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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오이도유적(오이도 선사유적공원)


' 시흥 오이도유적, 서해바다 나들이 '

오이도 북쪽 앞바다
▲  오이도 북쪽 앞바다

오이도유적 선사체험마을

오이도선사유적공원 움집(움막)

▲  오이도유적 선사체험마을

▲  오이도유적 움집

 


여름이 무심히 깊어가던 6월의 한복판에 친한 후배와 시흥 오이도(烏耳島)를 찾았다. 오
이도는 인천 월미도(月尾島)와 소래포구, 월곶포구와 더불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
가로 바다 구경, 해산물 섭취, 드라이브, 데이트 등으로 많이들 찾는 수도권에 대표적인
해안 명소이자 시흥시(始興市)의 1급 명소이다.

오이도는 육지에서 약 4km 떨어진 섬이었으나 1932년 육지와 섬 사이의 갯벌을 염전으로
쓰면서 육지화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후반 시화공단 조성으로 완전히 육지의 일원이
되었다.
오이도란 이름은 까마귀의 귀를 뜻해 까마귀와 관련된 섬 또는 이름 그대로 오이를 닮은
섬으로 잘못 생각하기 쉽다. 허나 옥구도(鈺玖島). 옥귀도(鈺貴島) 등과 묶어 오질애도,
오질이도라 불리다가 나중에 오이도로 이름이 간소화 되었으며, 왜정(倭政) 시절 한자음
을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서 지금의 오이(烏耳)가 된 것이다.

오이도는 바다 구경 및 해산물 섭취로 여러 번 찾았으나 이미 아득한 과거의 일이다. 오
랫동안 그를 잊고 살았으나 오이도 뒷산에 꽤 늙은 선사유적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 간만
에 그곳을 찾았다.


♠  오이도유적(烏耳島遺蹟, 국가 사적) 들어서기

▲  오이도해양단지, 옥터초교입구 정류장에서 오이도유적으로 인도하는
나무데크 계단길


오이도의 중심지인 오이도해양단지 동쪽에는 푸른 옷을 걸친 언덕이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다.
그는 오이도의 오랜 뒷동산으로 해발 72.9m의 낮은 뫼인데, 그 언덕에 오이도의 장대한 역사
를 알려주는 오이도 선사유적(오이도유적)이 진하게 깃들여져 있다. (본글에서는 오이도유적
을 품은 언덕을 오이도 뒷동산이라 칭하도록 하겠음)

오이도유적은 1960년대에 발견된 것으로 이후 두고두고 조사를 받았는데, 패총(貝塚, 조개더
미)을 중심으로 집터와 온돌유구 등이 나왔으며, 빗살무늬토기 등 토기 파편과 석기, 어망추
등 수천 점의 유물이 햇살을 보았다. 유적은 뒷동산을 비롯해 오이도의 대부분에서 확인되었
으며, 군부대가 있는 정상부에는 바다 건너 인천과 연락을 취하던 봉수대터가 있다.
신석기시대의 상징물인 빗살무늬토기를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음
을 알려주고 있으며, 이곳 패총(조개더미)은 서해안에서 가장 큰 패총 유적으로 주목을 받는
다. 그리고 신라 중기 집터도 여럿 나와 8~9세기까지 마을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하여 중부
서해안 지역의 선사시대 생활상과 신라 때 주거형식 및 온돌의 발전 과정을 파악하는데 최적
의 유적으로 크게 애지중지되고 있다.

발견된 유적은 보존을 위해 흙으로 싹 덮고 그 위에 수풀을 닦았으며, 유적이 나온 뒷동산 일
대 335,859m를 공원으로 손질해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으로 삼았다. 그리고 뒷동산 한복판이
자 동쪽 자락에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움집을 여럿 재현하고 선사시대 사람들의 모형을 만
들어 그 시절에 대한 이해를 돕는 한편, 이곳 유적의 성격과 존재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
다.
여기서 나온 유물은 오이도기념공원 해안에 닦여진 시흥오이도박물관에서 보관, 전시하고 있
는데, 이곳은 오이도유적 선사체험마을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오이도유적은 길게는 오이도선사유적공원, 중간은 오이도선사유적, 짧게는 오이도유적이라 부
르는데, 어느 이름이든 크게 상관은 없다. 재미가 별로 없을 것 같은 선사유적이긴 하나 공원
으로 달달하게 조성되어 있어 이곳이 선사유적임을 잊게 해주며, 숲도 무성하고 산책로도 상
큼하여 거닐기에 아주 좋다. 그리고 개발의 칼질로 사라진 오이도 안말(안마을)의 흔적(물발
원지라 불리는 우물과 당산나무)도 일부 전하고 있어 가까운 시대의 오이도 역사까지 머금고
있다.
또한 뒷동산 북쪽 부분은 서해바다와 접하고 있어 시흥시와 인천 사이에 좁게 자리한 서해바
다와 바다 너머로 나날이 몸집을 불리고 있는 인천 연수구(延壽區) 동남부 지역이 시야에 들
어오는데, 지나친 개발의 칼질로 이곳의 바다와 갯벌은 나날이 줄어들고 회색빛 도시만 계속
덩치를 불리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준다.

