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수도사 원효대사깨달음체험관 내 해탈수 평택 수도사는 이곳이 원효대사가 일체유심조를 깨달았다는 토굴 자리라 내세우고 있다. 661년 원효 와 의상은 당나라로 가고자 당항성을 찾았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토굴에 들어가 하룻밤 머물렀다. 그 토굴은 당항성 근처라고 한다. 목이 너무 말라서 어두운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바가지에 물이 담긴 것을 보고 그것을 맛있게 섭취 하고 잠을 청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 바가지는 해골이었고, 잠을 잤던 토굴은 무덤 속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속이 울렁거려 토를 하고 말았는데, 거기서 원효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 조를 깨달았다. 그래서 원효는 당나라를 포기하고 서라벌로 돌아갔으며, 의상만 당항성을 통해 당나 라 장안으로 넘어갔다. 당항성은 화성 서신에 있는 ..

1. 1950년대 불교 정화운동과 조계종 출범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내부) 2. 불교 소송 서류 (1950년대 불교 정화운동) 대처승과의 법정 싸움에서 필요한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1~8차)와 불교 정화 관련 각종 자료를 모은 서류이다. 3. 불교사건 서증 사본(왼쪽)과 1956년에 작성된 총무원 일지, 한국불교승단 정화사(오른쪽) 4. 선학원 2층 법당 2층 규모를 지닌 안국동 선학원은 재단법인 선학원의 중심 건물로 1층은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으 로 2층은 법당으로 쓰인다. 바로 2층 법당에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늙은 신중도(신중탱)가 있다. 5. 선학원 신중도 신중도는 위태천 등 호법신의 무리를 빼곡히 담은 탱화로 주로 법당이나 그에 준하는 중요한 건물에 봉안한다. 이 신중도는 선학원에서 가장 늙은 ..

1. 대한독립선언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에서 발행한 것으로 3.1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선포문, 임시헌장 10개 조,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서문, 6개 정강이 담겨져 있다. 2. 선학원 현판과 만해 한용운 동상 해강 김규진(1868~1933)이 1922년에 쓴 선학원 현판이 높이 걸려있다. 그는 옛 선학원 건물에 걸려 있던 것으로 그 앞에 선학원의 중심 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동상이 의연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선학원 현판 왼쪽에 '중앙선원' 현판이 있고, 오른쪽에는 '선불장' 편액이 걸려있음) 3. 불청운동 7, 8호(왼쪽 아래)와 회광 제2호(왼쪽 위), 왜정 종로경찰서가 경성지방법원 검사에게 보 낸 신간회 동정 보고서(오른쪽 위) 4. 신간회 동정보고서(윗쪽)와 만해 한용운의 피체자 기록표(아래쪽..

1. 안국동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경허집과 만해 한용운 선생 약연보) 북촌의 한복판인 안국동 윤보선길에 재단법인 선학원의 중심지인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1층은 선학원의 역사과 관련 유물을 머금은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으로, 2층은 선학원 법당으로 쓰이고 있는데, 북촌이 나의 오랜 즐겨찾기 명소임에도 선학원은 이번에 비로소 첫 인연을 지었다. 그동안 선학원은 그저 현대 사찰로만 알고 있어서 큰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그곳에 지방문화 재로 지정된 늙은 신중탱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 그를 보고자 찾은 것이다. (신중탱은 2층 법당에 있음) 선학원은 고약했던 왜정 시절 친일성향의 사판계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민족불교 수호 및 독립운동 을 위해 부산 범어사의 경성포교당 포교사 남전, ..

1. 천장산 연화사의 부처님오신날 풍경 2. 연화사 관세음보살상과 천수관음도 3. 청량사 동별당 4. 연화사 일주문 5. 연화사 경내로 인도하는 짧은 숲길 6. 오색연등이 그늘을 드리운 연화사 대웅보전 뜨락 7. 연화사 삼성각 8. 연화사 삼성각 석가여래상과 칠성도 9. 연화사 삼성각 산신도 10. 연화사 삼성각 독성도 11. 연화사 대웅보전 12. 연화사 대웅보전 내부 13. 연화사 신중도 14. 연화사 지장시왕도 15. 부처님오신날 관불의식(관정의식)의 현장 (연화사 대웅보전 앞) 16. 연화사 관음전 17. 연화사 천수관음도 18. 관음전에서 바라본 대웅보전 뜨락 19. 연화사 북쪽에 있는 경희대 선동호 20. 연화사에서 먹은 부처님오신날 공양밥(절밥)의 위엄 21. 청량사 대웅전 22. 대웅전 앞..

