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경복궁 동십자각경복궁의 오랜 정문인 광화문, 그 동쪽에 있는 경복궁교차로 북쪽 부분에 동십자각이 우뚝 자리해 있다. 지금은 도로 사이에 외롭게 자리해 있고 동십자각 윗도리로 올라가는 길 또한 막혀있어서 길 건너편에서 그림의 떡처럼 대해야 되는데, 그는 광화문 좌우 담장 끝에 세워진 망루로 간단하게 '궐'이라 부른다. 흔히 왕궁을 궁궐이라 부르는데, 이는 궁과 망루 궐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망루의 모습이 십자(十字)처럼 생겨서 십자각이란 이름을 지니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광화문 담장 동쪽 끝에는 동십자각, 서쪽 끝에는 서십자각이 자리해 경복궁을 지켰다. 허나 평면 모습은 '십자' 모습이 아닌 사각형이며, 허공에서 볼 때 용마루가 십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모습이다. 또한 망루와 맞닿은 궁장이 십..

1. 창덕궁 금호문금호문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북서쪽에 있는 1칸짜리 기와 궁문이다.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태종이 창덕궁을 조성했을 때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처음에는 이름이 없다가 1475년 예문관대제학 서거정이 금호문이란 이름을 붙이면서 비로소 이름을 달게 되었다.금호문이란 이름은 선비족 나라인 당나라 왕궁의 서쪽 궁문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며, 금(金)은 오행에서 서쪽을 뜻하고, 호(虎)는 호랑이로 서쪽을 의미하는 동물이다. 즉 이름 자체가 서쪽 문을 뜻하는데, 이는 돈화문 서쪽이자 창덕궁 서쪽 경계에 자리해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단 것이다. 조그만 궁문이라 승정원, 홍문관 등 궐내각사에서 일하는 관원들이 주로 이용했으며, 조선 후기에 각 문마다 출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정했는데..

1. 계동 여운형집터 표석창덕궁이 바라보이는 북촌1경 고개에 여운형집터를 알리는 매끄러운 피부의 표석이 누워있다. 정확히는 표석 남쪽에 있는 안동손칼국수집에 여운형집이 있었는데, 그의 기와집은 세상이 여러 번 엎어지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몽양 여운형(1886~1947)은 1919년 4월 의정원의원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선포했고, 이후 서울로 들어와 조선중앙일보사장을 지냈으며,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선수 사진에서 옥의티보다 더한 일장기를 지워버렸다.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했고, 그 시절 좌익과 우익과의 대립을 조정하고자 애를 썼으나 실패했으며, 1947년 혜화동에서 불의의 암살을 당했다. (여운형 선생 묘소는 강북구 우이동에 있음)

1. 정독도서관 본관 (구 경기고등학교)북촌한옥마을의 한복판인 화동에는 서울 사람들의 오랜 지식 쉼터인 정독도서관이 있다. 화동은 화개동(花開洞)의 줄임말로 조선 때 과일과 화초를 관장하고 궁궐에 조달하던 장원서(掌苑署)란 관청이 있었다.정독도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곳으로 1900년 10월 고종의 칙령으로 개교한 관립중학교에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이곳에는 갑신정변(1884년)을 일으켰다가 떨려난 김옥균과 서재필의 집이 있었으나 갑신정변 이후, 나라에서 싹 몰수했으며, 1900년 관립중학교 부지에 포함되면서 집은 사라졌다. 개교 때 지은 건물의 정면 삼각지붕 벽면에 태극기를 교차하여 그린 것으로 유명했으며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가 잠시..

1. 화동 서울교육박물관 정독도서관 남쪽에 자리한 서울교육박물관은 옛 경기고 건물을 활용한 붉은 벽돌의 건물이다. 호랑이가 곶감의 눈치를 보던 아득한 옛날부터 그리고 가깝게는 내 학창시절에 이르기까지(1980~90년대) 교육 관련 유물과 서적(내 학창시절 초등학교 교과서와 일기장, 학용품, 장난감, 중/고등학교 명찰 등) 1만 2천여 점과 디오라마와 교육 현장 등이 재현되어 있다.특히 특별전시장에는 우리네 학창시절 학교 앞 구멍가게와 문방구, 1990년대 이전 초등학교 교실 등이 재현되어 아련한 옛 추억으로 인도한다. 먼 시절도 아니고 바로 내 어린 시절이다. 또한 교복과 모자, 교련복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북촌에 무수하게 널린 박물관 대부분은 야박한 가격의 입장료를 받아 두 ..