* 오이도유적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914, 924-13 일대 (서해안로113-27, ☎ 031-310
  -3460)
* 오이도선사유적공원과 시흥오이도박물관 홈페이지는 ☞ 이곳을 흔쾌히 클릭한다.


▲  오이도 뒷동산 북쪽 자락에 있는 옛 군초소

오이도유적을 품고 있는 오이도 뒷동산은 지금은 자유의 공간이나 예전에는 군사시설이 있던
금지된 공간이었다. 허나 시대가 바뀌면서 정상부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속세에 해방되
었으며, 뒷동산 북쪽 자락에 있던 군초소도 흔쾌히 해방되어 오이도유적을 수식하는 열린 공
간으로 새로운 삶을 이어간다.
이곳은 북쪽으로 뻥 뚫린 공간으로 오이도 앞바다와 배곧신도시 남쪽, 시흥시와 인천 사이에
비좁게 흐르는 바다, 그리고 바다 건너편 인천 연수구 동남부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  오이도 뒷동산 북쪽 군초소에서 바라본 작은 천하 ①

바로 앞에 검은 피부의 갯벌을 잔뜩 드러낸 오이도 앞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오른쪽에 배곧
신도시 남쪽 부분, 그리고 바다 너머로 인천 연수구 지역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배곧
신도시와 바다 너머 모두 예전에는 바다와 갯벌이었으나 지나친 개발의 칼질로 갯벌을 마구
희생시켜 도시를 닦으면서 나날이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  오이도 뒷동산 북쪽 군초소에서 바라본 작은 천하 ②
오이도 앞바다와 황새바위섬, 인천 연수구 지역

▲  오이도 뒷동산 북쪽 군초소에서 바라본 오이도 해양단지와 대포
바다와 세상을 향해 고개를 높이 든 파란 피부의 존재는 한때 이곳을 지켰던
대포이다. 허나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눈요깃감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전망대
오이도 뒷동산 북쪽 높은 곳에 전망대가 닦여
져 있다. 이곳에는 커피 등을 섭취할 수 있는
카페가 있으며,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과 일몰
풍경이 아주 일품이다.

          ◀  오이도 패총전시관
오이도유적 패총(조개더미)을 머금은 공간으로
속살을 드러낸 패총 위에 두꺼운 유리막을 씌
워 패총 유적을 공개했다.
허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부 손질로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아쉽게도 내부는 살피지 못했다.


▲  오이도 뒷동산 산책로 (패총전시관 주변)

▲  옥터초교 뒷쪽 오이도 뒷동산에서 바라본 오이도 해양단지

육지에 통합된 오이도에는 안말, 가운데살막, 신포동, 고주리, 배다리, 소래벌, 칠호 등의 마
을이 있었다. 허나 시화지구 개발로 1980년대에 모두 없어졌으며, 대신 오이도 서쪽 해안 갯
벌을 건드려 오이도 이주단지를 만들고 오이도 지역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그 이주단지가 현
재 오이도 해양단지이다. (오이도에 살았던 마을 사람들 상당수가 살고 있음)


▲  푸른 녹음(綠陰)이 물결치는 오이도 뒷동산

▲  선사체험마을

오이도 패총전시관에서 남쪽 고개를 넘으면 선사시대 스타일의 움막을 가득 지닌 선사체험마
을이 모습을 비춘다. 이곳은 오이도 뒷동산의 한복판이자 동쪽 자락으로 오이도와 시흥시 지
역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집터 뿐만 아니라 그 시절 움집(움막)과 사람들의 생활상을 재현했는
데,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선사야외체험을 비롯해 선사시대 교육 및 행사 관련 프로그램들
을 운영하고 있다.

