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암산성 남문터 안쪽 석구상과 제2한우물터에서 석수역으로 이어지는 호암산 서남쪽 능선을 10분 정도 가면 호암산성 남 문터가 마중을 한다. 호암산성의 남쪽 끝을 잡고 있는 이곳에는 성벽을 이루던 성돌과 석축 등이 적 지 않게 남아있는데, 이곳이 호암산성과 남문터로 밝혀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서남쪽 능선길이 남문터를 그대로 지나가 많은 산꾼들이 무심히 지나다녔고, 나도 여기를 여러 번 오갔음에도 호암산 성터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산성터 보존을 위해 남문터로 지나가던 산길에 금줄을 둘러 통제하고 서쪽에 나무데크 계단길을 내 었다. 계단길 또한 산성터를 지나가기 때문에 산성터에 속인들의 발이 닿지 않도록 나무데크를 깔았 다. 하여 여기서는 서쪽 나무데크 계단길이나 남문터 동쪽 산길을 이용하면 ..
1. 호암산 제2한우물터 (제2우물터) 호암산 서남쪽 봉우리 산정에는 제2한우물이라 불리는 우물 유적이 있다. 서쪽 밑에 있는 한우물과 함 께 호암산에 전하고 있는 2개의 우물 유적으로 밑에 있는 한우물을 제1한우물, 산정에 있는 이곳은 제 2한우물(또는 제2우물터)이라 부른다. 이곳은 길이 18.5m, 너비는 10m 이상, 추정 깊이 2m 정도에 직사각형 우물로 길이 50cm, 너비 35 cm, 높이 25cm 정도의 화강암을 '臣'자 모양으로 10단(높이 1.75m)으로 쌓았는데, 2번에 걸쳐 15cm 정도 물려 쌓은 형태가 확인되었다. 바닥 조성이나 석축 쌓기 방식, 석재의 크기와 모양 등이 한우물(제1한우물)과 비슷한데, 여기서는 '잉 벌내역지내말' 글씨가 깃든 늙은 청동제 숟가락이 나왔다. 고구려..
1. 호암산 석구상 호암산성 북문터의 바로 남쪽 높은 곳에는 호암산의 오랜 명물인 석구상이 있다. 북쪽을 바라보며 귀엽게 앉아있는 그는 돌로 만든 개의 석상인 석구상으로 불리고 있지만 예전에는 광화문 해태상과 마주 보게 하여 관악산의 화기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해태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허나 한우물을 발굴조사하면서 '석구지'라 쓰인 장대석이 나왔고, 시흥읍지 형승조에는 '호암산 남쪽 에 석견 4두를 묻어 개와 가깝게 하고자 하였으며 지금 현남7리에 사견우(개의 형상 4개)가 있다'란 기록이 있어 해태상이 아닌 석구상으로 무게가 완전히 쏠린 상태이다. 석구상의 크기는 길이 1.7m, 폭 0.9m, 높이 1m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 부분이 사실적으 로 표현되어 있어 꽤 귀여운 모습이다. 그의 탄생 ..
1. 호암산성 북문터 한우물에서 북쪽(호암산 정상)으로 2분 남짓 가면 금줄이 둘러진 호암산성 북문터가 마중을 한다. 이곳은 석구상 바로 밑으로 호암산 서남쪽 능선길의 주요 길목인데, 여기가 북문터로 밝혀지기 이 전(2019년 이전)에는 나그네와 산꾼들이 무심히 밟고 지나갔었다. 허나 북문터로 뒤늦게 밝혀지면 서 산길로 살던 북문터 주변에 금줄을 둘러 통행을 통제하고 그 서쪽에 나무데크 우회 계단길을 내 었다. 호암산은 내 즐겨찾기 뫼의 하나로 1년에 여러 번씩 찾는 곳인데, 이곳도 200번 넘게 오갔음에도 여 기가 호암산성 성문터의 흔적임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분명 성터의 흔적들과 인공이 가해진 듯 한 돌의 무리들이 주변에 널려 있어 신호를 진하게 보냈음에도 말이다. 그런 것을 보면 내 내공이 ..
1. 호암산 한우물 호암산(393m)의 서남쪽 봉우리 정상부 서쪽 밑에 한우물이란 큰 우물 유적이 있다. 그는 석구상과 함께 호암산의 오랜 명물로 한우물이란 이름은 큰 우물을 뜻한다. 하여 천정, 용복, 용초 등 하늘과 용에 관련된 별칭을 지니고 있어 오랜 세월 속세에서 꽤 애지중지되었음을 알려준다. 이곳은 산 정상부 옆이라 마땅한 수원이 없음에도 물은 늘 넉넉하게 나오는데, 특히 가뭄 때도 물이 가득해 신비로움을 준다. 이 우물은 신라가 호암산성을 닦았다는 7~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우물 자리 밑에서 7~8세기 우물(못) 흔적이 나왔는데, 못의 규모는 동서 약 17.8m, 남북 약 13.6m, 깊이 약 2.5m였 다. 이후 조선 때 서쪽으로 약간 자리를 옮겨 동서 22m, 남북 12m,..
