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칠궁 재실(송죽재, 풍월헌)청와대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칠궁은 조선 왕실의 사당이다. 북악산(백악산) 그늘이자 청와대 바로 서쪽인 이곳은 제왕이나 친왕(황제의 아들)의 모친이지만 왕후(황후) 반열에 들지 못한 후궁들의 사당으로 이런 사당을 사친묘라고 한다.이곳에는 저경궁(선조의 후궁이자 추존 원종의 생모인 인빈김씨)과 대빈궁(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장씨), 선희궁(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장조의 생모인 영빈이씨), 경우궁(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 덕안궁(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 귀비 엄씨), 육상궁(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 연호궁(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진종의 생모인 정빈이씨) 등 궁을 칭하는 사당 7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에는 원래 육상..

1. 경복궁 동십자각경복궁의 오랜 정문인 광화문, 그 동쪽에 있는 경복궁교차로 북쪽 부분에 동십자각이 우뚝 자리해 있다. 지금은 도로 사이에 외롭게 자리해 있고 동십자각 윗도리로 올라가는 길 또한 막혀있어서 길 건너편에서 그림의 떡처럼 대해야 되는데, 그는 광화문 좌우 담장 끝에 세워진 망루로 간단하게 '궐'이라 부른다. 흔히 왕궁을 궁궐이라 부르는데, 이는 궁과 망루 궐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망루의 모습이 십자(十字)처럼 생겨서 십자각이란 이름을 지니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광화문 담장 동쪽 끝에는 동십자각, 서쪽 끝에는 서십자각이 자리해 경복궁을 지켰다. 허나 평면 모습은 '십자' 모습이 아닌 사각형이며, 허공에서 볼 때 용마루가 십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모습이다. 또한 망루와 맞닿은 궁장이 십..

1. 수강재의 맞배지붕 창고 수강재 동쪽에는 길쭉한 모습의 창고 2채가 있다. 이들은 수강재가 있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낙선재 구역에 필요한 식량과 물자, 재물을 머금던 창고로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은 팔작지붕, 뒷쪽 건물은 맞배지붕 건물이다. 지금은 텅 빈 창고로 굳게 잠겨 있으며, 동쪽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를 가르는 돌담이 둘러져 있다. 2. 수강재의 팔작지붕 창고 3. 동쪽에서 바라본 낙선재 중심부(낙선재 본채, 석복헌, 수강재)의 외경 왼쪽 부분이 낙선재 본채의 대문간채, 중간이 석복헌의 대문간채, 그리고 오른쪽이 수강재의 행랑채 및 대문간채이다. 이들은 강인한 협동심으로 낙선재 구역 중심부가 외부에 보이지 않도록 꽁꽁 품고 있다. 4. 낙선재 우물 낙선재 식구들의 식수를 책임지던 늙은 ..

1. 낙선재 뒷쪽 꽃계단 낙선재와 석복헌, 수강재 뒷쪽(북쪽)에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4단의 꽃계단(화계)을 닦았다. 꽃계 단에는 키 작은 나무와 다양한 꽃을 심어 화사하게 꾸몄으며, 꽃계단 앞에는 괴석(수석)과 굴뚝, 석지 등의 장식물을 두었다. 꽃계단 윗도리로 담장이 둘러져 있고, 그 너머로 기와집 하나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그는 6각 형 건물인 상량정이다. (상량정은 통제구역) 2. 낙선재 꽃계단 앞에 자리한 석지(석조) 크고 견고한 돌을 네모나게 다지고 그 안에 수분 공간을 만든 커다란 석조이다. 이런 석조를 돌 연못 을 뜻하는 석지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곳 석지는 채워줄 수원이 따로 없어 부근 샘에서 물을 가져오거나 하늘이 준 비로 채워야 되는데, 내가 갔을 때는 봄비가 한동안 내리지..