▲  움집들과 불을 피우던 화덕

▲  크고 단단하게 생긴 움막

▲  세모 지붕을 지닌 움막

▲  다양한 모습과 개성을 지닌
움막(움집)들


▲  밭을 경작하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모형

농사는 옛조선(고조선)이 천하에 크게 웅거하던 청동기시대에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작을 통해 잘사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생겨나 이른바 신분제 사회가 시작되었고, 잘사는
사람은 그 경제력으로 마을과 세력의 지배층이나 우두머리가 되었다.


▲  입을 크게 벌린 작은 움집 (능곡동 움집)
시흥 능곡동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움집터를 이곳으로 가져와 재현한
것으로 예전 시골 외가집에서 김치나 음식 저장용으로 쓰던
움막과 비슷한 모습이다.

▲  시흥 능곡동 움집의 구조
능곡동 신석기시대 움집터의 뼈대와 내부를 재현했다.

▲  선사시대 사람들의 흔한 사냥 모습

▲  오이도 뒷동산 우물 (물 발원지)

선사체험마을 남쪽 산자락에는 돌로 동그랗게 다진 커다란 우물이 있다. 오이도 뒷동산이 빚
은 물이 이곳에서 발원하여 속세로 흘러가는데, 그는 오이도유적과 전혀 관련이 없는 존재로
오이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던 안말(안마을)의 큰 우물이 이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 속으로 강제로 퇴장된 안말과 그곳의 큰 우물을 추억하고자 오이도선사유적공원 수식용
으로 크게 우물을 다져 오이도에 깃든 가까운 시대의 유산들도 일부 배려했다.

우물 주위로 동그랗게 못을 만들어 물을 가득 채웠고, 그 동쪽으로 수로를 닦아 물을 바깥으
로 흘려보내고 있는데, 못 한복판에 단단하게 주름진 돌피부의 우물이 그림의 떡처럼 자리해
있어 그를 더듬거리는 것은 거의 어렵다.


▲  무늬만 남은 안말 당산나무

우물(물 발원지) 주변에는 늙은 나무 하나가 죽은 채로 자리해 있다. 껍데기만 남은 그는 안
말의 당산나무로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당제(堂祭)와 도당굿을 벌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
다.
허나 그의 가피를 받던 안말은 개발의 칼질로 영원히 지워졌고, 당산나무 역시 고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숨줄을 놓고 말았다. 하여 그 좌측에 그의 후손 나무를 두어 그의 대를
잇게 했으며, 죽은 나무는 치우지 않고 그 밑도리를 제자리에 두어 옛 안말의 추억거리이자
오이도선사유적공원을 수식하는 기념물로 삼았다.


▲  숲 그늘을 따라 달달하게 이어진 오이도 뒷동산 숲길
(선사체험마을 서쪽 숲길)

▲  오이도 뒷동산 억새길에서 바라본 선사체험마을과 오이도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은 시화공단

▲  산뜻하게 이어진 오이도 뒷동산 숲길


♠  오이도~배곧 해안 산책로

▲  오이도유적 북쪽 입구(오이도해양단지, 옥터초교입구 정류장)에서
바라본 오이도 앞바다와 황새바위섬, 인천 연수구 지역


오이도유적을 품은 오이도 뒷동산을 2시간 남짓 둘러보고 오이도유적 나들이를 시작했던 오이
도유적 북쪽 입구(오이도해양단지, 옥터초교입구 정류장)로 다시 나왔다.
오이도유적에 왔다면 오이도 뒷동산 남쪽 끝에 있는 시흥오이도박물관을 한 덩어리로 같이 둘
러봐야 되겠으나 그곳까지 가기도 귀찮고 바닷바람에 의지해 여름 제국에 대항도 할 겸, 오이
도를 등지며 해안길을 따라 배곧까지 걷기로 했다.


▲  오이도로 해안산책로 (배곧 방향)

오이도에서 월곶(月串)과 맞닿은 배곧 북쪽까지 해안을 따라 둑방 산책로가 길게 닦여져 있다
. 인천과 시흥 땅 사이에 좁게 자리해 오히려 육지의 눈치를 보는 서해바다를 옆구리에 낀 산
책로로 바다 너머로 바다와 갯벌을 마구 집어삼키며 무섭게 몸집을 키우고 있는 인천 연수구
지역이 시야에 들어오며, 조수간만의 차가 오지게 심한 서해바다의 특성상 마치 석유에 범벅
이 된듯한 너른 갯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때는 썰물 때라 바다는 저 멀리 철수하여 겨우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으나 밀물 때가 되면 무섭게 갯벌을 잡아먹어 순식간에 바다의 위엄을
되찾는다.