1. 안국동 조선어학회터안국동 윤보선가 서쪽 골목에는 조선어학회터를 알리는 표석이 자리해 있다. 이곳은 조선어학회가 있던 곳으로 그 학회는 주시경(1876~1914) 선생이 1908년 국어 연구와 발전을 위해 창립한 국어연구학회의 맥을 이은 단체이다.왜정 말기인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활동이 강제로 중단되고 많은 자료들이 압수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해방 이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꿔 그 전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1. 동그랗게 누워있는 종친부터 우물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울관) 자리에는 조선 왕실 관청인 종친부가 있었다. 종친부는 제왕의 어보와 영정을 보관하고, 제왕 내외의 의복을 관리하며, 왕족들의 관혼상제와 봉작, 벼슬 등의 인사문제, 기타 그들과 관련된 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처음에는 제군부라 했으나 1433년에 종친부로 이름을 갈았으며, 1864년에는 종부시와 합쳐졌고. 1894년 종정부로 개편되었다. 1907년 순종의 칙령으로 황실과 국가의 주요 문서를 보관하던 규장각으로 쓰였으며, 왜정은 이곳에 있던 서적들을 경성제국대학(서울대)으로 모두 옮겼다. 그리고 천한전(天漢殿), 아재당(我在堂)등 종친부에 딸린 건물 상당수를 부셔버리고 종친부의 중심 건물인 경근당과 옥첩당, 이승당(貳丞堂)만 남겨 망국 황실을 ..

1. 경운동 서북학회터서북학회는 1908년에 평안도와 함경도, 황해도 사람들이 국권 회복운동을 위해 조직했던 애국계몽단체이다. 왜정의 탄압이 고약하게 심해지자 1909년 만주에 무관학교를 세워 군사를 길렀으며, 그로 인해 독립군의 무장 투쟁으로 노선이 크게 전환된다. 허나 1910년 왜정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으며, 서북학회가 있던 자리(서북학회 표석 서쪽)에는 이후 오성학교와 보성전문학교, 건국대의 전신인 정치대학이 잠시 거쳐갔다. 2. 서북학회 표석 옆에 닦여진 삼일대로 명소 안내도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의 왕년의 모습과 지금은 사라진 서북학회와 조선건국동맹, 왜정 시절 서울 3대 건축물의 일원이었던 천도교중앙대교당, 그리고 탑골공원이 표시되어 있다.

' 북촌 중앙고등학교, 창덕궁 후원 뒷길 겨울 나들이 ' ▲ 창덕궁 신선원전, 의효전 구역 ▲ 중앙고등학교 (본관 주변) ▲ 창덕궁 후원 돌담 겨울의 차디찬 한복판인 1월의 끝 무렵, 북촌(北村)에 자리한 중앙고등학교와 창덕궁 후원 뒷길을 찾았다. 북촌과 창덕궁 후원 뒷길은 내 즐겨찾기 명소로 매년 여러 번씩 발걸음을 하고 있다. 이미 지겹도록 복습을 한 곳이지만 자꾸만 손과 발이 가니 그들에게 단단히 중독된모양이다. 마침 며칠 전 겨울 제국(帝國)이 서울에 눈폭탄을 투하했는데 그들의 설경(..

1. 삼청동 옥호정터삼청공원입구 교차로 북쪽 길가에 옥호정터를 알리는 표석이 있다.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진 옥호정은 순조(재위 1830~1831)의 장인인 김조순(1765~1832)의 제택으로 이곳에 크게 둥지를 틀고 있었다.옥호정 왕년의 시절을 담은 '옥호정도'란 그림이 전하고 있으며, 그 집은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모조리 사라져 세월무상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지금은 집터에 세운 표석이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진 옥호정을 추억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서쪽인 북악산(백악산) 중턱에 김조순 집안에서 새긴 것으로 전하는 '일관석' 바위글씨가 있다. 허나 그곳은 금지된 곳이라 아쉽게도 확인은 어렵다.

1. 대한독립선언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에서 발행한 것으로 3.1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선포문, 임시헌장 10개 조,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서문, 6개 정강이 담겨져 있다. 2. 선학원 현판과 만해 한용운 동상 해강 김규진(1868~1933)이 1922년에 쓴 선학원 현판이 높이 걸려있다. 그는 옛 선학원 건물에 걸려 있던 것으로 그 앞에 선학원의 중심 인물인 만해 한용운의 동상이 의연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선학원 현판 왼쪽에 '중앙선원' 현판이 있고, 오른쪽에는 '선불장' 편액이 걸려있음) 3. 불청운동 7, 8호(왼쪽 아래)와 회광 제2호(왼쪽 위), 왜정 종로경찰서가 경성지방법원 검사에게 보 낸 신간회 동정 보고서(오른쪽 위) 4. 신간회 동정보고서(윗쪽)와 만해 한용운의 피체자 기록표(아래쪽..

1. 안국동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경허집과 만해 한용운 선생 약연보) 북촌의 한복판인 안국동 윤보선길에 재단법인 선학원의 중심지인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1층은 선학원의 역사과 관련 유물을 머금은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으로, 2층은 선학원 법당으로 쓰이고 있는데, 북촌이 나의 오랜 즐겨찾기 명소임에도 선학원은 이번에 비로소 첫 인연을 지었다. 그동안 선학원은 그저 현대 사찰로만 알고 있어서 큰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그곳에 지방문화 재로 지정된 늙은 신중탱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 그를 보고자 찾은 것이다. (신중탱은 2층 법당에 있음) 선학원은 고약했던 왜정 시절 친일성향의 사판계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민족불교 수호 및 독립운동 을 위해 부산 범어사의 경성포교당 포교사 남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