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호암산 불영암호암산 서남쪽 봉우리 서쪽 밑이자 한우물 바로 옆에는 불영암이란 작은 암자가 둥지를 틀고 있다. 한우물을 든든한 후광으로 삼은 이곳은 해발 310m 정도로 서울에서 능히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하늘과 가까운 절인데, 가파른 벼랑에 자리하여 속세를 향해 훤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호압사나 시흥동 벽산아파트, 호암로에서도 확 눈에 띈다. 불영암의 내력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정보가 없어 파악하긴 힘들지만 관악산과 호암산의 기운으로부터 서울을 지키고자 여기서 기도를 올리니 서울에 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 그런 것을 보면 오랫동안 승려의 기도 수행처로 쓰였던 듯 싶으며, 호암산성 서벽에 위치하고 있고, 조망도 우수하여 산성을 지키며 속세를 살폈던 망대의 역할도 했을 것이다.또한..

1. 상이암 부도 (오른쪽 부도)상이암 경내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늙은 부도 3기가 있다. 이들 부도탑은 조선 중기 것으로 경내에서 조성시기가 아리송한 삼청동비와 환희담 바위글씨를 제외하고 가장 늙은 인공물인데, 아랫 사진의 오른쪽 부도는 바위를 활용한 바닥돌과 기단석, 동그란 탑신, 네모 모양의 지붕돌, 머리장식을 지닌 꽤 잘생긴 탑이다. 아쉽게도 탑 주인은 전하지 않으며, 그 옆에 있는 2기의 부도탑은 혜월당과 두곡당의 승탑이다. 2. 상이암 산신각산신각은 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 식구의 공간이다. 고구려의 부경 양식처럼 건물을 땅바닥에 완전히 붙이지 않고 그 사이로 작게 허공을 두었는데, 이는 건물의 방습과 벌레 침투 방지를 위한 것이다. 3. 상이암 부도 3형제오른쪽 부도는 주인이 전하지..

1. 은해사 극락보전 (옛 대웅전)극락보전은 이곳의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원래는 대웅전으로 은해사의 많은 것을 앗아갔던 1847년 대화재 때 극락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마의 먹이가 되어 사라졌다. 이후 영천군수와 경상감영, 조선 조정과 왕궁에서 돈을 보내 절을 중수했으며, 살아남은 극락전도 상태가 좋지 못하여 새로 지었다.추사 김정희가 대웅전 편액(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있음)을 남겼으며, 이후 극락전(극락보전)으로 이름을 갈아 살아가고 있다. 현재 은해사에서 유일하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다. (은해사의 부속암자는 제외) 2. 극락보전 앞 괘불석주괘불을 거는 늙은 돌기둥으로 그의 피부에 '계해팔월일조성'이라 쓰여 있어 1863년(또는 1803년)에 조성되었음을..

1. 청룡사 봉향각 대웅전 옆구리에 자리한 봉향각은 'ㄱ' 구조의 팔작지붕 집으로 선방 및 요사로 살아가고 있다. 2. 청룡사 명부전 대웅전 옆구리에 자리한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장보살과 시왕 등 명부(저 승) 식구들의 공간이다. 3. 명부전 지장보살상과 지장시왕도 푸른색 승려 머리를 지닌 금동 피부의 지장보살상이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좌우에 거느리며 중생들 의 인사를 받는다. 그들 뒤로 화려한 색채의 지장시왕도가 후불탱으로 걸려있는데, 그는 1874년에 화 승 한봉 창엽과등삼 등이 조선 왕실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그때 석가여래삼불회도와 아미타여래회 도도 같이 조성되었다. 조성시기와 제작자, 봉안처가 분명한 탱화로 전체적인 도상과 설채법 등이 19세기 후반 서울 및 경기..

1. 삼성각에서 바라본 아미타대불의 장대한 뒷모습과 구절초축제로 분주한 영평사 경내 (대웅보전 뜨락) 2. 영평사 삼성각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과 칠성, 독성 등 삼성이 봉안되어 있다. 1994년 에 지어진 건물로 대웅보전 뒷쪽 산자락에 높이 자리해 있는데, 여기서는 대웅보전을 비롯한 경내 상 당수가 훤히 두 망막에 들어온다. 3. 제법 늙어보이는 견고한 돌덩어리 부도탑처럼 생긴 검은 피부의 돌덩어리가 경내 한쪽 구석에 자리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영평사 자리에는 조선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전하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절의 유물처럼 보이나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4. 영평사의 자랑, 항아리(장독대)의 무리들 영평사는 절 한쪽에 항아리(장독대)의 공간을 넓게 닦았는..

1. 수도사 원효대사깨달음체험관 내 해탈수 평택 수도사는 이곳이 원효대사가 일체유심조를 깨달았다는 토굴 자리라 내세우고 있다. 661년 원효 와 의상은 당나라로 가고자 당항성을 찾았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토굴에 들어가 하룻밤 머물렀다. 그 토굴은 당항성 근처라고 한다. 목이 너무 말라서 어두운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바가지에 물이 담긴 것을 보고 그것을 맛있게 섭취 하고 잠을 청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 바가지는 해골이었고, 잠을 잤던 토굴은 무덤 속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속이 울렁거려 토를 하고 말았는데, 거기서 원효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 조를 깨달았다. 그래서 원효는 당나라를 포기하고 서라벌로 돌아갔으며, 의상만 당항성을 통해 당나 라 장안으로 넘어갔다. 당항성은 화성 서신에 있는 ..

