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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왕산둘레길 탕춘대성능선에서 바라본 부암동과 평창동, 북악산(백악산), 형제봉능선

서울 도심 속의 전원마을인 부암동과 평창동, 홍지동 지역과 백사실계곡(백석동천, 백사골)을 품은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이 상큼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2. 인왕산둘레길 탕춘대성능선에서 바라본 홍은동과 내부순환로, 홍제동 지역

인왕산과 북악산(백악산)의 북쪽 품을 파고드는 내부순환로는 차량들로 늘 버벅거린다. 하여 차량들

이 내는 소음이 여기까지 솟구쳐 산을 타는 나그네의 두 귀를 멍멍하게 만든다.

 

3. 인왕산 탕춘대성능선 바위길 (인왕산둘레길)

바위 밑은 그야말로 천길낭떠러지라 조심해야 된다. 탕춘대성이 이곳을 지나가지만 워낙 천험 수준이

라 바위 윗도리에는 거의 성벽을 쌓지 않았다.

 

4. 고된 세월에 완전히 초췌해진 인왕산 탕춘대성

산길을 따라 이어진 빛바랜 성곽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삼각산)을 이어주던 탕춘대성이다. 연산군이

세검정 부근에 지었다는 탕춘대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한양(서울) 서쪽(정확히는 북서쪽)에 있

다고 해서 서성(西城)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겹성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었다.

 

이 성은 숙종이 만약에 모를 청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해 서울의 방어력을 높이고 비상시 북한산성 행

궁으로 신속히 도망칠 수 있는 시간 확보를 위해 조성되었다. 1702년 신완이 성곽 축성을 제의했는

데, 북한산성 조성과 행궁 조성, 한양도성 보수가 마무리되자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

을 짓고자 1715년 홍제천에 홍지문을 먼저 닦았다. 그런 다음 1718년 8월 26일 성곽 공사에 들어갔

으나, 겨울이 다가오면서 10월 6일에 일단 공사를 멈추고 1719년 2월 다시 공사에 들어갔다. 허나

처음보다 사업이 크게 축소되면서 3월에 공사를 종료시켰다.

그렇게 태어난 탕춘대성은 인왕산 북쪽 자락에서 시작하여 홍지문, 탕춘대능선을 거쳐 비봉능선 서

쪽 수리봉(향로봉 부근)까지 이어진 4km 규모로 원래는 북한산성까지 이으려고 했으나 비봉능선이

험준하여 포기했다. 그리고 북한산성 대남문에서 보현봉, 형제봉능선, 북악산(백악산) 북쪽 능선을

거쳐 한양도성을 잇는 탕춘대성 동쪽 성곽도 계획했으나 취소되었다.

 

인왕산과 북한산(삼각산) 경계인 홍제천에는 홍지문과 오간대수문을 두었으며, 탕춘대능선에는 암

문 1개를 두었다. 그리고 성 안에는 훈련장인 연융대와 선혜청, 평창 등의 국가 창고를 설치했으며,

총융청 본부도 이곳에 두었다.

탕춘대성이 들어앉은 위치 대부분은 각박한 경사지로 거의 천험(天險)을 자랑한다. 하여 홍지문을

제외하고는 성곽을 그리 높이 구축하지 않았으며, 현재는 인왕산 북쪽 능선과 홍지문, 탕춘대능선

에 성곽이 그런데로 남아있다.

 

5. 각박한 바위 벼랑에 조성된 탕춘대성

천길낭떠러지의 바위 벼랑이 든든하게 자연산 성벽이 되어준 탓에 그 위로 키 작은 여장만 올렸다. 그

여장도 세월을 고되게 타면서 많이 헝클어진 모습이다.

 

6. 인왕산 탕춘대성능선에서 바라본 홍지동과 신영동, 상명대, 평창동, 북한산(삼각산)

 

7. 대자연이 늦가을 서정을 뿌리고 있는 탕춘대성능선길 (인왕산둘레길)

 

8. 인왕산둘레길과 탕춘대성 여장 (남쪽 방향)

각박한 경사의 산길(인왕산둘레길)을 따라 탕춘대성 여장이 펼쳐져 있다. 여장은 크게 망가진 것을 근

래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9. 인왕산둘레길과 탕춘대성 여장 (북쪽 홍지문 방향)

 

10. 인왕산 탕춘대성능선 북쪽 종점에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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