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안(시안) 천복사 소안탑서안성 남문에서 가까운 비림구(베이린구) 한복판에 소안탑과 그를 품은 천복사(젠푸사)란 늙은 절이 있다. 소안탑은 당나라 중종 시절인 707년에 세운 것으로 벽돌로 다진 밀첨식 전탑이다. 높이 43.3m의 13층 규모를 지니고 있는데, 왕년에는 15층에 46m(또는 88m) 규모였으나 꼭대기가 무너졌다. 예전에는 화엄탑이라 불렸으나 명나라 때 대자은사에 있는 대안탑과 비교해 규모가 작다고 하여 소안탑이란 간판을 달게 되었다. 네모난 기좌 위에 탑신을 세웠으며, 탑신의 1층 각 변의 길이는 11.38m이다. 1층의 남쪽과 북쪽에 문이 있으며, 문틀은 청석으로 만들었다. 문미 위에는 선각으로 천인과 덩굴풀을 새겼으며, 각 층의 처마 간격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진다.각 층마다..

1. 초안산 정상~잣나무힐링숲 구간 남쪽 능선길초안산 정상(115.5m)에서 잣나무힐링숲과 비석골근린공원 방향 남쪽 능선길을 가다 보면 산길 주변으로 늙은 무덤들의 흔적들이 적지 않게 마중을 나온다. 비석(묘표)과 향로석, 상석, 문인석, 망주석, 그리고 헝클어진 봉분과 봉분터 등이 주류를 이루는데, 대부분 성치 못한 모습들이다. 즉 온전하게 있는 무덤이 거의 없다. 2. 산길 옆에 있는 무덤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무지 작은 문인석 2기와 그보다 큰 상석, 비좌가 덩그러니 있다. 상석과 비좌 뒤에는 이들을 지닌 무덤 봉분이 있었으나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터만 있다. 게다가 무덤 바로 옆에 산길까지 닦이면서 다소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3. 수풀에 묻힌 무덤 상석과 향로석무덤 봉분 자리는 완전 수풀..

1. 초안산 정상 주변초안산은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있는 115.5m의 낮은 뫼이다. 도봉구의 남쪽 지붕이자 노원구의 서쪽 지붕으로 지금은 창동과 월계동 지역의 상큼한 뒷동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조선 때는 무려 공동묘지였다.조선 때는 성저십리(한양도성밖 10리) 내에는 무덤을 쓸 수 없어서 무조건 그 너머에 써야 했는데, 초안산은 성저십리를 넘는 곳이다. 게다가 산 주변으로 우이천(초안산 서쪽)과 중랑천(초안산 남쪽)이 흐르고 있고 북한산(삼각산) 산줄기가 여기까지 손을 뻗치고 있어서 배산임수에 딱 맞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양반사대부에서 중인, 내시, 궁녀, 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이곳을 사후 안식처로 삼았다. 산의 이름인 '초안'은 죽은 이들의 안식처를 정한다는 뜻이니 그야말로 이..

1. 동명리 개명물명월성 북쪽 끝부분에 있는 개명물은 제주도에 아주 흔한 용천수이다. 화산들의 놀이터였던 제주도는 수분 흡수에 최적화된 현무암 피부의 섬이라 물의 상당수를 먹어치우는 단점이 있다. 하여 제주도에 있는 하천과 계곡들은 거의 메마른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땅속으로 들어간 수분은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뿜어져 나오니 그것이 바로 용천수이다.이곳 개명물은 명월성의 식수를 책임졌던 존재로 수분이 늘 풍부하여 물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여 주변 마을 사람들은 이곳 물에 의지해 삶을 꾸렸다. 허나 지금은 상하수도 때문에 거의 뒷전으로 밀려난 그야말로 뒷방 노인네 같은 한가로운 존재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물은 여전히 풍부하게 쏟아져 대자연의 넉넉한 마음을 비춘다. 근래 개명물 주위로 벽을 쌓고 지붕을 얹..