1. 관룡탑을 만나기 50m 직전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길 동쪽 구간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동림정이 나오는데, 여기서 시루봉과 관룡탑, 망우산1보루로 인도하는 산길(구리둘레길1코스)이 마중을 한다. 그 길을 조금 들어서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서쪽(남쪽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 길이 망우산 남쪽 능선과 망우산1보루, 용마산, 아차산으로 이어지며, 동쪽(남쪽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은 시루봉 과 관룡탑으로 빠진다. 시루봉으로 인도하는 산길을 5분 정도 내려가면 아차산, 망우산의 숨겨진 명소이자 거대한 돌탑인 관 룡탑이 마중을 나온다. 2. 아차산 관룡탑의 옆모습 망우산 동남쪽 자락이자 시루봉 서쪽 자락에 관룡탑이라 불리는 크고 견고한 돌탑이 숨겨져 있다. 망 우산과 시루봉은 아차산의 일원이라 아차산 관..

1. 창룡사로 인도하는 고든골길 충주 시내의 동쪽 뫼인 남산(금봉산) 서쪽 자락 280m 고지에 창룡사가 포근히 깃들여져 있다. 이곳 은 석종사 서쪽 산너머로 석종사로 이어지는 직동길에서 남산의 산주름 속으로 인도하는 고든골길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야 된다. 2. 푸른 숲에 감싸인 창룡사 가는 길(고든골길) 3. 석축 위에 높이 자리한 창룡사 경내 남산 서쪽 자락에 깃든 창룡사는 신라 문무왕 시절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원효는 충주 지 역을 지나다가 객주에서 하룻밤 머물렀는데, 꿈에서 푸른 용이 여의주를 물고 희롱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그를 쫓아가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수분을 찾고자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아리따운 처자를 만 났는데, 그녀가 표주박에 물을 떠주면서 '이곳이 참 좋지요' 그랬다..

1.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영탑사 종무소 가운데 칸에는 이곳의 1급 보물인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이 소중히 봉안되어 있다. 조그만 크기의 금동불상으로 연꽃무늬가 새겨진 8각형 대좌에 비로자나불이 앉아있고, 그 좌우로 협 시보살이 자리하여 비로자나3존상을 이루고 있다. 중심 불상(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은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붙여져 있으며, 그 위로 육게(무견정상)가 큼직하게 솟아있다. 거의 네모난 얼굴은 원만한 느낌을 주며 선으로 표현된 옷주름은 도식화된 모습이다. 윗도리는 길고 두툼하지만 아랫도리는 너무 작게 표현되어 신체 비례가 다소 떨어지는데, 무릎 높이도 윗도리에 비 해 낮으며, 가슴 역시 평면적이고 아랫도리는 둔중하게 처리했다. 이런 수법은 고려 중기 이후에 많이 나타난다. 손은..

1. 광덕사 연꽃석조(샘터) 커다란 연꽃석조에는 광덕산(태화산)이 베푼 수분으로 가득해 자연의 넉넉한 마음을 보여준다. (물 섭취 가능) 졸고 있는 바가지를 깨워 돌거북이 뱉은 시원한 물을 한가득 담아 입에 들이키니 갈증이 싹 내려앉는다. 2. 명부전 옆구리에 있는 조그만 석상 동자상으로 보이는 작고 귀여운 석상이 대좌 위에 우두커니 서 있다. 석상과 대좌에는 고색의 때가 가득해 최소 100년 이상 묵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예전(2008년 이전)에는 못봤던 것들이라 2010년 이후에 주변에서 발견된 것을 갖다놓은 모양이다. 3. 뒷전으로 물러난 늙은 맷돌 광덕사 사람들의 음식 제조를 책임졌던 중요한 맷돌이었으나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나 아주 한가로 운 신세가 되었다. 맷돌 위에는 작은 용머리상이 붙어있는데..
' 봄맞이 산사 나들이, 영동 백화산 반야사 ' ▲ 반야사3층석탑과 배롱나무 ▲ 영천과 망경대 ▲ 반야사계곡(석천계곡) ♠ 백화산(白華山)의 첩첩한 산주름 속에 묻힌 고즈넉한 산사, 영동 반야사(般若寺) - 영동군 향토유적 9호 ▲ 반야사 경내 경내 뒷쪽으로 꼬랑지를 든 호랑이를 닮았다는 돌너덜(반야산 호랑이)이 보인다. 영동 고을의 동부를 맡고 있는 황간(黃澗), 그 황간 북쪽 우매리에서 석천계곡(반야사계곡)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그 길의 끝에 반야사가 그림 같은 모습으로 반겨준다. 백두대간의 일원이기도 한 백화산이 베푼 석천계곡이 태극문양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연 꽃 모양의 지형을 이루는 그곳 한복판에 둥지를 닦은 반야사는 백화산의 남쪽 끝자락을 잡고 있다. 절을 둘러싼 주변 경관이 매우 곱고 절의..
~~~~~ 서울의 동북쪽 지붕, 수락산 여름 나들이 ~~~~~ (수락산보루, 도선사, 동막골) ▲ 수락산보루 ◀ 서울둘레길 동막골 구간 ▶ 동막골 숲길 ▼ 도선사 석삼존불상 서울의 동북쪽 지붕을 이루고 있는 수락산(水落山, 638m)은 상계1동에 살던 10대~20대 시 절 나의 뒷동산이다. 지금은 바로 옆 동네인 도봉동(道峰洞)에서 도봉산(道峯山, 720m)의 그늘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수락산이 뻔히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 종종 그의 품을 찾 곤 한다. 그곳에는 계곡과 명소, 오래된 절 등 구수한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수락산 서울 구역에 남아있는 미답처(未踏處)를 일부라도 지우고자 아직 발자국 을 남기지 못한 수락산 보루터와 서울둘레길 수락산 구간 일부, 그리고 오래된 석불을 간 직한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