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재영 묘소 (망우독립유공자 묘역, 오재영 묘소) 오재영(1897~1948)은 부산 출신이다. 1919년 비밀결사 혈성단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임시정부 기 관지인 독립신문과 경고문 배포, 본토와 상해임시정부와의 연락 등을 담당했다. 1920년 9월 14일 의열단 단원인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을 던져 중상을 입혔는데, 오재영은 박재혁이 상해에서 가져온 폭탄 1개를 맡아두는 등 그의 거사를 도왔다. 이 사건으로 왜경에게 체포되 어 1921년 8월 3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만주일보 경남지사, 조선일보 부산지국을 운영하는 한편 신간회에서도 활동했다. 해방 이후 박재혁 추모사업을 추진하다가 1948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1. 대향 이중섭 묘 용마약수(용마천) 북쪽에는 '소'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의 무덤이 있다. 이중섭(1916~1956) 은 평남 평원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평양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왜열도 동경으로 넘어가 문화 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와 교재하여 1945년 원산에서 혼 인했다. 두 아들을 두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6.25 때 월남하여 부산과 제주도에서 피난 생활을 했으며, 먹 고 살기 힘든 상황이라 훗날을 기약하며 부인과 아들을 왜열도로 떠나보냈다.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1955년 개인전을 개최하여 화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경제적으로는 실패했 으며, 이후 술로 나날을 보내다가 1956년 병원에서 사망하니 그의 나이 겨우 40세였다. 묘비는..

1. 명온공주와 김현근 묘역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길 동쪽 구간에 명현공주, 김현근 내외의 무덤이 있다. 명온공주(1810~1832 )는 순조의 딸이고, 그의 남편인 김현근(1810~1868)은 안동김씨 집안으로 김상용의 8대손이다. 김현근은 어려서부터 말과 글을 잘해 15살에 부마가 되었는데, 순조가 명온공주의 남편을 물색하고자 12~15세 남성을 대상으로 간택령을 내렸다. 하여 그해 5월 22일 17명 후보 중 8명을 골랐고, 5월 25 일에 3명으로 줄였으며, 6월 2일 3번째 간택에서 진사 김한순의 아들인 김현근이 최종 합격되어 동년 위로 봉해진 후 7월 17일 혼인을 하였다. 명온공주는 일찍 병을 얻어 1832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으며, 김현근은 청나라 사신 업무, 판 의금부사 등을 지..

1. 망우리 사잇길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잇길) 망우리 사잇길은 사색의길 서쪽 구간 북쪽 시작점에서 망우산 능선길과 망우산 정상으로 빠르게 인 도하는 산길이다. 경사가 조금 있지만 거리는 그리 길지 않으며, 10여 분 정도 오르면 사색의길 동쪽 구간에서 올라온 능선길과 만난다. 2. 무성한 숲을 지나는 망우리 사잇길 사색의길 서쪽 구간과 동쪽 구간 사이를 지나서 '망우리 사잇길'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이 구간에 는 능선길 전까지 무덤은 거의 없으며, 한낮에도 거의 어두울 정도로 숲이 삼삼하다. 3. 조금 급한 경사를 보이는 망우리 사잇길 (망우산 능선길 직전) 4. 망우산 능선길과 만나다. (망우리 사잇길과 망우산 능선길이 만나는 곳) 5. 망우산 능선길에서 사색의길 동쪽 구간으로 내려가는 길 망우산..

1. 무덤 사이를 지나는 중랑둘레길 (망우역사문화공원) 삼형제바위(형제바위)에서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길로 인도하는 오솔길로 무덤 사이사이를 지난 다. 무덤과 푸른 숲, 수풀들이 어우러진 상큼한 공간으로 방을 뺀 무덤터도 적지 않은데, 오솔길은 봉 분 앞을 지나기도 하고, 봉분 뒷쪽을 지나기도 하며, 봉분 옆구리도 지나는 등, 무덤 사이사이를 이리 저리 비집고 흘러간다. 2. 숲그늘에 묻힌 무덤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망우리묘지(망우리공동묘지)의 현재 이름이다. 즉 이름을 세탁했다. 그렇다고 이곳의 공동묘지 성격이 녹슨 것은 전혀 아니며, 많은 무덤들이 방을 빼긴 했으나 아직까지 7,400여 기의 무덤들이 머물고 있다. 이곳이 다른 공동묘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덤 사이로 수풀과 숲을 조성해 공원처럼 달달하..

1. 망우산 삼형제바위 (형제바위) 무덤들이 즐비한 망우산 북쪽 자락에 삼형제바위(형제바위)가 있다. 이곳은 중랑둘레길이 지나는 길 목으로 유인 울산박씨묘 옆에 병풍처럼 자리하고 있는데, 두툼하게 생긴 작은 바위 3개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형제애가 돈독한 3형제처럼 보인다. 2. 바짝 붙어 있는 삼형제바위 단단하게 생긴 작은 바위 3개가 나란히 자리해 단체 촬영에 임한다. 3. 삼형제바위 옆에 자리한 유인 밀양박씨지묘 묘비 4. 삼형제바위에서 바라본 망우산 산줄기 5. 망우산 삼형제바위의 위엄 6. 멀리서 바라본 삼형제바위와 밀양박씨묘, 그리고 그들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7. 바로 앞에서 바라본 삼형제바위 바위에는 세월이 무심하게 달아준 주름선이 여럿 있다. 바위가 작다 보니 인근에서 가져온 것 같은..

