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산읍 예안이씨 정충각 정효각 (예안이씨 정충,정효각)안동시 서부에 자리한 풍산읍내에는 예안이씨 정충각과 정효각이 있다. 풍산읍내를 거닐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들로 정충각은 예안이씨 집안인 이홍인의 충절을, 그리고 정효각은 그의 후손인 이한호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를 머금고 있는데, 정려는 조선 조정에서 충신과 효자, 열녀에게 내리는 명예 표창장이다. 이홍인의 정려는 1811년에, 이한오의 정려는 1812년에 내려졌는데, 이홍인은 16세기에 풍산에 처음 정착한 예안이씨 집안의 이영, 이전, 이훈 삼형제 중 이전의 둘째 아들이다.그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자신의 가산을 내어 의병을 일으켰으며, 안동 구담리 지역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리고 이한오는 아버지를 위해 한겨울에 잉어를 구해오는 길에 호랑이..
1. 향천사9층석탑과 그 뒷쪽에 자리한 나한전향천사9층석탑은 경내에서 가장 늙은 보물로 높이는 3.75m이다. 이 탑은 이곳의 2번째 주지를 지낸 도장을 기리고자 세웠다고 전하며, 백제가 사라진 이후인 7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백제 탑의 후예이다.이렇게 지긋한 나이를 지니고 있지만 탑신과 기단 부분의 피부 색깔이 너무나 틀려 상당히 어색한 조화를 이룬다. 기단부는 그래도 고된 세월의 때가 자욱하여 까무잡잡하나 탑신은 그와는 상반되게 하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탑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절을 파괴하면서 탑을 아작냈기 때문이다.또한 절에는 2기의 석탑(5층탑이라는 설이 있음)이 있었는데, 모두 파괴되어 흩어진 것을 하나로 모아서 수습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
1. 향천사 일주문예산읍내 동북쪽에 솟은 금오산(223m) 동쪽 자락에 향천사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은 예산 지역에서 수덕사 다음 가는 고찰로 655년에 백제의 고승 의각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과연 의각이 세웠는지는 믿거나 말거나 창건 설화 외에는 마땅한 기록이 없어서 답답할 따름이지만 경내에 있는 9층석탑이 7~8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대충 창건 시기는 맞아 떨어진다. 향천사를 세웠다고 전하는 의각선사는 백제 승려로 652년 백제의 속방인 왜열도로 건너가 백제사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다가 뜻한 것이 있어서 당나라로 가는 배에 몸을 싣고 3년 동안 오자산에서 불법을 공부하면서 석불 3,053개를 비롯한 전단향나무로 만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16나한상 등을 만..
1. 예산향교 (향교 홍살문 앞)예산읍내 동쪽 끝인 쌍송배기에서 향천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예산향교가 있다. 향천사는 이번이 2번째 인연으로 예전 방문 때도 예산향교 앞을 지나갔지만 그때는 쿨하게 무시했다. 하여 이번에는 미답처도 지울 겸 예산향교를 기웃거려 보았는데, 다른 대부분의 향교와 비슷하게 폐쇄된 모습을 보여주어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예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지방에 세운 향교의 일원이다. (1413년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짐) 향교는 지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동이족 출신으로 유교를 만든 공자와 역시 동이족 출신인 맹자 등 중원대륙 오성과 송조4현, 그리고 신라와 고려, 조선의 유명 유학자 18현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대성전과 교육 공간인 명륜전으로 크게 이루어져 ..
1. 충무공 조영무 신도비광주 퇴촌면의 중심지인 광동리에서 남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첩첩한 산골에 조영무장군묘가 있다. 원래는 그곳 대신 다른 곳으로 갈 생각으로 퇴촌면에 들어섰으나 버스 시간 문제로 부득이 퇴촌면 중심지에서 가까운 조영무묘를 꿩 대신 닭으로 찾게 되었다. 내가 갔을 때는 마침 퇴촌면 중심지에서 퇴촌 토마토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이 22회로 매년 6월에 사흘 정도 일정으로 열리는데, 퇴촌 지역이 토마토로 제법 유명하다고 한다. 허나 축제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 어린이들, 토마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에 주로 맞춰져 있어서 혼자 찾은 나에게는 딱히 흥미거리는 없었다. 하여 간단히 둘러보고 조영무묘로 향했다. 조영무(?~1414)는 사극 '용의눈물'과 '태종이방원'에서 주요 인물로 등..
