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선바위관광지 석문교 반변천 위에 걸린 석문교는 선바위관광지와 남이정, 무이산을 잇는 다리이다. 다리를 건너 벼랑 아랫 길을 통해 남이정과 연당교를 거쳐 선바위로 접근하려고 했으나 가는 날이 문 닫는 날이라고 남이정 으로 가는 길이 산사태 위험으로 접근이 통제되어 있었다. 2. 거대한 벼랑 석벽을 지닌 무이산 남쪽 끝자락 선바위와 남이포 북쪽으로 저 벼랑 밑도리에 남이정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 길 외에 무이산 남쪽 능 선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으나 날씨도 무지 덥고 더위를 잘 타는 저질 체력이라 산을 오를 엄두가 나 지 않는다. 3. 석문교 반변천에 걸린 석문교는 길이 176m, 폭 4m의 다리로 2004년 8월에 짓기 시작해 2005년 8월에 완성 을 보았다. 다리 주변으로 음악분수대가 닦여져 있으..

1. 영양 선바위 영양의 대표 젖줄인 반변천이 굽이쳐 흐르는 입암면 신구리에는 영양 제일의 경승지로 추앙을 받는 선바위와 남이포가 있다. 이곳은 반변천과 동천(청계천)이 만나는 곳으로 동천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바위 벼랑을 지닌 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데, 동천 남쪽에 자리한 큰 벼랑의 뫼가 부용봉으로 그 북쪽 강변에 선바위가 촛대처럼 높이 솟아 이곳의 경관을 크게 돋군다. 선바위는 신선바위, 선바우, 입암, 선바위 남신상 등의 별칭을 지니고 있는데, 선바위 주변 강변을 남이포라 부르며, 선바위와 남이포를 늘 한 덩어리로 취급한다. 이런 경승지에는 옛 사람들이 붙인 전설이 꼭 있기 마련으로 남이장군을 흠모하던 사람들이 붙인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한토막 깃들여 져 있으니 내용은 이렇다. 선바위 부근 운룡..

1. 영양 약산당 신구동3층석탑 옆에는 약산당이란 오래된 기와집이 있다. 이곳은 장례원 판결사를 지낸 조광의(1543 ~1608)가 학문을 닦던 곳으로 현재 집은 그의 후손들이 인조 시절에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팔작지붕 집으로 지산서당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는데, 집 주위로 담장을 빙 둘렀으며, 남쪽에 기와문을 내어 집과 바깥 세상을 이어준다. 내부 구조가 섬세해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비록 기와문은 굳게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사진 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 바깥에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2. 담장 밖에서 까치발로 바라본 약산당(지산서당) 3. 약산당의 수수한 뒷모습 4. 신구리에서 선바위관광지로 이어지는 시골길(외씨버선길4코..

1. 영양 신구동3층석탑 (신구리3층석탑) 영양군 입암면의 중심지인 신구리 북쪽 신구2리 마을에 늙은 3층석탑이 있다. 그는 2중 기단과 3층 탑신, 머리장식을 지닌 신라 후기 석탑으로 탑신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으며, 지붕 돌 층단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다. 탑 머리에는 노반과 복발 등의 머리장식이 있으며, 3층 탑신은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지고 없는 것을 1999년에 석탑을 해체 복원하면서 새로 채워넣었다. 1층 탑신 상부에는 직사각형 사리공이 있으나 사리장치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탑 뒷쪽에는 조그만 늙은 석불이 있어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훨씬 이전부터 이곳에 탑과 석불을 보듬던 절이 있던 것 으로 여겨진다. 허나 장대한 세월이 워낙 급하게 잡아가서 절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

