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남쪽을 바라보고 선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조선시대 궁궐 대문 중 가장 늙은 건물이 다. 1412년 5월에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609년에 중수했다. 문의 이름인 '돈화'는 중용에서 인용한 것으로 '공자의 덕을 크게는 임금의 덕에 비유할 수 있다'는 뜻인데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처음에는 문의 이름을 내건 현판이 없었으나 성종 때 서거정을 시켜 문 이름을 지어서 현판 을 걸었으며, 2층 문루에는 종과 북이 있어서 정오와 인정, 파루에 시각을 알려주었는데, 정 오를 알리고자 북을 치니 이것을 오고라 했고, 인정은 통행금지를 알리고자 28번 종을 치는 것이며, 파루는 통행금지 해..
1. 경희궁 뒤쪽에서 바라본 경희궁 숭정전~태령전 구역과 서울 도심(광화문 주변) 정면에 뒷통수를 보인 집이 태령전, 그 너머로 용머리를 내민 집이 숭정전과 자정문, 왼쪽에 온전하게 보이는 팔작지붕 집 이 자정전이다. 2. 경희궁 태령전, 서암 뒤쪽 산책로 3. 영렬천 경희궁 뒤쪽 언덕 숲길에 영렬천이란 조그만 바위샘이 있다. 이곳은 지금은 사라진 경희궁 위선당 뒤쪽으로 물이 늘 마르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그 물도 매우 차가워 초정이라 불렸다. 서암에 있는 샘터와 함께 경희궁의 식수를 책임지던 곳으로 선 조의 글씨를 집자한 영렬천 바위글씨가 샘 위에 새겨져 있다. 4. 지금도 선명하게 남은 영렬천 바위글씨 이곳은 경희궁 위선당 뒤쪽이자 숭정전 서쪽으로 경희궁에서 가장 서쪽 구석이다. (숭정전, 태령전,..
1. 경희궁 태령전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영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다. 원래는 딱히 용도가 없는 잉여 건물이었으나 영조 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 이 건물을 중수해 이곳에 어진을 봉안했다. 왜정 시절에 파괴된 것을 2000년에 서궐도안을 참조해 복원했으며, 현판은 석봉 한호(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해 제작했다. 건물 안에는 근래 모사된 영조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어 건물의 역할과 기능은 여전하다. 2. 태령전에 봉안된 영조의 어진 3. 굳게 닫힌 태령문 (태령전 정문) 태령전은 왕년의 시절에도 궁역 서쪽 구석이었고, 아주 작게 복원된 지금도 서쪽 구석이다. 태령전의 정문인 태령문은 늘 닫혀있기 때문에 여기서 숭정문으로 다시 돌아나가야 된다. 4. 자정전 뒤쪽 바위 (서암 동쪽 바위)..
1. 경희궁 숭정전 숭정전은 경희궁의 중심 건물(법전, 정전)로 1618년에 세워졌다. 경종과 정조, 헌종이 여기서 즉위를 가졌으며, 1926년에 왜정이 조계사에 팔아먹어 조계사로 넘어갔다가 동국대로 이전되어 불당인 동국대 정각원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이곳 숭정전은 1988년에 복원된 것으로 흥화문처럼 복원은 되었으나 완전하게 이전은 하지 않아 숭정전의 원본은 동국대 정각원으로 계속 머물러 있다. 경희궁의 정전이긴 하나 다른 궁궐과 달리 궁역 한복판이 아닌 가장 서쪽 구석에 치우쳐져 있으며, 건물 주위를 행각으로 빙 둘렀는데, 원래보다 작게 복원되어 경복궁, 창덕궁 정전에 비해 협소하다. 그 뒤에는 편전인 자정전이 자리해 있다. 2. 숭정전 돌계단과 석대 돌계단과 석대를 숭정전이 제자리를 떠나고 ..
1. 경희궁 흥화문 경희궁은 덕수궁(경운궁)과 함께 서궐의 일원으로 조선 후기에 이궁으로 바쁘게 쓰였던 곳이다.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 뒤쪽에 복원된 일부만 남아 꽤 초췌한 모습이나 왕년에는 이 주변을 모두 아우르며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을 지녔던 궁궐이다. 그 규모는 현재 덕수궁 이상이었다. 경희궁 자리는 인조의 아비인 원종(덕흥대원군)의 사저가 있던 곳으로 광해군은 창덕궁을 중건하고 인왕산 자락 필운동 에 인경궁과 원종 사저 자리에 경덕궁(경희궁)을 세워 왕실의 위엄을 드높이고자 했다. 경덕궁은 1617년에 짓기 시작해 1623년에 완성을 보았으며,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같은 발음이라 1760년 경희궁으로 이름이 갈렸다. 도성 서쪽에 있어서 간단하게 서궐이라 불렸으며, 인조부터 철종까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