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인왕산둘레길 환희사~청련사 구간지방문화재 2점을 간직한 비구니 사찰, 환희사에서 인왕산둘레길(8.4km)을 따라 남쪽 고개를 넘으면 청련사가 마중을 나온다. 흙길과 나무데크길(계단길)이 적절히 섞인 구간으로 특히 소나무가 많다. 2. 청련사 직전에서 만난 단풍나무들 (이때가 11월이었음) 3. 청련사에서 인왕산 한양도성으로 올라가는 산길인공조미료가 과하게 들어간 계곡 옆으로 인왕산 지붕으로 인도하는 산길이 있다. 인왕산 한양도성 능선에 있는 범바위 북쪽까지 이어지는데, 경사가 다소 각박하다. 4. 청련사를 뒤로 하며인왕산 서쪽 자락 가파른 곳에 자리한 청련사는 환희사처럼 20세기 중반 이후에 창건된 현대사찰이다. 대웅전과 요사, 삼성각 등의 건물과 석탑, 석불을 지니고 있으며, 소장 문화유산은 없..

1. 환희사 목불좌상(아미타불좌상)환희사 법당인 대웅전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목불좌상(아미타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자리해 아미타삼존상을 이루고 있는데, 예전에는 동그란 법륜을 두광으로 두른 지장보살과 아주 작은 덩치의 관세음보살상이 좌우에 자리해 있었다. 불단에 앉아 넉넉하고 포근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목불좌상, 그는 원래 연천에 있던 심원사(心源寺)에서 넘어온 것이다. 심원사는 경기도 연천 지역에서 꽤 명성이 높았던 절로 6.25 때 파괴되자 그곳에 있던 숱한 불상들이 고향을 잃고 외지로 흩어졌다. 이 목불좌상도 그중 하나로 환희사에서 어떻게 수습하여 이곳의 중심 불상으로 삼았다.이 불상은 서방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로 17세기 중반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

1. 인왕산 환희사 밑 (속세와 환희사를 이어주는 길과 인왕산둘레길이 만나는 곳)인왕산에서 경사가 매우 각박하고 집을 지을 자리도 없을 것 같은 기차바위능선 서쪽 자락 큰절골에 조그만 비구니 절인 환희사가 조용히 안겨져 있다. 너무 없는 듯 자리해 있어 이곳의 존재를 안 것은 1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환희사는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현대 사찰로 절이 있기 전에는 무당이 굿을 하거나 사람들이 수행을 하는 석굴이 있었다고 전한다. 조촐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용화전, 요사로 쓰이는 건물 3동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불상 2기가 있는데, 이들 문화유산은 모두 다른 곳에서 업어왔다.경내 북쪽과 동쪽, 남쪽은 경사가 급하며, 서쪽으로 속세로 내려가는 길이 닦여져 있는데, 절 주변은 속..

1. 인왕산둘레길 개미마을 남쪽 고개인왕산둘레길은 인왕산 중턱에 닦여진 8.4km의 숲길이다. 이 숲길은 도심 속 산골마을인 개미마을의 동쪽과 남쪽을 지나가는데, 남쪽 고개를 넘으면 바로 환희사 입구에 이른다. 2. 개미마을 남쪽 고개에서 만난 바위들 (이곳 조망이 괜찮음) 3. 덩그러니 자리한 바위들 (개미마을 남쪽 고개 바위들) 4. 개미마을 남쪽 고개 바위에서 바라본 천하하얀 아파트로 거의 도배가 된 홍제동 일대와 무악재, 안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안산(295.9m)은 무악재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과 마주하고 있다. 5. 개미마을 남쪽 고개에서 바라본 천하홍제동과 홍은동, 안산 북쪽 자락, 백련산 등 (홍제동과 홍은동 시가지 너머로 넓게 누워있는 산이 백련산) 6. 대자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

1. 인왕산둘레길 개미마을 동쪽 구간인왕산둘레길은 인왕산 중턱에 둘러진 8.4km의 상큼한 도심 속 숲길이다. 종종 발걸음을 하는 즐겨찾기 숲길로 이번에는 홍제동 세검정로에서 시작하여 무악동 선바위 남쪽까지 긴 거리를 이동했다. 2. 늦가을에 푹 잠긴 인왕산둘레길 (이때가 11월 초였음) 3. 인공 조미료가 과하게 들어간 조그만 계곡 옆을 지나는 인왕산둘레길 4. 울울한 숲속을 지나는 인왕산둘레길 (개미마을 동쪽) 5. 나무데크 계단길과 볏짚이 나란히 깔린 산길 (홍심약수터 방향 산길) 6. 홍제동 개미마을을 지나다개미마을은 인왕산 북쪽 자락에 둥지를 튼 산동네(달동네)이다. 인왕산 자락에 푹 감싸여 있어 이곳이 서울이 아닌 산간지방 마을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가옥 벽과 담장에 벽화를 잔..

1. 세검정로를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인왕산둘레길인왕산둘레길은 인왕산 허리에 둘러진 8.4km의 상큼한 도보길이다. 종로구 무악동과 사직동, 누상동, 옥인동, 청운동, 부암동, 그리고 서대문구 홍제동을 두루 지나가는데, 이번에 홍지문에서 둘레길을 시작하여 개미마을 주변, 환희사, 무악재를 거쳐 선바위 주변 무악동까지 이동했다. 2. 고층 계단을 타는 인왕산둘레길산속 후미진 길로 들어선 인왕산둘레길은 내부순환로 관리시설 건물 앞에 닦여진 고층 계단을 통해 인왕산 숲속으로 들어선다. 이 고층 계단은 인왕산둘레길 조성으로 생긴 것으로 그를 올라서면 용천약수터와 홍심약수터, 개미마을로 이어진다. 3. 고층 계단에 올라서 바라본 홍지동과 신영동, 평창동, 북한산(삼각산) 4. 삼삼한 숲을 지나는 인왕산둘레길..