1. 창덕궁 칠분서, 삼삼와, 승화루 (왼쪽부터) 후원입구와 함양문 남쪽에는 칠분서와 삼삼와, 승화루라 불리는 기와집이 한 덩어리로 몰려있 다. 이들은 별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나 하나로 연결된 건물로 이들과 주변 숲, 상량정에서 접 근하는 문은 접근이 통제되어 있다. 하여 후원입구 앞 탐방로에서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는 것으 로 만족해야 된다. (이들은 늘 금지구역으로 묶여있었음) 칠분서와 삼삼와, 승화루는 오래전에 사라진 중희당의 부속 건물로 중희당은 왕세자(황태자)가 살던 동궁의 중심 건물이다. 왕세자의 공간인 동궁은 중희당을 중심으로 칠분서, 삼삼와, 승화루, 그리고 세월이 잡아간 유덕당, 석유실, 자선재 등을 지니고 있었는데, 중희당은 함양문/후원입구 앞 탐방로에 있었다. 동궁의 중심을 이루던 중..

1. 연경당 사랑채의 뒷모습 연경당의 중심 건물인 사랑채 옆으로 안채가 연결되어 있고, 사랑채 앞뜰과 뒷뜰, 그리고 안채 앞 뜰과 뒷뜰 사이에는 담장이 둘러져 서로의 경계를 긋는다. 2. 연경당 서쪽 돌담길 (북쪽 방향) 연경당에서 후원 숲을 가로질러 취규정, 옥류천 구역으로 이어지는 숲길이다. 여기서 취규정까지 는 약 300m 거리로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내가 갔을 때는 빗장이 풀린 상태였으나 종종 빗장이 걸려 통제되는 경우가 있음) 3. 연경당 서쪽 돌담길 (남쪽 방향) 붉은색 단풍나무와 녹음이 짙어가는 나무들이 돌담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아름다움을 견준다. 사 람들은 그들 사이를 거닐며 봄내음에 푹 잠긴 후원 풍경을 즐긴다. 4. 연경당에서 취규정, 옥류천 구역으로 넘어가는 숲길 5. 연경당의 통..

1. 연경당 농수정 선향재 뒷쪽(동북쪽) 언덕에는 1칸짜리 사모지붕 정자인 농수정이 자리해 있다. 선향재 뒷쪽에 4단의 꽃계단(화계)을 닦고 그 위에 농수정을 상큼하게 얹혀 놓았는데, 선향재 북쪽에 농수정으 로 인도하는 돌계단을 내었으나 문화유산 보호로 접근이 통제되어 있다. 하여 돌계단 밑에서 그 림의 떡처럼 바라봐야 된다. (농수정은 접근 금지) 언제 지어졌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선향재와 비슷한 고종 시절로 여겨지며, '농수'란 이름은 '짙은 빛으로 수를 놓는다'는 뜻이다. 1884년에 고종과 왕세자(순종) 부자가 농수정에서 그들 생애의 첫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촬영을 한 사람이 미국 사람 퍼시벌 로웰이다. 2. 연경당 선향재 연경당 사랑채 동쪽이자 농수정 밑에 자리한 선향재는 이곳의 서재이다. 사랑..

1. 봄내음이 가득한 연경당 대문(장락문) 앞 애련정 구역 서쪽 숲에는 연경당이란 너른 기와집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 선향재, 행랑채, 농수 정, 반빗간 등을 지니고 있어 궁궐 속의 사대부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1827년(또는 1828 년)에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부왕인 순조와 모후인 순원왕후 김씨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식 과 진작례를 위해 진장각 옛터에 세운 것으로 그 시절 부왕(순조)을 대신해 국정을 살피면서 왕 권 강화를 추구했던 그의 숨은 의지가 담겨져 있다. 조선 궁궐에서 거의 흔치 않은 양반사대부가로 99칸을 넘는 120칸(지금은 109칸 반만 남음) 규 모를 자랑해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큰 집이다. 이렇게 지은 것에 대해서는 효명세자가 사대부가 체험을 하려고 지었다는 설, 순조가 ..