1. 초안산을 찾아서 (창동역에서 녹천역, 창동주공4단지 방향 노해로66길)초안산은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있는 해발 115.5m의 낮은 뫼이다. 창동과 월계동 지역의 오랜 뒷동산인 초안산은 도봉구의 남쪽 지붕이자 노원구의 서쪽 지붕으로 지금은 도시의 달달한 뒷동산으로 있지만 조선 때는 구파발 이말산과 더불어 서울 사람들의 큰 공동묘지였다.초안산에서 발견된 무덤은 무려 1,100여 기로 산 전체가 거대한 무덤밭이나 다름이 없는데, 양반사대부와 내시, 상궁, 중인, 서민 등 다양한 계층이 묻혀있다. 조선 때는 한양도성에서 무조건 10리 밖에 무덤을 쓰게 되어 있는데, 초안산이 10리 밖에 자리한다. 게다가 산 주변으로 우이천과 중랑천이 흘러 명당 자리로 크게 찬양을 받는 배산임수의 모양새까지 보..

' 봄맞이 산사 나들이, 달성 우록리 남지장사 ' ▲ 우록리 남지장사 봄이 힘겹게 겨울 제국을 몰아내고 오랜 추위로 놀란 천하를 한참 안정시키던 4월의 첫 무 렵, 대구(大邱) 동남쪽 끝에 자리한 달성군 우록리(友鹿里)를 찾았다. 우록리는 서쪽으로 우미산(736m), 남쪽으로 삼성산(668m), 북쪽과 동북쪽으로 최정산(905m )과 삼정산(566m)에 꽁꽁 감싸인 산골로 신천(新川)이 흐르는 동쪽만 가늘게 길이 있어 그 곳으로 사람과 차량이 오간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시절 항왜(降倭)로 유명한 김충선의 유적(김충선 묘, 녹동서원)이 전하 고 있는데, 사슴과 벗한다는 뜻의 우록리란 마을 이름도 그가 지었다고 전한다. 그 김충선 ..

1. 우록리 남지장사 2. 남지장사로 오르면서 바라본 우록리의 남쪽 지붕, 삼성산~봉화산 산줄기 3. 남지장사로 인도하는 숲길 (남지장사 직전) 4.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남지장사 5. 남지장사 연꽃 석조 6. 남지장사 경내로 인도하는 연등 계단길 7. 광명루 8. 안쪽에서 바라본 광명루 9. 오색연등이 새로운 허공을 이루는 대웅전 뜨락 10. 남지장사 삼성각 11. 삼성각 산신탱, 칠성탱, 독성탱 12. 남지장사 극락보전 13. 남지장사 대웅전 14. 남지장사 석가여래삼존좌상 15. 남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 16. 대웅전 신중탱 17. 남지장사 승탑(부도탑) 18. 청련암 19. 청련암 법당의 서쪽 공간 20. 청련암 정문 21. 청련암에서 우록리로 내려가는 숲길 (우록마을 등산로1코..

1. 명월성 남문 옹성명월성은 제주도에 아주 흔한 현무암으로 만든 평지성이다. 1510년 제주목사 장림이 명월포(한림읍)가 방어에 취약하다 여겨 지역 백성들을 동원하여 만든 목책에서 비롯되었는데, 1592년 제주목사 이경록이 현무암을 동원해 석성으로 크게 증축했다.이곳 성의 규모는 둘레 1,360m, 높이4.2m이며, 동문과 서문, 남문 등 3개의 성문을 두었다. 그리고 성내에는 진사 3칸, 객사 3칸, 사령방 2칸, 공소 2칸, 공수 2칸, 무기고 4칸, 도청 4칸, 진고 4칸, 창대청 3칸, 중화청 2칸, 진졸청 3칸, 창고 4동(2칸 규모) 등을 두었으며, 만호 1명, 치총 4명, 수솔군 82명, 성정군 330명, 유직군 99명, 진리 22명, 서기 30명, 봉수와 연대를 지키는 별장 54명, 봉군..

