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신빈김씨묘역 홍살문화성시청 남쪽 산자락에는 세종의 후궁인 신빈김씨의 묘역이 있다. 남양 읍내와 화성시청에서 팔탄으로 넘어가는 시청로 동쪽 언덕에 자리해 있어 찾기는 무지 쉬운데, 묘역 앞에 붉은 피부의 홍살문이 있어 신빈김씨의 묘역을 알려준다. 신빈김씨는 청풍김씨 집안인 첨지중추원사 김원의 딸이다. 일찌감치 궁녀의 길을 걸어서 처음에 내자시에서 일했으며, 13살에 궁궐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세종의 눈에 흔쾌히 들어 후궁이 되었으며, 1427년 계양군을 생산했다. 이후 세종과의 사이에서 무려 6남 2녀를 두면서 세종의 후궁 중 가장 많은 자녀를 생산했다. 하지만 후궁 소생의 한계와 소헌왕후(세종의 왕후) 심씨 소생의 왕자들이 많아서 그의 아들과 딸은 그 시절 흔한 조선 왕족의 일원으로 평범하게 살았다..

1. 충무공 조영무 신도비광주 퇴촌면의 중심지인 광동리에서 남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첩첩한 산골에 조영무장군묘가 있다. 원래는 그곳 대신 다른 곳으로 갈 생각으로 퇴촌면에 들어섰으나 버스 시간 문제로 부득이 퇴촌면 중심지에서 가까운 조영무묘를 꿩 대신 닭으로 찾게 되었다. 내가 갔을 때는 마침 퇴촌면 중심지에서 퇴촌 토마토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이 22회로 매년 6월에 사흘 정도 일정으로 열리는데, 퇴촌 지역이 토마토로 제법 유명하다고 한다. 허나 축제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 어린이들, 토마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에 주로 맞춰져 있어서 혼자 찾은 나에게는 딱히 흥미거리는 없었다. 하여 간단히 둘러보고 조영무묘로 향했다. 조영무(?~1414)는 사극 '용의눈물'과 '태종이방원'에서 주요 인물로 등..

1. 남양주 차산리 이순지선생묘화도읍 창현리와 차산리 사이 언덕 숲에는 조선 초기 문신이자 천문학자인 이순지(?~1476)선생의 묘역이 있다. 이순지는 양성이씨 집안으로 세종의 명으로 역법을 연구하여 정인지, 정초, 정흠비, 김담 등과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을 저술해 조선의 역법을 정비시킨 1등 공신이다. 또한 이천, 장영실과 천문의상(天文儀象)들을 교정, 제작하기도 했다. 이순지 묘는 부인 영월신씨와 같이 묻힌 합장분으로 보통 남자 묘를 왼쪽(서쪽)에 두지만 이곳은 부인의 묘가 왼쪽, 이순지가 오른쪽(동쪽)에 안치되어 있다. 묘역 석물은 묘표(묘비)와 상석, 그리고 화표(華表)라 불리는 비석 같은 돌덩어리가 전부로 묘표는 2기가 세워져 있으며, 하엽수(연잎 형태의 비석 머리) 형태이다. 그리고 ..

1. 망우역사문화공원 계용묵묘 소설가 계용묵(1904~1961)은 1904년 평북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부친 계항교와 모친 죽산박씨 슬하 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1918년 향리의 삼봉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순흥안씨 안정옥과 결혼했다. 1919년 졸업 후 서당에서 공부했으며, 보통학교 시절인 1920년 소년 잡지 '새소리'의 문예 공모에 시 '글방이 깨어져'로 응모해 2등으로 입선한 것을 기회로 문학에 진출했다. 조부 몰래 상경해 중동학교 와 휘문고보를 잠깐 다녔으나, 그때마다 신문학을 반대하는 조부에 의해 귀향해야만 했다. 서울에서는 김억과 같은 하숙집에서 숙식했다. 이때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우하며 문학에 더 욱 뜻을 두었는데, 4년 동안 고향에서 홀로 외국문학서적을 탐독하다가 1928년..

1. 김종서 장군묘 이곳에는 1453년 계유정난 때 처단된 김종서(1383~1453)의 한쪽 다리가 묻혀있다고 전한다. 이곳 에 묘를 쓴 것은 여기가 김종서 집안의 세장지지였기 때문인데, 무덤 옆에 그의 조부인 김태영, 부친 인 김추(김수)의 무덤이 있다. 김종서의 순천김씨 집안이 공주에 세거하게 된 것은 김태영 시절부터이다. (현재 이곳은 세종시 장군 면 땅이지만 예전에는 공주시 장기면이었음) 원래 거주지인 순천과 서울의 거리가 멀어서 중간보다 조금 윗쪽에 자리한 공주에 집과 농장을 마련했는데, 김태영과 김추는 이곳에 유택까지 마련해 사후 안식처로 삼았다. 김종서 묘는 근래 손질된 것으로 커다란 봉분과 묘비 3기(1748년, 1963년, 근래 지어진 비석), 상석, 문인석, 망주석 등을 지니고 있으며,..

1. 김종서 장군묘 관리사(왼쪽)와 충익사(오른쪽) 장군면 대교리 국사봉 산골에는 조선 초기 재상이자 장군으로 유명한 김종서 장군묘가 숨겨져 있다. 순천김씨 집안인 김종서(1383~1453)는 여기서 가까운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서 출생한 것으로 전 해지는데, 그는 무예가 뛰어나고 학식이 풍부했던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세종 때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편찬해 조선 조정의 고려사 왜곡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길림성과 연 해주 지역에서 소란을 피우던 여진족과 북쪽 세력을 평정하고 두만강에 6진을 닦았다. 흔히 이때 조 선의 북쪽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확장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정보이며, 조선은 개국 시절부터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요동, 길림, 연해주의 많은 지역을 점유해 4천리 영토를..