1. 6.25시절 군부대 노무자들이 짊어졌던 탄약 상자 6,25 시절 국군은 전투가 벌어진 인근 마을에서 노무자를 모집했다. 보통 1개 대대에 50~60명의 노무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군보급품 수송을 주로 담당했다. 적들의 맹렬한 포화 속에서 국군이 지키고 있는 전방 기지와 고지로 탄약과 여러 보급품을 운반했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2. 애국 청춘이여 영원하라 6.25 시절 총을 들고 참전한 어린 학생들도 많았는데, 그들을 학도의용군(학도병)이라 불렀다. 강 제 징집된 경우도 많았지만 자발적인 참여도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들은 계급과 군번도 없이 각 부대에 편입되어 전투 및 지원 업무를 맡았고, 여학생들도 소수나마 참전했다. 학도병들은 기본적인 소총 사격술과 수류탄 투척 요..

1. 6.25시절에 쓰인 빛바랜 소총들 2. 6.25전쟁 칠곡의 55일 전쟁사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 전역에서 일제히 총반격을 개시했다. 9월 23 일 북한 괴수인 김일성이 북한군에게 총퇴각 명령을 내리면서 전세는 역전되었고, 인천에 상륙하 여 서울 탈환 작전을 벌이고 있는 아군과 신속히 연결하고자 9월 24일 낙동강을 건너 맹렬히 북진 했다. 3. 금무봉 전투와 미군의 희생 (1950,8,9~8,10일) 8월9일 낙동강을 건넌 북한군 제3사단은 칠곡의 금무봉을 점령했다. 그것들이 미국 제1기병사단 의 퇴로를 차단하고 남진할 경우 임시수도였던 대구가 함락 위기에 놓일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 이었다. 하여 금무봉을 탈환하고자 미국 제7기병연대가 공격을 가했으나 실패했다. 8월1..

1. 호국전시관에 있는 총쏘기 체험 코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체험 코너로 총을 들고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총쏘기 게임이 시작된 다. (비비탄 같은 것을 쓰는 총은 아님) 나도 총을 들고 게임에 임했는데 망막이 침침하고 운동신 경도 거의 꽝 수준이라 성적이 영 좋지 못했다. 2. 1968년 왜관교 건설 당시 사진(왼쪽)과 6.25시절 파괴되어 주저앉은 왜관교(오른쪽) 3. 6.25시절 수운교 경덕문 앞에서 단체 촬영에 임하고 있는 어린이들 대전 유성구 자운동에 있는 수운교본부 경덕문 앞에서 담은 사진이다. (사진에 담긴 어린이들은 현 재 70~80대 노인들 ㅠ) 4. 6.25시절 대구역 주변 풍경 5. 미군 전투기에서 사진 촬영에 임하는 노인들 갓을 쓴 하얀 도포 복장의 노인들과 하얀 전투기의 환상..

