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웅전 맞은 편에 자리한 커다란 돌덩어리들봉화대처럼 높이 닦여진 2기의 돌탑 위에 머리장식을 갖춘 하얀 피부의 3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3층석탑 밑에는 하얀 피부의 아주 조그만 불상과 보살상들이 가득 자리해 있으며, 돌탑 앞에는 마애약사삼존상이 깃든 바위가 있다. 그리고 돌탑 옆에는 일붕 서경보가 세운 대방광불화엄경 평화통일기원대비가 묵직하게 자리해 있다. 2. 백천감로수 석조백천감로수라 불리는 석조에는 와룡산이 베푼 수분이 가득 담겨져 있다. 석조 주변에는 파란 바가지들이 엎어진 상태로 꾸벅꾸벅 졸고들 있다. 3. 용왕각대웅전 앞에 자리한 용왕각은 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용왕의 공간이다. 용왕은 바다와 강, 약수물 등 천하의 모든 수분을 관장한다. 4. 용왕각 용왕탱차분하게 그려진 탱화 한복판에..

1. 남쪽에서 바라본 산령각과 만덕전 일대만덕전 지붕 너머로 백천사의 주요 명물인 금동 피부의 아미타입불이 높이 자리해 경내를 굽어본다. 2. 오방불전 바깥 복도오방불은 가운데와 동/서/남/북에 자리한 부처를 뜻한다. 오방불전은 그런 오방불을 중심으로 조그만 금동 피부의 원불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데, 조그만 원불의 갯수는 아마도 이곳이 천하 최대일 것이다. 3. 오방불전 바깥 복도건물 안에는 조그만 금동원불이 가득 들어있고, 바깥에는 금동 피부의 범종과 두꺼비상 등이 가득 자리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4. 오방불전의 주인장, 오방불과 조그만 금동 원불의 금색 물결 5. 오방불전에서 바라본 백천사 납골탑과 백운마을(절 밑에 있는 마을), 백천저수지백천사는 경내 밑부분에 납골탑 공간을 크게 만들어 절..

1. 백천사 약사와불백천사 약사와불전 안에는 장대한 규모의 약사와불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하는 와불로 머리부터 발까지 금동 피부를 지녔는데, 특이한 것은 와불 몸속에 석가여래를 봉안한 예불공간이 들어있어 이를 몸속법당이라고 부른다. 하여 와불의 뱃속까지 흔쾌히 구경할 수 있다.이곳 와불은 2000년대에 마련된 것으로 한때는 이 땅에서 가장 큰 와불로 꼽혔으며, 지금은 백천사의 주요 명물이자 든든한 후광으로 인기가 대단하다. 2. 약사와불 뱃속에 들어가다(약사와불 몸속법당)약사와불 발바닥에 뱃속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이 땅에 와불을 지닌 절은 여럿 있지만 이렇게 와불 뱃속에 예불 공간을 둔 경우는 이곳이 거의 유일해 무지하게 눈길을 끈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몸속 통로에..

1. 호암산 2. 약수사 대웅전 3. 서울둘레길12코스 (삼성산성지 주변) 4. 약수사 앞 유채꽃밭 5. 밑에서 바라본 약수사 경내 6. 약수사 7층석탑 7. 약수사 중심부로 인도하는 돌계단길 8. 약수사 극락전 9. 약수사 극락전 내부 10. 약수사 의향각 11. 약수사 대웅전 12. 대웅전 석가여래삼존상과 석가모니후불도 13. 약수사 지장시왕도 14. 경내 뒤쪽 벼랑과 조그만 폭포 15. 약수사 산신각 16. 삼성각에서 바라본 작은 천하 (신림동과 관악구 지역) 17. 약수사에서 섭취한 부처님오신날 공양밥의 위엄 18. 호암산으로 인도하는 약수사 서쪽 담장길 19. 약수사 서쪽 숲길 (관악구 제2구민운동장 방향) 20. 관악구 제2구민운동장 옆 계곡(약수사계곡)과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1. 덕곡저수지백천사입구인 덕곡리에서 사천 백천사를 가려면 백천길을 따라 40여 분 걸어가야 된다. 절 밑까지 사천시내버스 145번이 운행하고 있으나 배차간격이 무지하게 좋지 못하여 택시를 타거나 사천읍내~삼천포를 오가는 사천시내버스와 진주~삼천포 완행버스를 타고 덕곡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것이 100배 낫다. 덕곡리에서 백천사까지는 오르막길의 연속으로 와룡산의 물을 먹고 자란 덕곡저수지와 백천저수지를 지나가야 되는데, 백천저수지에서 내려온 백천은 덕곡저수지에서 강제 정모를 하다가 덕곡리를 통해 바다로 흘러간다. 저수지는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위해 접근이 통제되어 있어 그림의 호수처럼 바라봐야 된다. 2. 덕곡저수지 옆구리를 지나는 백천길 (백천사 방향)백천길은 도보길이 따로 닦여져 있지 않다. 하여 수..