1. 봉원사 삼천불전 비로자나불상지권인을 취한 비로자나불은 봉원사에서 가장 큰 집인 삼천불전의 주인장이다. 큰 집에 걸맞게 불상 또한 장대한 덩치를 자랑하는데, 그 뒤쪽과 좌우로 조그만 금동불 3,000불을 가득 채워 두 눈을 부시게 한다. 이들은 중생의 돈을 받아 지은 원불이다. 2. 봉원사 느티나무 (서울시 보호수)삼천불전 서쪽 옆구리에는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늙은 느티나무가 있다. 그는 추정 나이 480년(1972년 10월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430년), 높이 21.5m, 나무둘레 4.4m의 큰 덩치를 지녔는데, 나무 윗쪽에 삼천불전이, 밑에는 봉원사 승려들이 사는 집들이 자리해 있다. 3. 밑에서 바라본 봉원사 삼천불전과 연지원삼천불전은 각박한 경사를 다져서 만든 집으로 윗쪽에 팔..
1. 봉원사 대방 석조여래좌상흥선대원군의 공덕동 별장인 아소정을 가져와서 삼은 대방(염불당)은 승려의 생활 공간 및 손님 공간, 유가족을 위한 49재, 그리고 영산재와 범패를 지도하는 공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방 불단에는 아기나 동자승처럼 생긴 조그만 하얀 피부의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는 높이 37cm에 작은 불상으로 경주 불석으로 조성되었는데, 원래는 철원 심원사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 6.25때 심원사가 파괴되면서 그곳에 깃든 많은 불상과 보살상이 전국에 흩어졌는데, 그때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확실한 것은 없다.그의 작은 뱃속에서는 '금강반야바라밀경'과 '팔엽대홍련지도', '준제구자천원지도', '열금강지방지도' 등 각종 다라니가 나왔는데, 그들을 머금은 복장 주머니에는 '證明臣 華應 亨眞..
1. 배봉산 정상(배봉산보루) 2. 배봉산둘레길 3. 배봉산 북쪽 능선길 4. 배봉산 삼육서울병원 기점 5. 배봉산둘레길 6. 배봉산 휘경원터 7. 휘경원터 안내문 주변에서 만난 상사화(꽃무릇) 8. 배봉산 북쪽 능선길 9. 배봉산 정상 북쪽 밑 10. 배봉산 정상 북쪽 밑에서 바라본 휘경동과 중랑구 지역, 아차~용마~망우산 산줄기 11. 배봉산 정상(배봉산보루) 12. 유리막에 감싸인 배봉산보루터 기저부와 주혈터 일부 13. 유리막에 봉인된 배봉산보루터 기저부 흔적 14. 유리막에 봉인된 주혈 구멍(기둥을 세운 흔적) 15. 배봉산 정상(배봉산보루터) 16. 배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중랑구 북부 지역과 봉화산) 17. 배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휘경동, 장안동, 면목동, 중랑구 지역과 망우산..
' 늦가을 산사 나들이, 화순 쌍봉사 ' ▲ 쌍봉사 대웅전 '쌍봉사 삼청각에서 읊다' 시내 사이로 멋들어지게 지은 다리 누각이여삼청이라는 글씨만 봐도 눈이 상쾌하구나못에 비친 달은 고기들의 맑은 거울이요구름 걷힌 산봉우리 학은 둥지를 사랑하네금빛들에 머문 안개는 항상 서기를 드러내고옷빛계곡에서 부는 솔바람은 언제나 차가워라난간에 기대어 처마 밑에 흐르는 물을 다시 보니낙화도 뜻이 있는지 잔물결 따라 쫓아가네 * 고려 명종 때 문인인 김극기(金克己)가 쌍봉사 삼청각에서지은 시 (현재 삼청각은 없음) ..
1. 봉원사 범종봉원사의 법당인 대웅전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조그만 범종이 들어있다. 그는 원래부터 봉원사 종이 아닌 예산 덕산에 있던 가야사의 것으로 흥선대원군이 그 절을 불질러 그곳으로 자신의 부친인 남연군의 묘를 옮긴 일이 있었는데, 그때 타지 않고 남은 가야사 범종을 수습해 봉원사에 넘겼다고 한다.과연 가야사 자리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 그의 아들(고종)과 손자(순종)까지 제왕이 되었지만 결국 자신을 포함 3대 만에 이 나라와 이 땅의 역사를 죄다 말아먹었으니 70% 이상 부족했던 명당인가 보다. 2. 대웅전 석가여래삼존상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좌우에 자리해 석가여래3존상을 이룬다. 색채가 고운 후불탱이 든든하게 그들을 받쳐주고 있으며, 붉은 지붕의 닫집이 매우 호화롭기 그지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