1. 칠곡호국평화기념관 낙동폭포 낙동폭포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앞에 닦여진 주름진 인공폭포이다. 인공폭포라는 한계상 하루종 일 폭포수를 흘리지 않고, 보통 12시부터 19시까지만 흘리는데, 4~6월과 9~10월은 휴일과 공휴일 에만 폭포를 움직이며, 7~8월은 평일까지 폭포를 굴린다. 다만 11~3월과 비가 오는 날에는 폭포를 굴리지 않는다. (4~8월은 50분 굴리고 10분 쉬며, 9~10월은 30분 굴리고 30분 쉼) 2.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안내도 낙동강을 끼고 있는 칠곡군 왜관은 6.25시절 치열한 격전지의 하나로 꼽힌다. 1950년 6월 25일 북 한 잡것들의 무단 침략으로 시작된 6.25전쟁(한국전쟁)은 거의 일방적으로 털리면서 순식간에 포 항 북쪽, 낙동강 중류, 창녕까지 밀렸다. 즉 포항과 영..
' 늦여름 산사 나들이, 문경 운달산 김룡사 ' ▲ 문경 김룡사 여름 제국이 서서히 내리막을 보이던 8월의 끝 무렵. 문경(聞慶)에 있는 운달산 김룡사를 찾았다. 아침이 열리기가 무섭게 도봉동 집을 나서 동서울터미널에서 점촌, 상주행 직행버스에 몸 을 실었다. 허나 아침부터 차가 오지게 막혀 무려 1시간이나 늦게 점촌(店村)에 도착했다. 그래서 김룡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간만에 차이로 놓쳤고, 다음 버스는 무려 2시간 이후에 나 있다. 하여 다른 곳을 급히 물색했으나 딱히 땡기는 대체 장소도 없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기 에도 시간이 애매하여 그냥 계획대로 다음 버스를 타고 김룡사로 들어가기로 했다. 졸지에 2시간 가까운 잉여 시간이 생겨버려 무엇을 할까 궁리했으나 답은 역시 하나 밖에 없었다. 그리 넓지..
' 경주 괘릉(원성왕릉) ' 여름이 한참 제국의 기틀을 다지던 6월의 한복판에 서라벌의 옛 도읍, 경주(慶州)를 찾았 다. 경주는 그 유명한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부터 이름 없는 문화유적까지 무려 160곳 이상 을 답사했다. 하지만 그렇게 다녔음에도 아직도 미답지(未踏地)가 상당하여 내 마음을 여 전히 두근거리게 하면서도 두렵게 한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적당한 곳을 물색하다가 울산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괘릉 을 찾기로 했는데, 그곳은 이미 10여 년 전에 인연을 지은 곳으로 괘릉과 그 인근에 자리 한 미답지 절터 2곳도 한 덩어리로 같이 둘러보기로 했다. ♠ 신라 왕릉의 백미, 경주 원성왕릉 - 사적 26호 ▲ 도로에서 본 괘릉 능역 괘릉 서쪽에는 주차장이 있고, 그 옆에 문화유산해설사가 ..
' 봉화 닭실마을 나들이 ' ▲ 닭실마을 청암정 ♠ 숨겨진 길을 타고 닭실마을로 넘어가다 ~~ ▲ 석천계곡(石泉溪谷) 상류 (닭실 방향) 여름 제국(帝國)이 그의 주특기인 장마와 무더위를 적절히 돌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7월의 한 복판에 경북 영주(榮州)와 봉화(奉化) 지역을 찾았다. 영주시내의 여러 늙은 명소들을 둘러보고 봉화로 넘어와 오전약수터와 석천계곡, 석천정사(石 泉精舍)를 둘러보았다. 석천정사(석천정)는 충재 권벌(權橃)의 유적으로 그가 일군 닭실마을, 청암정과 거의 한 덩어 리 같은 존재인데, 서로의 거리도 직선으로 400m 내외로 가까우나 이상한 것은 석천계곡과 석 천정사 어디에도 닭실마을로 인도하는 길과 이정표가 없는 것이다. (내가 갔을 때는 그랬음) 분명 계곡은 닭실에서 흘러오고 있고 ..
예천 용문사 ' 겨울맞이 산사 나들이 ~ 예천 용문사 ' ▲ 용문사의 자랑, 윤장대 용문사에 다시 오니 산이 깊어 세속의 소란함이 끊어졌네 상방(上方)에는 중의 평상이 고요하고 옛 벽에는 부처의 등불이 환하다. 한 줄기 샘물 소리는 가늘고 일천 봉우리 달빛이 나뉜다 고요히 깊은 반성에 잠겨지니 다시 이미 나의 가졌던 것까지 잃어버린다. 조선 초기 학자인 서거정(徐居正)이 용문사에서 지은 시 ♠ 용문사(龍門寺) 입문 ▲ 회전문을 지키는 사천왕(四天王) 지국천왕(持國天王)과 증장천왕(增長天王) ▲ 회전문을 지키는 사천왕 광목천왕(廣目天王)과 다문천왕(多聞天王) 늦가을이 아쉬움 속에 저물고 겨울이 제국의 기틀을 닦던 연말의 어느 평화로운 날, 일행들과 경북 예천(醴泉)을 찾았다. 예천의 여러 명소를 둘러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