1. 대한성공회 음성성당(음성교회)음성 읍내 북부에 자리한 대한성공회 음성성당은 충북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1923년 영국 선교사인 휠렛트(G.E. Hewlett, 한국명 유신덕) 신부가 주도하여 지은 것으로 그해 10월 7일 완성을 보았는데, 그로부터 9일뒤에 한옥 스타일의 진천성당이 지어졌다. 이곳 성당은 정면 3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서쪽에 출입구를 내고, 동쪽에 제단을 두었다. 서양의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 건축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가구 구조는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으며, 전통방식인 벽제대와 한옥성당이면서 스테인글라스가 있는 점, 남녀의 출입구가 철저히 분리된 것이 이 성당의 특징이다. 대한성공회 음성성당은 1928년 신명학당을 설립해 민족교육과 종교교육을 벌였고, 기존..

1. 명월리 들녘에서 바라본 명월성 (명월성지)한림읍 명월리의 북쪽 끝 들녘에는 현무암 피부를 지닌 명월성이 있다. 이곳은 평지에 조성된 성으로 1510년 제주목사 장림이 명월포가 방어에 취약하다 여겨 지역 백성들을 동원해 나무로 다진 목책에서 비롯되었다.1592년 제주목사 이경록은 석성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는데, 성의 규모는 둘레 1,360m, 높이4.2m이며, 동문과 서문, 남문 등 3개의 성문을 두었다. 그리고 성내에는 진사 3칸, 객사 3칸, 사령방 2칸, 공소 2칸, 공수 2칸, 무기고 4칸, 도청 4칸, 진고 4칸, 창대청 3칸, 중화청 2칸, 진졸청 3칸, 창고 4동(2칸 규모) 등을 두었다. 또한 이곳에는 만호 1명, 치총 4명, 수솔군 82명, 성정군 330명, 유직군 99명, 진리 22명..

1. 제주 명월대명월 팽나무군락 한복판인 명월리 옹포천 벼랑에 명월대라 불리는 석대가 있다. 벼랑 위에 네모나게 바닥돌을 쌓고 그 위에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작은 8각형 모양의 2중 석대를 쌓았다. 이것이 명월대의 전부이다.이곳은 명월리와 한림읍 지역 양반과 선비, 문인들이 모임을 하거나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옆에 건천 스타일의 옹포천이 흐르며, 주변으로 팽나무군락이 무성하게 우거져 크게 풍경을 돕는다. 그리고 북쪽으로 반달형 돌다리를 닦아 명월대 접근을 돕는다. 명월대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며, 돌다리는 20세기 것이다. 2. 명월대 주변을 어지럽게 메운 명월 팽나무군락명월리 중동마을 옹포천 좌우로 길게 펼쳐진 팽나무군락은 64그루의 팽나무와 40여 그루의 푸조나무, 산유자나무, 보리밥나무 등..

1. 명월대명월 팽나무군락 한복판인 명월리 옹포천 벼랑에 명월대라 불리는 석대가 있다. 벼랑 위에 현무암으로 네모나게 바닥돌을 쌓고 그 위에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작은 8각형 모양의 2중 석대를 닦았다. 이것이 명월대의 전부이다.이곳은 명월리와 한림읍 지역 양반과 선비, 문인들이 모임을 하거나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옆에 건천 스타일의 옹포천이 흐르고 있으며, 주변으로 팽나무가 중심이 된 팽나무군락이 우거져 풍경을 크게 돕는다. 그리고 북쪽으로 반달형 돌다리를 닦아 명월대 접근을 돕는다. 명월대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며, 돌다리는 20세기 것이다. 2. 명월대와 옹포천 (옹포천을 둘러싼 벼랑과 어지럽게 우거진 명월 팽나무군락) 3. 명월대 옆 돌다리 (북쪽에서 바라본 모습)반달형 돌다리가 명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