1. 망우산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 망우산 북쪽 능선에 자리한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는 이름 그대로 한강과 구리 지역 조망에 최적화 된 전망대이다. 여기서는 동쪽과 동남쪽, 남쪽이 흔쾌히 시야에 들어오는데,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비 롯하여 용마산, 아차산, 강동구, 송파구, 구리시, 남양주시(도농, 와부, 운길산 등), 하남시, 검단산, 남 한산, 성남시 등이 바라보여 조망도 그런데로 괜찮다. 2.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구리시 남부 지역과 한강, 강동구, 하남시, 남양주시 와부읍, 운길산~예봉산, 검단산 등 3.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구리 아천동 지역과 아차산, 강동구, 하남시, 검단산, 남한산(남한산성) 등 4. 나무데크로 닦여진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 5. 구리전망..

1. 태허 유상규 묘 유상규(1897~1936)는 평북 강계 출신이다. 경신중학을 거쳐 1916년 경성의전 1기로 입학했으며, 1919년 3.1운동 때 경성의전의 중심 인물로 참가했다. 이후 상해 임시정부로 넘어가 도산 안창호 의 비서관으로 활동했으며, 이때 흥사단에 가입했다. 도산의 권고로 서울로 돌아와 1925년 복학해 1927년 졸업했으며, 경성의전 강사와 부속병원 외과 의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동아일보사 주최 강연회에 연사로 꾸준히 참여하여 잡지와 신문에 많은 글을 실으며 어리석은 조선 민중의 의학적 계몽활동에 나섰다. 1930년 조선의사협회 창설을 주도하기도 했으나 환자를 치료하던 중에 단독에 감염되어 1936년 39세에 젊은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그는 안창호와 거의 부자지간처럼 사이가 각별해..

1. 망우산2보루 망우산 정상부(282m)에 망우산2보루가 폐허의 상태로 깃들여져 있다. 정상(망우전망대)과 정상부 북쪽 부분에 걸쳐있는 그는 망우리묘지가 한참 닦이는 과정에서 크게 망가져 안타깝게도 원래 모습 과 규모를 파악하기가 힘든데, 다만 고구려식 토기 조각들이 여럿 나와 고구려가 닦은 보루로 여겨 진다. 2. 망우산2보루 안내문 주변 (망우산 능선길) 망우산에는 3개의 보루터가 발견되었는데, 이중 망우산 남쪽 능선에 있는 망우산1보루만 국가 사적 (아차산 일대 보루군)의 지위를 누리고 있고, 북쪽 능선(망우산 정상 북쪽)에 있는 망우산2보루와 3 보루는 비지정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2보루와 3보루의 상태가 영 좋지가 못하다. 3. 망우산3보루 남쪽 부분 4. 망우산3보루 망우산2보루에서 북쪽으..

1. 무덤 사이를 지나는 망우산 능선길 망우산은 아차산의 일원으로 그의 북쪽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용마산은 가운데, 아차산은 남쪽 부 분) 망우산 능선은 사색의길 서쪽 구간과 동쪽 구간 사이에 솟아있는데, 능선 중간에 망우산 정상 (282m)이 있다. 오솔길처럼 펼쳐진 능선길에는 고구려 것으로 여겨지는 망우산2보루, 3보루 유적이 있으며, 산길 주 변으로 무덤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 무덤 사이사이를 지나는 구간이 적지 않다. 특히 20세기 초/중기 에 활동했던 근현대사 인물의 무덤이 능선길 주변에 상당히 자리잡고 있어 그들을 찾아다니는 재미 가 쏠쏠하다. 2. 망우산 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동남쪽 방향) 푸른 숲 너머로 한강과 구리시, 강동구, 하남시, 예봉산, 검단산 등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3. ..

1. 관룡탑을 만나기 50m 직전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길 동쪽 구간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동림정이 나오는데, 여기서 시루봉과 관룡탑, 망우산1보루로 인도하는 산길(구리둘레길1코스)이 마중을 한다. 그 길을 조금 들어서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서쪽(남쪽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 길이 망우산 남쪽 능선과 망우산1보루, 용마산, 아차산으로 이어지며, 동쪽(남쪽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은 시루봉 과 관룡탑으로 빠진다. 시루봉으로 인도하는 산길을 5분 정도 내려가면 아차산, 망우산의 숨겨진 명소이자 거대한 돌탑인 관 룡탑이 마중을 나온다. 2. 아차산 관룡탑의 옆모습 망우산 동남쪽 자락이자 시루봉 서쪽 자락에 관룡탑이라 불리는 크고 견고한 돌탑이 숨겨져 있다. 망 우산과 시루봉은 아차산의 일원이라 아차산 관..

1. 묘비만 남은 이영민묘 차중락 묘 북쪽에는 야구선수로 유명했던 이영민의 유택이 있다. 무덤은 다른 곳으로 이전되고 묘비 만 덩그러니 남아 옛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곳의 신세를 잠시 졌던 이영민(1905~1954)은 경북 예 천 출신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나왔다. 1928년 육상 400m에 출전해 한국 신기록을 세웠으며, 같은 해 서울운동장(구 동대문운동장)에서 열 린 경성의전과의 시합에서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홈런을 날려 크게 인기를 얻기도 했다. 1931년 잡지 '동광'이 선정한 '조선이 낳은 10대 운동가' 중 최다 득표를 차지했으며, 해방 이후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 1954년에는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1958년부터 대한야구협회에서 그를 추모하고자 고등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