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동그랗게 누워있는 종친부터 우물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울관) 자리에는 조선 왕실 관청인 종친부가 있었다. 종친부는 제왕의 어보와 영정을 보관하고, 제왕 내외의 의복을 관리하며, 왕족들의 관혼상제와 봉작, 벼슬 등의 인사문제, 기타 그들과 관련된 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처음에는 제군부라 했으나 1433년에 종친부로 이름을 갈았으며, 1864년에는 종부시와 합쳐졌고. 1894년 종정부로 개편되었다. 1907년 순종의 칙령으로 황실과 국가의 주요 문서를 보관하던 규장각으로 쓰였으며, 왜정은 이곳에 있던 서적들을 경성제국대학(서울대)으로 모두 옮겼다. 그리고 천한전(天漢殿), 아재당(我在堂)등 종친부에 딸린 건물 상당수를 부셔버리고 종친부의 중심 건물인 경근당과 옥첩당, 이승당(貳丞堂)만 남겨 망국 황실을 ..

1. 소격동 비술나무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울관) 서쪽에는 비술나무 3형제가 나란히 자리해 일품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비술나무란 존재가 꽤 생소한데, 그는 느릅나무과의 큰키나무로 우리나라와 우리의 옛 땅인 중원대륙과 몽골, 연해주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주로 중부 이북의 평지와 하천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데, 지리산 등 남부지역에서도 드물게 자란다. (영어식 학명은 'Ulmuspumila L.) 추위와 공해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어 가로수와 녹음수, 공원수로 드물게 쓰이며, 경북 영양군 주남리의 비술나무 숲이 '영양 주사골 시무나무와 비술나무숲'이란 이름으로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3~4월에 잎이 나기 전에 양성화가 피며, 열매는 5~6월에 익는데, 잘 자란 나무는 높이 20..

1. 관훈동 회화나무온갖 키다리 건물로 즐비한 서울 도심의 한복판 종로구 관훈동, 그 관훈동 192-18번지에 400년 묵은 늙은 회화나무 1그루가 교묘하게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그 나무가 있는 곳은 SK건설빌딩 동쪽으로 그 동쪽 구석에 조그만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에 회화나무가 자리해 일품 그늘을 드리운다. 서울 지리에 정통하고 서울에 안가본 곳이 거의 없다고 자부하는 본인이지만 우연한 그의 발견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즐겨찾기로 자주 찾는 종로와 인사동 옆, 그것도 서울 도심부에 이런 구석이 있었다니 말이다.나무 서쪽에 SK건설빌딩이 높이 솟아있고 북쪽과 동쪽, 남쪽에도 키다리 건물이 자리해 그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다. 특히 서쪽과 남쪽 건물은 회화나무보다 훨씬 커서 오히려 그들의 ..

1. 인사동 승동교회승동교회는 정동교회와 더불어 서울 장안에서 가장 늙은 측에 속하는 교회이다. 내 즐겨찾기의 일원인 인사동 한복판에 버젓히 자리해 있고 그의 존재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의 존재감을 계속 무관심으로 흘려버렸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늙은 문화유산임에도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해 가을에 비로소 첫 인연을 지었고, 이후로도 여러 번 발걸음을 했다. 이 교회는 1893년 미국 선교사인 새뮤얼 무어 목사가 설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한옥에 교회를 차렸다. 그러다가 1910년에 새 교회당을 짓기 시작해 1912년에 완성을 보았으니 그것이 현재 승동교회가 되겠다. 110년 이상 묵은 늙은 교회로 서울 장안에는 그만큼의 역사를 가진 교회가 여럿 있지만 대부분 기존 건물을 부셔버리고 새로 지었다. 그래서..

1. 박자혜 산파터 표석박자혜(1895~1943)는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3.1운동 시절 간호사들과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왜정의 단속을 피해 중원대륙으로 넘어가 거기서 단채 신채호 선생과 혼인했다.서울로 돌아와 인사동에 산파를 개원했는데, 산파는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아이를 받고 산모를 돌보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산부인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의사는 절대로 아님) 그는 산파를 운영하면서 나석주의 의거(1926년)를 돕는 등 계속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1943년 48세에 한참 나이로 병사했다. 원래 산파터는 표석 자리가 아닌 그 북쪽이지만 그곳에 자리가 여의치 못해 이곳에 세웠다. (2020년 8월에 서울시에서 세웠음)

1.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운현궁 서쪽 맞은편이자 삼일대로 서쪽에는 천도교의 중심 건물인 수운회관과 붉은 피부를 지닌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수운회관과 더불어 우리나라 천도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종교의식과 행사를 치루는 중심 교당으로 천도교 3대 교주인 손병희가 세웠다. 그는 300만 교인에게 1가구당 10원씩을 목표로 돈을 거둬들여 무려 22만원의 거금을 장만해서 지었는데, 설계는 왜인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시공은 중원대륙에서 온 장시영에게 시켰다. 1918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했지만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으로 다소 지체되었다가 1921년 2월에 비로소 완성을 보았다. 처음에는 400평 규모로 크게 지으려고 했으나 조선총독부가 교당이 너무 크고 중앙..

