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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그랗게 누워있는 종친부터 우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울관) 자리에는 조선 왕실 관청인 종친부가 있었다. 종친부는 제왕의 어보

와 영정을 보관하고, 제왕 내외의 의복을 관리하며, 왕족들의 관혼상제와 봉작, 벼슬 등의 인사문제,

기타 그들과 관련된 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처음에는 제군부라 했으나 1433년에 종친부로 이름을

갈았으며, 1864년에는 종부시와 합쳐졌고. 1894년 종정부로 개편되었다.

 

1907년 순종의 칙령으로 황실과 국가의 주요 문서를 보관하던 규장각으로 쓰였으며, 왜정은 이곳

에 있던 서적들을 경성제국대학(서울대)으로 모두 옮겼다. 그리고 천한전(天漢殿), 아재당(我在堂)

등 종친부에 딸린 건물 상당수를 부셔버리고 종친부의 중심 건물인 경근당과 옥첩당, 이승당(貳丞

堂)만 남겨 망국 황실을 제대로 욕보였다. (이승당은 1950년대에 사라졌음)

 

20세기 중반 이후, 이곳에는 국군서울병원(기무사)이 들어서 통제구역으로 꽁꽁 묶였으며, 경근당

과 옥첩당은 자리를 유지했으나 1981년 전두환 정권이 기무사에 테니스장을 지으면서 그들을 추방

시켰다. 하여 가까운 정독도서관으로 강제로 자리를 옮겨 30년 이상 샛방살이를 했다.

 

기무사는 2012년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고 그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미술관을 짓기에 앞서 발굴조사를 벌여 옛 종친부 건물의 주춧돌과 기초 시설이 다시금 햇살을 보

게 되었다. 경근당을 중심으로 좌측에 이승당, 우측에 옥첩당이 익랑으로 이어져 나란히 배치되었

으며, 경근당 앞에는 돌로 다진 월대가 있었다는 옛 기록과 같은 형태의 기초 유구가 나온 것이다.

하여 문화재청은 정독도서관에 머물던 경근당과 옥첩당을 제자리로 돌리기로 결정, 37억의 돈을

들여 기초유구가 발견된 자리에 그대로 갖다 놓아 2013년 12월 완성을 보았다. 그리고 국립고궁박

물관에 가있던 경근당과 옥첩당의 옛 현판까지 손질하여 제자리로 돌렸다.

 

현재 옛 종친부의 흔적으로는 경근당과 옥첩당, 늙은 소나무와 비술나무 3형제, 그리고 늙은 우물

이 있다. 우물은 1984년 기무사 뜨락 공사 때, 지하 3m에서 발견된 것으로 왜정 때 종친부가 크게

통을 당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우물 윗도리의 화강암 2개가 전부로 그것을 현재 위치로 옮겨 붙여넣었는데, 돌 상부에 네귀가 조

출(彫出)되어 있으며 우물 내부는 자연석을 쌓아 둥글게 쌓았다. 물받이 돌로 사용되었을 구조물 1

점이 우물 안에 놓여져 있는데 그는 네 귀가 조출되어 있지 않다.

이 우물처럼 화강암 2덩이를 동그랗게 이어 붙인 우물은 창덕궁과 운현궁 이로당 후원에도 있으며,

그의 조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말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위치한 곳이 종친부

자리라 조선시대 관청 우물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비록 우물이긴 하지만 제자리를 잃었고 그 윗도리만 수습해 놓은 것이라 완전히 죽은 우물이다. 그

안에는 수분 대신 잡석만 가득한데, 저리 우울하게 둘 것이 아니라 밑부분을 좀 파서 우물 티는 내게

했으면 좋겠다. 옛날처럼 물을 내지는 못해도 겉모습 정도는 챙겨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2. 종친부터 소나무

종친부 이승당터 주변에 푸르게 솟은 이 소나무는 120~130년 정도 묵은 것으로 높이 4.5m, 나무둘레

1.9m이다. 위치를 보아 종친부 관리들이 심은 것으로 보이는데, 옛날에는 종친부 뜨락, 기무사 시절

에는 기무사 뜨락, 그리고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뜨락에 꾸준하게 솔내음과 그늘을 베푼다.

 

3. 이승당터 표석

경근당 좌측에 있던 이승당은 1950년대에 무심히 사라지고, 이곳이 속세에 해방된 2013년 이후, 표석

을 세워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를 아련히 추억한다.

 

4. 이승당터 표석과 종친부터 소나무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5. 경근당(정면에 보이는 팔작지붕 건물)과 옥첩당

경근당은 종친부의 중심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길쭉한 팔작지붕 집이다. 왕족인 대군(왕후, 황

후 소생의 왕자)과 군(후궁 소생의 왕자) 등 종친들의 대청 역할을 했는데, 그 앞에는 마치 칼로 싹둑

다듬은 듯, 반듯하게 지어진 월대가 1단 낮은 높이로 누워있으며, 그 옆에는 부속건물인 옥첩당이 익

랑으로 연결되어 왕족과 궁궐 일을 돌보던 관청의 위엄을 보여준다.

옥첩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경근당의 보조 건물이다. 경근당은 좌우로 옥첩당과

이승당을 두었고 그들과는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들 건물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북악산

(백악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다. 다만 고종 초기에 흥선대원군이 종친부의 권한과 조직을 확대했는

데, 그 시절인 1866년 종친부 관청의 규모를 크게 늘리는 과정에서 중건되었다.

 

예전 정독도서관에서 저들을 본 것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휼륭한 고색 장식물이 되었다. 비록 그들이 이곳의 원래 주인이나 조선이 망하고 세상이 여

러 번 엎어지면서 주인과 부속물이 완전히 바뀌었으며, 비록 서울관 경내에 있지만 미술관 뜨락은 따

로 담장을 두르지 않은 열린 공간이라 24시간 언제든 둘러볼 수 있다.

 

6. 정면에서 바라본 경근당과 월대의 위엄

 

7. 경근당과 복도각으로 이어진 옥첩당

옥첩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허공에 뜬 복도각을 통해 경근당과 이어져 있다. 비

록 관청 건물이지만 왕실과 왕족 관련 업무를 보던 곳이라 궁궐 건축에 준하여 조성되었다.

 

8. 서쪽에서 바라본 경근당과 월대

 

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뜨락에 있는 종친부터 우물과 소나무, 이승당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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