1. 흥천사에서 먹은 공양밥 즐거운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4월 초파일)을 맞이하여 올해도 변함없이 서울 장안에 여러 절을 둘러보고 왔다. 이번 초파일은 야속하게도 오전부터 종일 비가 내렸는데, 오후에 아주 잠깐 소강 상 태를 보인 것 외에는 우산이 없으면 돌아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졌다. 그러다보니 사진 출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마지막에 들린 화계사에선 빗방울이 꽤 거칠어져 연등 점화, 저녁 예불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금방 나오고 말았다. 무심한 비로 인해 절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초파일 야외 행사와 볼거리가 크게 축소되었고, 흥천사 외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 초파일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하여 2003년 이후 가장 재미가 없는 초파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흥천사는 근래 새로 지은..

1. 삼청동 칠보사 북악산(백악산) 그늘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삼청동 주택가 북쪽 끝부분에 칠보사란 작은 현대 사찰이 숨 겨져 있다. 이곳은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의 절로 삼청공원 종점(종로구 마을버스 11번 종점) 서쪽이자 뮤지엄한미 삼청본관 북쪽이며, 삼청동거리의 북쪽 끝이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여기에 국가 보물로 지정된 늙은 불상을 보고자 함이다. 삼청동 골목(삼청로9길) 안쪽에 자리한 칠보사는 팔작지붕을 지닌 큰법당과 팔작지붕 요사, 범종각 등 건물 3~4동이 전부인 조촐한 절이다. 만해 한용운의 상좌인 춘성이 1932년에 창건해 삼각사라 했다고 하는데, 그는 1939년 광주군 성부산에 봉국사(현재 성남시 봉국사)를 세우면서 삼각사를 그곳에 통합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봉국사는 조선 중 기부터 있..

1. 흥천사 약사여래좌상 흥천사 약사전 불단에 하얀 피부를 지닌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덩치가 큰 가운데 불상 이 약사여래좌상이고, 그 좌우로 아미타여래좌상과 지장보살좌상이 자리해 약사3존상을 이루고 있 는데, 약사여래좌상 뱃속에서 아주 고맙게도 1829년에 금어 영운의윤, 관허정관, 편수 지성이 조성 했다는 조성발원문이 나왔다. 1847년에 조성된 약사불도 화기에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지장보살, 주산대왕 석상 4위를 개분중수' 했다는 기록이 있고, 2016년에 벌인 복장 조사에서 1853년에 작성된 '만월전 개분원문'이 발견되어 약사3존상이 같이 봉안되었다는 내용이 나왔다. 허나 기록에 나온 그 3존상과 약사전에 있는 약사3 존상이 같은 존재인지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그래서 이들 3존상 ..

1. 창원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2. 불곡사 일주문 3. 일주문 서쪽 평방에 자리한 호랑이와 용 꼬리 조각 4. 일주문 동쪽 평방에 자리한 거북 조각 5. 오래된 불곡사 승탑(부도탑) 6. 불곡사 세음루 7. 불곡사 비로전 8. 비로전에 봉안된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9.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광배 10. 불곡사 지장탱 11. 불곡사 범종각과 명부전 12.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상 13. 불곡사 칠성각 14. 칠성각 독성탱 15. 칠성각 칠성탱 16. 칠성각 산신탱 17. 불곡사 관음전 18. 관음전에 봉안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 석가탄신일 절 나들이, 옥수동 미타사 ~~~~~ ▲ 미타사 느티나무 올해도 변함없이 석가탄신일(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 이하 초파일)이 다가왔다. 비 록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들 이상만큼 그날을 즐기고 산 지도 어느덧 10여 년, 초파 일에 대한 설레감은 다른 날보다 높아 며칠 전부터 초파일 코스를 짜느라 부산하다. 그날만큼은 굳이 멀리 나가지 않고 서울 장안의 오래된 절과 문화유산을 품은 현대 사 찰(20세기 이후)을 대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이제는 서울에서 미답(未踏) 절이 거의 고갈 상태에 이르렀다. 다행히 이때를 대비하여 남겨두었던 미답의 고찰(古刹)이 여럿 있는데, 그중 2개를 이번에 꺼냈다. (나머지는 이후에 모두 꺼냈음) 드디어 초파일 오전 10시, 도봉동 집을 나서 제일 ..
1. 영덕 칠보산 유금사 동해바다를 옆구리에 낀 영덕 고을의 북쪽 끝, 칠보산 동쪽 자락에 유금사란 고즈넉한 비구니 산사가 있다. 동해안 7번국 도에서 칠보산 자락으로 꽤 들어가야 되는 깊은 산속에 자리해 있는데, 637년에 자장율사가 왕명으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과연 그럴까?) 조선 중기까지 대웅전, 종각, 장화보인산령각 등 많은 건물을 지니고 있었고, 승려도 수십 명에 이르렀는데, 어느 날 주지 가 경주 불국사 법회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절 앞 용소에서 용 2마리가 예민(?)한 짓을 하는 것을 보고 흥분과 고약함 을 느꼈다. (유금사는 불국사의 말사임) 그런데 절에 들어서기도 전에 폭우가 쏟아졌고, 이내 산사태로 절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전 하며, 1627년에 중창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