1. 오재영 묘소 (망우독립유공자 묘역, 오재영 묘소) 오재영(1897~1948)은 부산 출신이다. 1919년 비밀결사 혈성단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임시정부 기 관지인 독립신문과 경고문 배포, 본토와 상해임시정부와의 연락 등을 담당했다. 1920년 9월 14일 의열단 단원인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을 던져 중상을 입혔는데, 오재영은 박재혁이 상해에서 가져온 폭탄 1개를 맡아두는 등 그의 거사를 도왔다. 이 사건으로 왜경에게 체포되 어 1921년 8월 3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만주일보 경남지사, 조선일보 부산지국을 운영하는 한편 신간회에서도 활동했다. 해방 이후 박재혁 추모사업을 추진하다가 1948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1. 대향 이중섭 묘 용마약수(용마천) 북쪽에는 '소'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의 무덤이 있다. 이중섭(1916~1956) 은 평남 평원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평양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왜열도 동경으로 넘어가 문화 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와 교재하여 1945년 원산에서 혼 인했다. 두 아들을 두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6.25 때 월남하여 부산과 제주도에서 피난 생활을 했으며, 먹 고 살기 힘든 상황이라 훗날을 기약하며 부인과 아들을 왜열도로 떠나보냈다.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1955년 개인전을 개최하여 화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경제적으로는 실패했 으며, 이후 술로 나날을 보내다가 1956년 병원에서 사망하니 그의 나이 겨우 40세였다. 묘비는..

1. 망우역사문화공원 소파 방정환 묘소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 - 방정환 묘소) 소파 방정환(1899~1931)은 아동문학가이자 애국지사로 어린이날과 '어린이'란 용어를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서울 당주동 출생으로 어린이에게 나라의 미래가 있다며 어린이 운동에 온 생애를 바쳤는 데, 죽음 직전에 '어린이들을 잘 부탁한다','여보게 밖에 검정말이 끄는 검정 마차가 와서 검정옷을 입은 마부가 기다 리니 어서 가방을 내다주게'란 말을 남기며 32세의 짧은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 그의 유골은 홍제동 화장터에 있었으나 1936년 후배 최신복 등이 나선 모금 운동으로 망우리묘지에 유택을 마련해 안장되었다. 무덤은 흙으로 다진 봉분 대신 쑥돌을 표석처럼 세웠는데, 비석 글씨는 위창 오세창 선생이 썼다. 오세창은 손..

1. 망우리 사잇길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잇길) 망우리 사잇길은 사색의길 서쪽 구간 북쪽 시작점에서 망우산 능선길과 망우산 정상으로 빠르게 인 도하는 산길이다. 경사가 조금 있지만 거리는 그리 길지 않으며, 10여 분 정도 오르면 사색의길 동쪽 구간에서 올라온 능선길과 만난다. 2. 무성한 숲을 지나는 망우리 사잇길 사색의길 서쪽 구간과 동쪽 구간 사이를 지나서 '망우리 사잇길'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이 구간에 는 능선길 전까지 무덤은 거의 없으며, 한낮에도 거의 어두울 정도로 숲이 삼삼하다. 3. 조금 급한 경사를 보이는 망우리 사잇길 (망우산 능선길 직전) 4. 망우산 능선길과 만나다. (망우리 사잇길과 망우산 능선길이 만나는 곳) 5. 망우산 능선길에서 사색의길 동쪽 구간으로 내려가는 길 망우산..

1. 무덤 사이를 지나는 중랑둘레길 (망우역사문화공원) 삼형제바위(형제바위)에서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길로 인도하는 오솔길로 무덤 사이사이를 지난 다. 무덤과 푸른 숲, 수풀들이 어우러진 상큼한 공간으로 방을 뺀 무덤터도 적지 않은데, 오솔길은 봉 분 앞을 지나기도 하고, 봉분 뒷쪽을 지나기도 하며, 봉분 옆구리도 지나는 등, 무덤 사이사이를 이리 저리 비집고 흘러간다. 2. 숲그늘에 묻힌 무덤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망우리묘지(망우리공동묘지)의 현재 이름이다. 즉 이름을 세탁했다. 그렇다고 이곳의 공동묘지 성격이 녹슨 것은 전혀 아니며, 많은 무덤들이 방을 빼긴 했으나 아직까지 7,400여 기의 무덤들이 머물고 있다. 이곳이 다른 공동묘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덤 사이로 수풀과 숲을 조성해 공원처럼 달달하..

1. 망우산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 망우산 북쪽 능선에 자리한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는 이름 그대로 한강과 구리 지역 조망에 최적화 된 전망대이다. 여기서는 동쪽과 동남쪽, 남쪽이 흔쾌히 시야에 들어오는데,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비 롯하여 용마산, 아차산, 강동구, 송파구, 구리시, 남양주시(도농, 와부, 운길산 등), 하남시, 검단산, 남 한산, 성남시 등이 바라보여 조망도 그런데로 괜찮다. 2.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구리시 남부 지역과 한강, 강동구, 하남시, 남양주시 와부읍, 운길산~예봉산, 검단산 등 3.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구리 아천동 지역과 아차산, 강동구, 하남시, 검단산, 남한산(남한산성) 등 4. 나무데크로 닦여진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 5. 구리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