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예산 호서은행 본점예산읍내 예산경찰서 남쪽에 자리한 호서은행 본점 건물은 1922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2층 건물로 입구 부분이 돌출되어 정면을 내세우고 있는데, 골조는 철근콘크리트이며, 벽재는 회벽으로 만들었다. 지붕 전체에 동판을 덮었으나 현재는 입구 쪽만 남아있다. 호서은행은 1913년 5월 민족 자산으로 세워진 유일한 지방 은행이다. 즉 이 땅 최초의 민족자본 지방은행이다. 그 본점이 예산에 자리하면서 예산은 잠시나마 충청남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은행 설립 발기인은 유진상, 성낙규, 유진태, 최규석 등 4명으로 이들은 예산읍(그때는 예산면)에 거주하고 있었다. 예산은 예당평야가 펼쳐진 곡창지대로 경제력이 상당했다. 지방의 금융 소통과 실업을 장려하고자 설립되어 민족 자본 형성에 큰 역..

1. 향림당대용선사(1921~2006)의 부도탑근래 조성된 부도탑으로 파리도 능히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하얀 피부를 지녔다. 그 뒤쪽으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시커먼 피부의 부도탑(의각의 부도탑이라 내세우고 있음)과 멸운당대사의 부도탑, 그리고 멸운당대사탑비가 있다. 2. 서래암'ㄱ'모양의 기와집으로 별도의 암자가 아닌 향천사 소속의 건물이다. 3. 청기와를 눌러쓴 향천사 극락전향천사의 법당인 극락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1년에 새로 지었다. 원래는 그 우측 나한전 자리에 있었는데, 1983년 옛 극락전을 철거하면서 지금의 건물이 극락전이 되었다. 불단에는 단향목으로 만든 아미타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는 1359년에 조성된 거라고 한다. (또는 조선 초기나 중기에 조..

1. 향천사 천불전 내부천불전에는 건물의 이름 그대로 1,000기의 불상이 있어야 되지만 정확하게는 그보다 1.5배가 많은 1,515기의 불상이 불단을 가득히 메우고 있다. 이는 이 땅에 널린 천불전의 불상 수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로 그 흔한 이름 천불보다는 눈에 좀 띄게 천오백불(1,500불)이라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천불과 3천불은 많지만 1,500불은 희귀하기 때문이다.이들 천불은 미혼자의 혼인 대상자를 점쳤다는 전설이 있으며, 우리나라 7천 만 인구 마냥 가지각색의 모습과 표정으로 개성들이 넘친다. 모두 하얀 불상으로 작은 불상은 대부분 석고상이고, 큰 불상은 돌로 만들어졌다. 2. 천불전 천불의 위엄문을 열고 적막이 깃든 천불전으로 들어서니 가운데 큰 불상을 비롯해 1,500의 불상..

1. 향천사9층석탑과 그 뒷쪽에 자리한 나한전향천사9층석탑은 경내에서 가장 늙은 보물로 높이는 3.75m이다. 이 탑은 이곳의 2번째 주지를 지낸 도장을 기리고자 세웠다고 전하며, 백제가 사라진 이후인 7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백제 탑의 후예이다.이렇게 지긋한 나이를 지니고 있지만 탑신과 기단 부분의 피부 색깔이 너무나 틀려 상당히 어색한 조화를 이룬다. 기단부는 그래도 고된 세월의 때가 자욱하여 까무잡잡하나 탑신은 그와는 상반되게 하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탑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절을 파괴하면서 탑을 아작냈기 때문이다.또한 절에는 2기의 석탑(5층탑이라는 설이 있음)이 있었는데, 모두 파괴되어 흩어진 것을 하나로 모아서 수습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

1. 향천사 일주문예산읍내 동북쪽에 솟은 금오산(223m) 동쪽 자락에 향천사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은 예산 지역에서 수덕사 다음 가는 고찰로 655년에 백제의 고승 의각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과연 의각이 세웠는지는 믿거나 말거나 창건 설화 외에는 마땅한 기록이 없어서 답답할 따름이지만 경내에 있는 9층석탑이 7~8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대충 창건 시기는 맞아 떨어진다. 향천사를 세웠다고 전하는 의각선사는 백제 승려로 652년 백제의 속방인 왜열도로 건너가 백제사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다가 뜻한 것이 있어서 당나라로 가는 배에 몸을 싣고 3년 동안 오자산에서 불법을 공부하면서 석불 3,053개를 비롯한 전단향나무로 만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16나한상 등을 만..