▲  오이도로 해안산책로 (오이도, 오이도유적 방향)

▲  오이도로 해안산책로에서 바라본 오이도 앞바다와
황새바위, 인천 연수구 지역


바로 앞에 오이도 북쪽 갯벌이 시커멓게 펼쳐져 있고, 갯벌과 바다 너머로 인천 연수구 동남
부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오이도 앞과 오이도해양단지 모두 바다와 갯벌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 갯벌과 바다를 마구 때려잡으면서 그 면적이 크게 감소하고 말았다. 지금도 크
게 가늘어진 바다를 계속 밀어버리고 있어 오이도 건너편(서쪽) 동네(인천 연수구)는 나날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연수구와 오이도 갯벌 사이로 작은 바위섬이 있는데, 그는 오이도의 오랜 벗인 황새바
위(황새바위섬)로 오이도 식구 중 유일하게 섬으로 남아있다.


▲  오이도로 해안산책로에서 바라본 덕섬
갯벌 너머로 진하게 아른거리는 푸른 공간이 덕섬이다. 그는 오이도와
옥구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그들과 함께 육지에 흡수되었다.

▲  덕섬(왼쪽)과 배곧한울공원(오른쪽) 사이에 자리한 갯벌
오이도에서 배곧 북쪽까지 해변에 붙어있는 갯벌은 자연보호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그러니 출입 통제의 경고를 무시하고
갯벌에 멋대로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한다.

▲  배곧한울공원에서 바라본 덕섬(왼쪽 바위 해안)과 오이도
갯벌 너머 왼쪽에 보이는 푸른 언덕이 오이도유적을 품은 오이도
뒷동산이고, 그 오른쪽 시가지가 오이도 해양단지이다.

▲  배곧한울공원에서 바라본 서해 갯벌과 황새바위,
인천 연수구 지역

▲  배곧한울공원 해안산책로

배곧한울공원은 갯벌을 생매장하여 닦은 해변 공원으로 덕섬 동북쪽 너머에 자리한다. 여기서
배곧 북쪽 끝까지 5km 정도의 해안 산책로가 펼쳐져 있는데, 서쪽에는 갯벌을 머금은 서해바
다가 배곧과 연수구 두 도시 사이에 자리하여 조금은 초췌한 모습으로 있고, 동쪽에는 그 갯
벌과 바다를 우걱우걱 잡아먹고 솟아난 배곧신도시가 회색빛 도시를 드러내고 있다.


▲  배곧한울공원 해안산책로에서 바라본 서해 갯벌과 황새바위,
인천 연수구 지역

▲  동북쪽으로 곧게 뻗은 배곧한울공원 해안산책로

▲  두 시커먼 존재의 어색한 공존
배곧한울공원 해안산책로에서 바라본 서해 갯벌과 인천 연수구 지역

▲  배곧한울공원 해안산책로 (옛 초소 남쪽)

▲  해안산책로에서 만난 옛 초소

이곳은 오이도 식구의 일원이었던 옥구도의 서쪽 해안으로 군인들이 사용했던 초소이다. 허나
이곳까지 도시가 들어오면서 배곧한울공원 해안산책로의 작은 여흥거리가 되어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  배곧한울공원 해안산책로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뒤로 한참 물러가 검은 피부를 가득 드러냈던 서해바다가 어느새 안면을 싹 바꾸어 갯벌을 서
서히 지우고 있다. 서해바다가 수심이 얕고 밀물의 속도가 느린 듯 보여서 그의 밀물 때를 무
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밀물의 속도가 느린 것은 어디까지나 서해바다의 눈속임이다. 쥐도 새
도 모르게 그 넓은 갯벌을 잡아먹어 바로 앞까지 소금물 파도를 들이민다. 그러니 밀물 때는
무조건 바다에서 속히 나와야 뒷탈이 없다.


▲  배곧한울공원 해안산책로 한라비발디1차 서쪽 구간

오이도유적 북쪽 입구에서 시작된 서해바다 산책은 배곧동 한라비발디1차에서 마무리를 지었
다. 마음 같아서는 월곶까지 가고 싶었으나 늘 그렇듯 시간이 문제다. 게다가 일몰이 서해바
다의 일몰처럼 살짝 다가와 압박을 가하고 몸도 지쳐서 이후 구간은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으
로 무작정 내던지고 여기서 쿨하게 길을 접었다. 이렇게 해야 이곳에 다시 올 구실이 생긴다.

이렇게 하여 오이도유적, 오이도~배곧 서해바다 나들이는 대단원의 휘장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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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오이도 유적 경기 시흥시 정왕동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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