명을 받은 지역 사람들은 그가 살아있음 에도 생사당을 세우고 그의 진영까지 봉안해 한식일에 제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평양공 선형은 해서백으로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선거이는 임진왜란 시절에 독성, 행주, 금영, 운봉, 화산, 곤양 등에서 왜군을 토벌했다. ..

1. 채동선 선생 생가 벌교읍내 북서부에 민족음악가로 명성이 높은 채동선(1901~1953) 선생의 생가가 있다. 채동선은 벌교읍에서 태어나 순천공립보통학교와 제일고등보통학교(현재 경기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제일고 보 시절 친일파 홍난파의 바이올린 독주에 퐁당 반하여 1년 동안 그 작자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바이올린을 한참 익히던 그 시절 3.1운동이 발생하자 거기에 가담했으며, 그로 인해 왜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왜열도로 홀연히 유학을 떠났다. 1924년 와세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바이올린 수업을 계속 들었고, 1926년 독일 슈테르센 음악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1929년 귀국해 4차례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다. 1932년 가곡 '고향'을 발표했으며, 1937년 왜정의 감시와 제재가 심해지자 ..

1. 벌교천 소화다리(부용교) 벌교읍내 북쪽 벌교천에 걸려있는 소화다리(부용교)는 1931년 8월에 지어진 철근콘크리트 다리이다. 흔히 소화다리라 불리는데, 다리가 완성된 1931년은 왜정 시절로 왜국은 20세기 한복판은 물론 지금 까지도 왜왕의 연호를 날짜에 쓰는 미개함을 보이고 있다. 그때(1931년) 왜왕은 소화(쇼와)로 그가 왕이 된지 6년째 되는 해라 소화 6년을 썼다. 다리가 완성된 이후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왜인들의 소행으로 여겨짐) 자연스럽게 소화 시기에 지어진 다리라고 해서 소화다리가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많이 부른다. 1948년 여순(여수, 순천) 사건과 6.25 시절 비극의 상처가 서린 곳으로 남한(우익)과 북한(좌익)이 벌 교읍을 차지할 때마다 이 다리 위에 적들을 세우..

1. 벌교 현부자네집 벌교시외터미널 북쪽에 보성의 대표 명소로 크게 추앙을 받는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다. 조정래가 쓴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조정래에 대해 다루고 있는 문학관으로 그 동쪽에 태백산맥에 나오는 '현부자 네집'과 '소화의집'이 있는데, 이들은 기존 기와집에 현부자네집, 소화의집이라 이름만 붙인 것이다. 태백산맥문학관은 유료의 공간으로 입장료를 흔쾌히 치루고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내부 촬영은 통제 되어 있어 사진에 담은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태백산맥의 내용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이 없어 본글 에서는 태백산맥문학관과 태백산맥 소설에 대해서는 쿨하게 생략한다. 현부자네집과 뒷쪽에 있는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것으로 지금은 태백산맥 명소로 속세에 개방되 어 있는데, 대문과 안채는 한옥의 기본 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