1. 칼바위 주변에서 바라본 호암산의 푸른 산줄기와 서울 시내 푸르른 초가을 하늘(이때가 9월 말이었음) 아래로 호암산 정상부와 북쪽 자락, 목골산, 관악구, 동작 구, 영등포구, 용산구, 마포구, 서울 도심부, 남산, 서대문구, 은평구, 그리고 저 멀리 북한산(삼각산) 과 수락산, 불암산, 노고산 산줄기까지 흔쾌히 두 망막에 들어온다. 이 날은 대기 상태가 아주 좋아서 조망의 질은 완전 최우수급이었다. 2. 온갖 돌탑들이 마중하는 불영암 앞길 (한우물 방향) 3. 돌탑거리를 이루고 있는 불영암 앞길 (칼바위, 벽산5단지 방향) 4. 불영암 석불과 소나무 한우물 옆구리에는 불영암이란 작은 암자가 둥지를 틀고 있다. 한우물을 든든한 후광으로 삼은 이곳 은 해발 310m 고지로 가파른 벼랑에 자리해 속세를 ..
1. 무주 한풍루 무주읍내 남쪽을 흐르는 남대천의 남쪽 지남공원에 한풍루가 팔작지붕을 휘날리며 자리해 있다. (무주시외터미널에서 서쪽으로 2~3분 거리) 한풍루는 이익공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1층은 정면 3칸, 측면 4칸, 2층은 정면 3칸, 측면 2 칸으로 연건평은 154.9평방미터이다. 원래는 무주 관아앞 천변(현 무주우체국 자리)에 있었 는데, 언제 세워졌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1465년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한 성임이 무주를 다녀가면서 한풍루 시를 남겼고, 유순의 시도 전하고 있어 조선 초기나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1530년에 제작된 신증동국 여지승람에는 '한풍루 재객관전(객관 앞에 있다)'이라 나온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으며, 1599년 백호 임제의 아우인 임환이 무주현감으로 부..
1. 시흥4동 순흥안씨양도공파묘역 (남쪽 산자락 묘역) 호암산 북쪽 자락에는 순흥안씨 양도공파묘역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 개국공 신인 양도공 안경공을 비롯해 그의 아들과 손자 등 3대의 묘와 양도공의 부조묘가 자리해 있는데, 안경공 3대가 묻힌 중심 묘역의 남쪽과 동쪽 산자락에도 조선 후기~20세기에 조 성된 후손들의 무덤이 적지 않게 자리하고 있다. 양도공 안경공(1347~1421)과 안순(1371~1440), 안숭선(1392~1452), 안숭신(1395~1441) , 안숭효(1400전후~1460) 등 5기의 무덤과 이들 무덤에 딸린 신도비와 석물 32기, 그리고 그에 딸린 토지 2,247.1㎡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부조묘는 1992년에 이전 중건 했다. 이들 무덤 5기는 조선 초기..
1. 호암산 북쪽 능선길 호암산은 금천구의 오랜 진산이자 대표 지붕으로 석수역 동쪽에서 불영암, 호암산성터, 호압사, 목골산을 거쳐 독산자연공원까지 이어지는 긴 산줄기이다. 즉 금천구의 거대한 동쪽 벽이다. 보통 호암산을 찾으면 호압사와 호압사 동쪽에 솟은 호암산 정상부, 불영암과 한우물로 이어지는 서남쪽 능선길, 삼성산으로 이어지는 동남쪽 능선길, 서울둘레길5코스 주변을 많이 찾는데, 의외로 호압사 이북의 북쪽 능선은 손과 발이 잘 가지 않았다. 호암산은 내 즐겨찾기 뫼의 일원으로 20년 넘게 오지게 찾았음에도 말이다. 북쪽 능선을 처음 가본 것은 2016년 여름이며, 이후로 4~5번 정도 가본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목골산까지 간 것은 딱 2번에 불과하다. 이번 북쪽 능선 더듬기는 햇님의 퇴근시간 관..
1. 호압사 경내 동쪽 느티나무 (서울시 보호수) 호압사 경내에는 500년 이상 묵은 늙은 느티나무가 2그루 전하고 있다. 이들은 약사전에 봉안된 석불좌상과 함께 호압사의 오랜 내력을 밝혀주는 존재들로 서쪽 나무는 높이 7m, 허리둘레 4.2m, 동쪽 나무는 키 11m, 허리둘레 3.6m이다. 2. 붉게 잘익은 경내 동쪽 느티나무 (밑에서 바라본 모습) 3. 호압사 경내 서쪽 느티나무 (서울시 보호수) 4. 호압사 석불좌상(약사불) 호압사의 법당인 약사전에 이곳의 오랜 보물인 석불좌상이 소중히 봉안되어 있다. 그의 정 체는 동방정토의 주인인 약사여래로 문화재청의 예전 지정 명칭은 '석약사불좌상'이었으나 지금은 석불좌상(약사불)으로 갈렸다. 약사여래의 집이라서 건물 이름도 약사전을 칭하게 되었는데, 예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