1. 한양도성 광희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2,4,5호선) 동남쪽 광희동에 자리한 광희문은 한양도성 성문의 일원이다. 1396년에 세워진 것으로 문의 이름인 '광희'는 '빛이 멀리까지 사방을 밝힌다'는 좋은 뜻이다.청계천과도 가깝고 남산에서 내려온 물을 배출하는 곳이라 오랫동안 수구문이라 했으며, 서소문(소의문)과 함께 한양도성 내에서 죽은 이의 시신을 성밖으로 배출하는 문으로도 쓰여 시구문이란 우울한 이름도 지니고 있다. 17세기에는 이 성문을 남소문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남소문은 남산 국립극장 남쪽에 따로 있었다. (그곳에 남소문터를 알리는 표석이 있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문이 크게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도망왕으로 악명이 높은 인조는 이괄의난(1624년)과 병자호란(1636~1637년) 시절에..

1. 남산예장공원 (조선총독부 관사터)남산제1호터널 북쪽 입구이자 퇴계로2가 교차로 남쪽에는 남산예장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남산의 북쪽 끝을 잡고 있는 이 공원은 원래 도로와 작은 녹지가 있던 곳으로 2021년 공원으로 손질되었다.지금은 도심 속의 작은 오아시스 같은 평화로운 풍경으로 있지만 대한제국 끝 무렵에는 왜정이 설치한 한국통감관저가 있었으며, 왜정 때는 조선총독부 관사가 있었다. 그리고 1961년 5.16 이후에는 이곳 일대에 중앙정보부가 들어섰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절 '남산'은 '중정(중앙정보부)'를 뜻했으며, 1995년 중정이 안기부로 이름을 바꾸고 한강 건너 서초구 내곡동으로 둥지를 옮겼다. 공원에는 조선총독부 관사터와 기억6전시관이 있는데, 이곳을 거쳐간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관사,..

1. 예장동 은행나무 (서울시 보호수)남산제1호터널 북쪽 입구이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터 주변에는 400년 이상 묵은 늙은 나무 2그루(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다. 이들은 서울소방재난본부와 문학의집서울 입구에서 서울유스호스텔과 남산 북측순환로로 인도하는 퇴계로26가길에 있는데, 지금이야 이곳이 열린 공간으로 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안전기획부, 예전 중앙정보부)에 딸린 통제구역이었다. 이곳 은행나무는 430년(1996년 8월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400년) 묵은 것으로 높이 21.5m, 나무둘레 594cm의 큰 덩치를 지녔다. 이렇게 늙은 나무임에도 서울시 보호수로 늦게 지정된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이곳이 금지구역이었기 때문이다. 2. 예장동 느티나무 ..

1.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 (현 문학의집 서울)남산제1호터널 북쪽 입구이자 서울소방재난본부 주변에는 그 이름도 후덜덜한 옛 중앙정보부 소속 건물들이 10여 채 산재해 있다. 그중에서 제법 비싸게 생긴 2층 양옥이 중앙정보부장이 생활하던 공관이다. 남산 북쪽 자락에 자리한 이 공관은 1961년에 지어진 것으로 1981년까지 중앙정보부장의 관저로 쓰였다. 연면적 596.39㎡, 건축면적 337.75㎡,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여기서 생활한 중앙정보부장은 김재규와 이후락, 김형욱 등 11명에 이른다.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간판을 바꾸었고, 1995년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 남쪽 자락으로 둥지를 옮겼는데, 그때부터 6년 동안 완전히 방치되는 신세가 된다. 한때 철거 이야기도 나왔으나 서울시에..

1. 명동성당(명동대성당, 명동주교좌성당)의 뒷모습명동 번화가 동쪽인 진고개 언덕에는 명동성당(명동대성당, 명동주교좌성당)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성당은 서울 및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당이자 이 땅 최초의 성당 본당이며, 서울 사대문 내에 남아있는 성당 중 가장 늙은 존재이다. (약현성당과 원효로성당은 사대문 밖에 있음) 또한 명동의 상징이자 백미같은 존재이며, 천주교 외에도 민주화운동과 민중들의 항쟁 장소로도 바쁘게 살았다. 이 성당은 1898년에 지어졌다. 이곳은 천주교 신자인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1883년 블랑주교가 성당을 짓고자 '김가밀로'란 조선인 명의로 이 일대를 사들였다. 하지만 풍수지리에 따른 조선 조정과의 갈등과 청일전쟁 등 여러 요인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8..

1. 명동성당(명동대성당,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명동 번화가 동쪽 진고개 언덕에는 명동성당(명동대성당, 명동주교좌성당)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다. 이 성당은 서울 및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당이자 이 땅 최초의 성당 본당이며, 서울 사대문 내에 전하는 성당 중 가장 늙은 존재이다. (약현성당과 원효로성당은 사대문 밖에 있음) 또한 명동의 상징이자 백미 같은 존재이며, 천주교 외에도 민주화운동과 민중들의 항쟁 장소로도 꽤 바쁘게 살았다. 이 성당은 1898년에 지어졌다. 이곳은 천주교 신자인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1883년 블랑주교가 성당을 짓고자 '김가밀로'란 조선인 명의로 이 일대를 구입했다. 하지만 풍수지리에 따른 조선 조정과의 갈등과 청일전쟁 등 여러 요인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