1. 예산향교 (향교 홍살문 앞)예산읍내 동쪽 끝인 쌍송배기에서 향천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예산향교가 있다. 향천사는 이번이 2번째 인연으로 예전 방문 때도 예산향교 앞을 지나갔지만 그때는 쿨하게 무시했다. 하여 이번에는 미답처도 지울 겸 예산향교를 기웃거려 보았는데, 다른 대부분의 향교와 비슷하게 폐쇄된 모습을 보여주어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예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지방에 세운 향교의 일원이다. (1413년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짐) 향교는 지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동이족 출신으로 유교를 만든 공자와 역시 동이족 출신인 맹자 등 중원대륙 오성과 송조4현, 그리고 신라와 고려, 조선의 유명 유학자 18현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대성전과 교육 공간인 명륜전으로 크게 이루어져 ..

' 서천 한산면 겨울 나들이 ' ▲ 건지산에서 바라본 천하 (한산, 부여 양화 지역) 천하 만물에게 온갖 희망고문을 주었던 새해가 묵은 해로 전락되면서 새로운 해가 다시금 꿈틀거린다. 이제 그 명줄이 얼마 남지 않은 묵은해의 마지막 답사지를 물색했는데, 올해 는 충남 지역 방문이 뜸했고, 충남의 서남쪽 끝을 잡고 있는 서천군(舒川郡) 지역은 아직 까지 변변한 인연 조차 없어서 그곳을 이번 메뉴로 정했다. 서천군에는 많은 명소가 있으나 그중 옛 볼거리가 많은 ..

1. 건지산에서 바라본 천하 (한산, 부여 양화 지역) 2. 서천 지현리3층석탑 3. 한산읍성 4. 건지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숲길 5. 건지산 정상, 지산정 6. 지산정 상량문 7. 건지산 정상 느티나무 8. 건지정에서 바라본 천하 (한산면의 중심지인 지현리, 저 멀리 보이는 산야는 전북 익산 지역) 9. 건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지현리를 비롯한 한산면 일대와 부여 양화면 남부, 익산 웅포면 지역 10. 건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한산면 북부 지역과 부여 양화면, 금강, 익산 웅포면 지역 11. 건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건지산의 남쪽 산줄기 너머로 금강과 익산(웅포면), 군산(나포면)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12. 건지산 정상 북쪽 능선길 13. 건지산 북쪽 능선에서 바라본 한산면 북부..

1. 진악산 보석사의 외경 2. 보석사 일주문 3. 보석사 의병승장비 4. 비각 뒷쪽에 자리한 여러 비석들 5. 보석사 전나무숲길 6. 조선 후기에 조성된 보석사 부도군(승탑들) 7. 경내를 가리고 있는 돌담과 범종루(梵鍾樓) 8. 보석사 심검당 9. 말라버린 동그란 석조 10. 보석사 대웅전 11. 대웅전 내부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12. 대웅전 신중탱 13. 보석사 기허당 14. 기허당에 봉안된 영규대사와 조구대사의 진영 15. 보석사 산신각 16. 산신각 산신탱 17. 산신각 풍경물고기 18. 보석사 의선각 19. 의선각 현판 20. 천년 이상 묵은 보석사 은행나무 21. 보석사 은행나무 표석 22. 기린암 바위글씨 23. 보석사 경내를 흐르는 계곡 24. 보석사 전나무숲길 (일주문 방향)

1. 의두암 바위글씨 의두암은 3층 구조를 지닌 높이 4m에 큰 바위로 그 피부에 예서체 스타일의 '의두암' 바위글씨가 진 하게 깃들여져 있다. 그 글씨를 남긴 사람은 운양 김윤식(1835~1922)으로 1887년 명성황후의 친러 정책에 반대하며 흥선대원군의 재집권을 모의하다가 면천 고을로 유배되어 5년 6개월을 머물렀다. 처음에는 순성면 양유리 앵두샘마을에서 유배살이를 하다가 영탑사 아래 절골로 자리를 옮겼으며, 영탑사 노전에서도 유배 생활을 했다. 그는 거의 매일 이곳에 올라 임금님이 있는 북쪽 서울을 바라 보며 죄를 짓고 유배온 자신을 한탄했는데, 그렇다고 한탄만 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지역 선비와 유 지들과 여기서 시문도 짓고, 활도 쏘고, 곡차 1잔의 여유도 누렸다. 바위 꼭대기에 올라 앉..

1. 영탑사 유리보전 유리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고려 때 조성된 약사여래상의 공간이다. 약사여래 상은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로 그 바위에 집을 씌웠는데, 유리보전은 약사여래의 거처인 약사전의 별 칭이다. 2. 영탑사 약사여래상 (마애약사여래상) 유리보전에 소중히 들어있는 약사여래상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높이 3.5m 정도로 고려 후기 에 무학대사가 영탑사를 둘러보다가 경내 주변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빛을 내는 것을 보고 그 바위 에 불상을 새겨 나라의 평안을 빌었다고 전한다. 불상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을 표현했으며, 얼굴은 윗부분이 넓고, 밑부분이 갸름하여 신체 에 비해 큰 편이다. 눈과 코, 입은 길고 큼직하며 다소 서투르게 표현되어 전반적으로 둔한 모습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