1. 만덕전 꼭대기에 있는 아미타입불의 위엄장대한 키의 아미타입불이 그의 본거지인 서쪽(서방정토)을 바라보고 있다. 불상 밑에는 아미타금동탑이 들어있는 공간이 있으며, 만덕전 꼭대기 부분이라 계단을 좀 올라가야 된다. 2. 아미타입불 밑 공간에 있는 아미타금동탑 3. 산령각(산신각)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 식구들의 공간이다. 4. 산신할머니복돌 주변합장인을 선보이고 있는 문수동자상과 보현동자상 사이로 산신할머니 복돌이라 불리는 조그만 돌덩어리가 있다. 그는 소원을 들어주는 돌로 명성이 자자한 돌덩어리로 이와 비슷한 것이 인천 영종도 용궁사, 울산 어물동마애여래좌상 등에도 있는데, 대략 돌을 오른쪽으로 천천히 3번을 쓰다듬고 합장하는 마음으로 3번을 들어보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복돌의 기가 ..

1. 미황사와 달마산 2. 달마산 도솔암 3. 달마산 도솔봉 능선 4. 미황사 천왕문 5. 미황사에서 달마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산길 6. 미황사 선다원 7. 미황사 자하루 8. 자하루 옆에 자리한 달마대사상 9. 미황사 샘터(석조) 10. 미황사 종무소 11. 미황사 대웅전 12. 미황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13. 천장까지 알뜰하게 꾸며진 대웅전 우물천장 14. 대웅전 대들보에 그려진 천불 15. 대웅전 신중탱 16. 미황사 명부전 17.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18. 명부전 시왕상과 판관, 녹사, 금강역사상 19. 미황사 응진당 20. 응진당 목조석가여래3존상과 나한상 21. 응진당 식구들 (16나한상과 인왕상, 사자상, 동자상 등) 22. 미황사 삼성각 23. 미황사 경내에서 바라본 달마산..

1. 문수사 응진전 석가여래삼존상과 나한상들응진전은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500나한의 공간이다. 불단에는 금동 피부를 지닌 석가여래상이 화려한 보관을 눌러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대동하여 석가여래삼존상을 이루고 있는데, 그 앞과 좌우로 조그만 나한상들 500기가 자리해 오백나한을 이룬다. 이들 오백나한은 원래 문수굴에 있었으나 응진전을 별도로 마련하면서 이곳으로 모두 옮겼으며, 응진전 식구들의 모습이 마치 학교 원장(석가여래)과 부원장(문수보살, 보현보살), 학생들(나한상)처럼 보인다. 2. 응진전 내부 (석가여래삼존상과 오백나한상) 3. 문수사 문수굴문수사 경내에서 가장 눈여겨 볼 곳은 바로 문수굴이다. 12세기에 탄연이 이 굴에 반해 절을 지었을만큼 문수사의 소중한 꿀단지로 거대한 바위 밑도리..

1. 북한산 문수사 (문수사 문수굴)북한산성 대남문을 나와서 서남쪽 길로 3~4분 정도 내려가면 해발 640m 고지에 둥지를 문수사가 모습을 드러낸다.문수사는 문수봉 밑에 자리한 산사로 서울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절이다. 북한산(삼각산)에 안긴 절 가운데 가장 조망과 경관이 일품으로 경내에 있는 문수굴은 예로부터 영험 있는 기도처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 절은 1109년에 탄연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기암괴석과 경관, 그리고 자연산 동굴(현재 문수굴)에 퐁당 반해 절을 세우고, 문수암이라 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는 실정이다. 다만 13세기에 이장용이 이곳을 찾아와 시를 지었다고 하니 적어도 12~13세기에 법등을 켰던 모양이다. 1451년 문종의 딸인 연..

1. 북한산 영취사 (영취사5층석탑)북한산(삼각산) 기점의 일원인 정릉동 정릉탐방지원센터에서 정릉계곡을 따라 30~40분 정도 올라가면 절간답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적막하고 고즈넉한 모습의 영취사가 마중을 나온다. 해발 400m 고지에 둥지를 튼 영취사는 북한산(삼각산) 품에 무수히 깃든 절의 하나로 정릉계곡에서 북한산성 대성문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어서 이 구간을 이용할 경우 무조건 거쳐가야 된다. (등산로가 절 경내를 지나감) 영취사는 1962년에 신정옥이 세운 것으로 그렇게 오래된 절은 아니다. 그는 1928년 7월 14일 충남 예산군 신례원에서 독립운동가 신현상의 딸로 태어났는데, 불명(佛名)은 대지행(大智行), 호는 초일(草一)로 백범 김구 선생의 수양녀이기도 했으며, 1947넌 공..

1. 바위에 희미하게 깃든 환희담 바위글씨상이암 경내에는 환희암 바위글씨가 깃든 바위가 있다. 삼청동비와 더불어 상이암의 큰 명물인 그는 인근 계곡에서 가져온 것으로 고려 태조 왕건이 스승인 도선대사의 권유로 성수산을 찾아 100일 기도를 했는데, 기도가 끝나고 부근 계곡에 들어가 몸을 씻었더니 하늘로부터 새로운 나라를 세울 제왕이 될거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하여 왕건은 무지하게 기뻐서 계곡 바위에 환희담 3자를 새겼다고 전한다.허나 태조 왕건은 이곳 성수산까지 찾아와 기도를 할 정도로 한가롭지 않았으며, 환희담 바위글씨 또한 그의 작품은 아니다. 태조 왕건 이야기는 상이암에서 절의 내력을 미화하고자 지어낸 것이며, 환희담 바위글씨는 조선 때 이곳에 들린 선비나 관리가 방문 기념으로 새긴 것으로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