1. 경운동 서북학회터서북학회는 1908년에 평안도와 함경도, 황해도 사람들이 국권 회복운동을 위해 조직했던 애국계몽단체이다. 왜정의 탄압이 고약하게 심해지자 1909년 만주에 무관학교를 세워 군사를 길렀으며, 그로 인해 독립군의 무장 투쟁으로 노선이 크게 전환된다. 허나 1910년 왜정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으며, 서북학회가 있던 자리(서북학회 표석 서쪽)에는 이후 오성학교와 보성전문학교, 건국대의 전신인 정치대학이 잠시 거쳐갔다. 2. 서북학회 표석 옆에 닦여진 삼일대로 명소 안내도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의 왕년의 모습과 지금은 사라진 서북학회와 조선건국동맹, 왜정 시절 서울 3대 건축물의 일원이었던 천도교중앙대교당, 그리고 탑골공원이 표시되어 있다.

1. 경운동 조선건국동맹터 표석 (경운동 삼일대로변)조선건국동맹은 1944년 8월 10일에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애국독립단체이다. 조국 광복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자 조직된 것으로 여운형과 조동호, 현우현, 황운, 이석구, 김진우 등이그 중심 인물인데, 산하 조직으로 조선농민동맹을 두었다.조선건국동맹은 표석이 있는 자리가 아닌 그 서쪽에 있었으며, 해방 이후 해체되었다. 그 조직이 들어있던 건물 또한 세상이 여러 번 엎어지면서 사라졌다.

1. 경운동 구통계국청사안국역(3호선) 남쪽 삼일대로변에 자리한 구 통계국청사(구 경제기획원 통계국 청사)는 1961년에 지어진 건물이다.그는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우리나라 1세대 현대건축가로 추앙을 받는 이희태가 1959년에 설계했는데, 건물의 높이와 비례는 1:3이다. 정면에서 높이를 가로 방향으로 3등분하여 세로로 창살을 대었는데, 이는 수평으로 보았을 때 사각형의 비례와 나눠진 각 면이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한 이희태의 건축 스타일이라고 한다. 건물 내부는 여러 번 변형되었으나 이희태의 초기 설계 개념이 잘 남아있으며, 해방 이후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로 평가를 받아 서울시 등록문화유산의 지위를 받았다. (서울시 등록문화유산이란 지위는 20..

' 서울 근대문화유산의 1번지, 정동 나들이 ' ▲ 성공회서울성당 ▲ 구세군중앙회관 ▲ 덕수궁 돌담길 (영성문고개)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 그 도심 한복판에 근대문화유산의 성지(聖地) 로 격하게 추앙을 받는 정동(貞洞)이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현재 성북구 정릉동(貞陵洞) 골짜기에 있는 정릉(貞陵,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

1. 정동 성공회서울성당 2. 구세군중앙회관 3. 덕수궁 돌담길 (영성문고개) 4. 서남쪽 양이재에서 바라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성공회성당) 5.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성공회성당) 6. 성공회성당 내부 (북쪽 예배실) 7. 성공회성당 예배실과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모자이크 제단화 8. 성공회서울성당 서쪽 예배실 9. 성공회성당 2층에 자리한 파이프오르간 10. 1996년 5월 2일, 성당 완성을 기념하여 세운 성수 석물 11. 성공회성당 머릿돌 12. 트롤로프가 묻힌 지하묘지 예배당 13. 트롤로프가 묻혀있는 지하묘지 14. 경운궁 양이재 15. 장미꽃의 향연이 펼쳐진 양이재 뒷뜨락 16. 덕수궁(경운궁) 수학원 출신의 한옥 (주교관) 17. 덕수궁 서쪽 돌담길 (영성문고개) ..

' 북촌 중앙고등학교, 창덕궁 후원 뒷길 겨울 나들이 ' ▲ 창덕궁 신선원전, 의효전 구역 ▲ 중앙고등학교 (본관 주변) ▲ 창덕궁 후원 돌담 겨울의 차디찬 한복판인 1월의 끝 무렵, 북촌(北村)에 자리한 중앙고등학교와 창덕궁 후원 뒷길을 찾았다. 북촌과 창덕궁 후원 뒷길은 내 즐겨찾기 명소로 매년 여러 번씩 발걸음을 하고 있다. 이미 지겹도록 복습을 한 곳이지만 자꾸만 손과 발이 가니 그들에게 단단히 중독된모양이다. 마침 며칠 전 겨울 제국(帝國)이 서울에 눈폭탄을 투하했는데 그들의 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