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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강역사가 마중을 하는 천축사 정문

만장봉 남쪽 자락 360m 고지에 깃든 천축사는 도봉산 서울 구역의 대표적인 고찰(古刹)이다. 이

절은 의상대사가 673년에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그는 인근 의상대에서 도를 닦다가 빼어난 산세

에 감탄해 제자를 시켜 물이 나오는 곳에 암자를 짓게 했다. 맑은 샘물이 나온다는 뜻에 옥천암(玉

泉庵)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그것이 천축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허나 이를 입증할 유물과 기록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그 시절 의상은 문무왕의 허가를 받아 부석

사(浮石寺)를 세우기 이전까지 주로 서라벌 왕경(王京)에 머물면서 화엄종(華嚴宗) 보급에 힘쓰

고 있었다.

 

천축사의 내력이 본격적으로 가슴을 펴는 것은 조선 태조 때이다. 의상의 창건설과 달리 신라와

고려 때 흔적이 전혀 없고, 고려 명종(明宗, 재위 1170~1197) 때 영국사(寧國寺, 도봉서원 자리

에 있었음)의 부속암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 역시 정확하지 않다. 그러니 조선 태조 시

절이나 빠르면 고려 중/후기에 창건된것으로 여겨진다.

 

1398년 태조 이성계는 1차 왕자의 난으로 단단히 뚜껑이 열려 왕위를 2째 아들인 정종에게 던져

주고 함흥(咸興)으로 가버렸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인 도봉산 밑을 지날 때 만장봉 천축사 주변

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피어 올라 직접 그곳을 찾아가 봉우리는 하얗고 꽃은 삼문에 떨어져 길이

붉다는 시구(詩句)를 읊고 절에서 하룻밤 머물렀다고 전한다.

이후 함흥에서 돌아올 때 이곳에 들려 100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절을 중수했는데, 고려 후기에

인도에서 건너온 지공이 나옹화상과 이곳에 들려 '천축국(天竺國) 영축산(靈鷲山)의 일부가 완연

히 이곳에 있구나' 격찬한 일을 승려에게 듣고는 옥천암에서 천축사로 이름을 갈게 했다고 한다.

 

1474년(또는 1470년) 성종의 명으로 절을 중창했고, 명종 시절에는 문정왕후가 화류용상(樺榴

龍床)을 내려불좌(佛座)로 삼게 했다. 1812년에 경학(敬學)이 중창을 하였고, 1816년에는 김연

화(金蓮花)가 불량답(佛糧沓) 15두락을 시주하여 절의 살림이 많이 좋아졌다.

1862년 상공(相公) 김흥근(金興根), 판서(判書) 김보근(金輔根), 참판(參判) 이장오 등이 불량을

희사했으며, 1863년에는 주지 긍순(肯順)이 칠성탱과 독성탱, 산신탱을 조성하고, 1895년에 화

주 성암응부(星巖應夫)가 명성황후와 상궁 박씨 등의 시주로 후불탱과 신중탱, 지장탱을 조성했

으나 관리 소홀로 불화 대부분이 도난을 당했다.

 

1911년 화주 보허축전(寶虛竺典)이 관음탱과 신중탱을 봉안했고, 1931년에 주지 김용태(金瑢泰)

가 천축사로 가는 산길을 확장했으며, 1936년에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바로 그 시

절에 천하 제일의 참선수행도량으로 명성이 높던 무문관이 지어졌다.

1959년에는 주지 용태가 불사를 벌였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대웅전, 독성각, 산신각을 중수

했으며, 요사와 공양간을 신축해 천축사의 왕년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도봉산의 주요 비구니 사찰이자 관음도량으로 명성이 자자하며, 고승들의 수행공간인 무문관을 경

내 북쪽에 두어 참선도량으로 꾸려가고 있으나 수행의 난이도가 아주 최상급이라 도전하는 이가

드물어 그 맥이 거의 끊겼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원통전과 산신각, 독성각, 무문관, 범종각 등 7~8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비로자나삼신불도 및 복장유물, 비로자나삼신괘불도, 목조석가삼존불, 마애

사리탑 등 지방문화재4점과 늙은 부도탑, 천축사 편액 등이 전한다. 또한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목조불단(서울 유형문화유산)이 있는데, 지금은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에 가있다.

 

절이 각박한 산자락에 자리해 있어 그곳에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닦았으며,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채운 터라 경내 확장도 여의치 않다. 그래도 첩첩한 산주름 속의 산사치고는 그런데로 넓은

편이다.

일요일에는 산꾼들에게 점심 공양을 제공하고 있으며, 평소에는 대웅전 1층 앞 쉼터에서 따뜻한 차

와 수분을 제공한다. 그리고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에는 아침~점심 공양밥 외에 떡과 염주 등도

제공하여 부처님오신날 인심도 넉넉한 편이다.

 

2. 청동불과 청동보살상들

천축사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청동불과 청동보살상의 장대한 물결이 두 눈을 놀라게 한다. 거의

4~5단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청동으로 지어진 석가여래상,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 약사여

래 등 다양한 불(佛)과 보살(菩薩)을 집합시켰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생의 시주로 지어진 원불(願佛)

로 근래에 조성된 것인데, 대충 헤아려봐도 150기는 넘어 보인다.

 

3. 천축사 대웅전과 그 너머로 보이는 만장봉

청동불과 보살군상을 지나면 북쪽 건너편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경내가 바라보인다. 경내 뒷쪽에 보이

는 바위 봉우리는 도봉산의 주요 봉우리인 만장봉으로 이곳의 든든한 후광(後光)이 되어준다.

 

4. 큰 바위에 살짝 깃든 마애불

청동불과 보살상 뒤쪽 바위에 마애불이 작게 깃들여져 있다. 그 앞에는 꽃들이 예물로 차려져 있어

그의 높은 인기를 보여준다.

 

5. 마애불 옆에 세워진 3층석탑

파리도 능히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하얀 피부를 지닌 잘생긴 석탑으로 근래 장만했다. 그가 있기

전에 천축사에는 그 흔한 석탑도 없었다.

 

6. 3층석탑에서 경내로 접근하면서 바라본 대웅전

 

7. 우수에 잠긴 늙은 부도탑

고색의 때로 자욱한 부도탑이 옥개석 등 일부만 남은 채 측은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다. 이 땅에 흔한

팔각원당형탑으로 조선 후기 것으로 보이는데, 연꽃잎을 비롯하여 사자와 코끼리 등 동물이 새겨져

있으며, 조각 수법이 수려해 천축사의 왕년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8. 대웅전 앞에 차려진 관불의식의 현장

즐거운 부처님오신날(석가탄신일, 사월초파일)을 맞이하여 대웅전 앞에 관불의식의 현장이 호화롭게

차려졌다. 1년만에 외출을 나온 아기부처 주위를 꽃으로 치장했으며, 중생들은 그에게 물을 3번 껴얹

는 관불의식을 행하고 각자의 민원을 그에게 슬쩍 들이민다.

 

9. 대웅전에서 바라본 천하

천축사는 동남쪽으로 확 트여있어 일품 조망을 자랑한다. 여기서는 도봉산 산주름과 도봉구, 노원구,

수락산, 불암산, 중랑구, 강북구, 아차산 산줄기, 동대문구 지역이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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