1. 애련정 불로문 (동쪽에서 바라본 모습) 기와돌담 사이로 불로문이라 불리는 돌문이 있다. 2개의 주춧돌 위에 돌기둥을 세우고, 돌기둥 윗도리를 90도 좌우로 구부려 지붕을 삼은 정말 수수하고 단출한 모습으로 불로문의 '불로'는 인간들의 최대 욕심인 늙지 않고 오래산다는 뜻이다. 저 돌문을 지나면 애련지를 중심으로 한 애련정 구역이 그림처럼 펼쳐지는데, 애련정 구역은 애 련지와 애련정, 기호헌, 운경거 등을 지니고 있다. 2. 불로문의 안쪽 모습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3. 불로문 안쪽 의두합 앞 왼쪽(남쪽)에는 의두합이, 오른쪽(북쪽)에는 애련지가 펼쳐져 있다. 4. 의두합 앞 금마문 5. 의두합(기오헌) 의두합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청 2칸에 우측에는 온돌방, 좌측은 내..

1. 태극정 창덕궁 후원 옥류천 구역에 자리한 태극정은 1칸짜리 팔작지붕 정자이다. 내부에 마루를 깔고 퇴를 달아 평난간을 둘렀는데, 천정은 우물천정으로 지붕 꼭대기에는 절병통을 얹혔 다. 1636년에 세워진 것으로 처음에는 '운영정'이라 불렸으나 나중에 태극정으로 이름이 갈렸 다. 언제 변경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며, 인근 소요정, 청의정과 함께 '삼림삼정' 의 하나로 추앙을 받았다. 태극정이 있는 옥류천 구역은 옥류천 계곡을 중심으로 달달하게 꾸며진 정원이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북쪽이자 가장 깊은 골짜기로 숲에 푹 묻혀있는 산속인데, 오랫동안 금지 구 역으로 묶여있다가 2000년 이후 부분개방으로 속세에 열렸다. 그러다가 이제는 거의 자유 공간이 되어 창덕궁 중심구역+후원 입장권만 있으..

1. 창덕궁 후원 부용지창덕궁 중심 구역에서 후원입구를 거쳐 후원 구역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부용지를 중심으로 한 부용지 구역이 마중을 한다.부용지 구역은 네모난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부용정, 영화당, 주합루, 서향각, 희우정 등이 달달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연못 한복판에는 작고 동그란 섬을 운치있게 띄워놓아 이른바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을 상징하고 있다.부용지 한복판 섬에는 소나무와 여러 수풀이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며 그들만의 푸른 세상을 일구고 있으며, 못 서쪽에는 샘터를 두어 연못의 수분을 계속 채워준다. 부용정과 영화당은 접근이 가능하고 영화당 툇마루는 걸터앉을 수 있으나 주합루와 서향각, 희우정, 천석정은 접근이 통제되어 있으며, 부용지 서쪽 부분과 서쪽 숲 또한..

1.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서다 (후원입구에서 부용정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창덕궁은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경운궁), 경희궁과 함께 조선시대 서울 5대 궁궐의 일 원이다. 1405년 태종이 경복궁의 이궁(별궁)으로 세운 것으로 경복궁 다음급의 궁궐이 었으며, 경복궁 부재 시절(1592~1868)에는 조선의 중심 궁궐(법궁)로 바쁘게 살았다. 1405년 인정전과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후원 등이 지어졌고, 1412년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이 세워졌다. 창덕궁 뒷쪽에는 62,000평의 후원을 달달하게 두었는데, 1463년 그 후원을 15만여 평으로 크게 늘려 창덕궁 영역을 상당히 불렸다.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647년에 광해군이 세웠던 인경궁 건물을 가져와 복구했으며, 1917년 큰 화재로 대조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