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왕산자락길, 황학정, 서촌 늦가을 나들이 ' ▲ 인왕산자락길의 만추(晩秋) 늦가을이 그 절정에 이르던 11월 한복판의 어느 평화로운 날, 서울 도심에 숨겨진 상큼 한 자락길 인왕산자락길(숲길탐방로)을 찾았다. 인왕산자락길은 서울 도심의 영원한 우백호(右白虎), 인왕산(仁王山) 동쪽 자락에 닦인 둘레길로 2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제1코스(2.7km)는 인왕산길을 졸졸 따라가는 길 로 윤동주문학관에서 사직단(사직공원)까지 이어진다. 경사가 완만해 그리 힘들이지 않 고 이동할 수 있으며, 인왕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산길이 여럿 손짓해 언제든 정상 쪽으 로 방향을 틀 수 있다. 다만 인왕산길이 차량 왕래가 빈번하다보니 비록 작은 소음이지 만 종종 적막을 깨뜨린다. 본글의 주인공인 제2코스는 숲길탐방로(..
' 주왕산 늦가을 나들이 ' (절골, 가메봉, 용연폭포, 용추폭포, 주왕계곡) ▲ 대전사에서 바라본 주왕산 ▲ 용추폭포 ▲ 절골계곡 늦가을이 하늘 아래 세상을 곱게 수놓기 시작하던 10월의 한복판에 늦가을 단풍 성지로 격 하게 추앙받고 있는 청송(靑松) 주왕산을 찾았다. 주왕산은 대자연이 경북 한복판에 빚은 크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호남 내장산(內藏山)에 버 금가는 단풍의 대표 성지(聖地)이다. 서울에서 약 600리(옛 10리는 약 5km) 거리로 당일로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좀 넉넉하게 무박 2일 코스로 다녀왔다. 토요일 저녁 10시, 신도림역(1,2호선)에서 일행들을 만나 준비된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주 왕산이 있는 동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늦가을 단풍의 화려한 향연과 아직까지 미답처(未踏處)로 남아있..
1. 군산 동국사 (동국사 대웅전) 군산 도심부인 금광동에는 이 땅의 유일한 왜식 사찰인 동국사가 있다. 구한말 시절 왜열도 애들이 군산 지역에 많이 넘 어와 무질서하게 말뚝을 박았는데, 그때 왜식 불교도 같이 들어와 왜식 절과 포교원이 많이 지어졌다. 동국사는 그 시류 를 타고 생겨난 것으로 1909년 왜인 승려 내전불관이 왜인 일조통의 집을 빌려 지은 포교소에서 시작된다. 1913년 승려 우치다가 군산에 서식하는 왜인들의 지원을 받아 현 자리로 절을 옮겨 금강선사란 간판을 내걸고 본당과 고 리를 만드니 그것이 지금의 동국사 대웅전이다. 그 시절 금강선사는 왜국 조동종 소속의 절로 1919년에 범종과 범종각을 만들었고 1921년에 대문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1932년에 개축을 벌였다. 1945년까지 왜..
1. 군산 이영춘가옥 군산간호대학 교내에 특이하게 생긴 이영춘가옥이 있다. 이 집은 1920년대에 군산 지역 최대 농장주로 악명을 떨친 왜인 구 마모토가 별장용으로 지은 것으로 한식와 양식, 왜식의 건축양식이 뒤섞여있다. 외부 형태는 서양식을 띄고 있으며, 평면구조는 왜식의 중복도형을 바탕으로 양식의 응접실, 한식의 온돌방이 결합되어 있 다. 내부 거실은 바닥이 티크목 쪽맞춤으로 정교하게 짜여져 있으며, 상드리에 및 가구들은 서양에서 수입한 것으로 건축비 가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하게 소요되었을 정도로 고급 자재로 떡칠을 했다. 해방 이후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쌍천 이영춘 박사(1903~1980)이 집으로 사용했는데, 그는 구마모토와 친분 이 있었고, 그를 설득해 지역 농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 여름맞이 산사 나들이 ~ 논산 쌍계사, 송불암 ' ▲ 쌍계사 대웅전 ▲ 쌍계사의 자랑, 대웅전 꽃창살 ▲ 송불암 미륵불 여름이 봄을 몰아내고 제국의 기틀을 다지던 6월의 첫 무렵, 오랜만에 충남 논산(論山)을 찾았다. 논산으로 멀리 발걸음을 한 것은 그곳 쌍계사의 꽃창살이 그렇게나 아름답고 유명하다 하 여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자 함이다. 그래야 나중에 저승에 가서도 꾸중을 듣지 않겠지? 다행히 쌍계사입구까지는 시내버스가 1일 10여 회 오가고 있어 접근편도 벽지치고 양호하 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영등포역에서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에 나를 담아 논산역으로 보냈다. 논산까지는 3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버스 시간에 아직 여유가 있어 논산역 동쪽에 자리한 논산시내버스 종점(덕성여객)으로 이동해 차를 기..
1. 덕수궁(경운궁) 중명전 중명전은 옛 덕수궁의 일원으로 1899년에 지어진 서양식 2층 건물이다. 지금은 덕수궁과 다소 떨어져 있으나 이곳도 엄연 한 덕수궁의 영역으로 덕수궁은 왕년에 지금보다 3배 이상 넓었다.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 덕수궁을 정궁으로 삼아 머물면 서 대한제국의 중심 궁궐로 키웠기 때문이다. 덕수궁을 불리는 과정에서 정관헌과 중명전, 석조전, 돈덕전 등 서양식 건물 도 여럿 지어졌는데, 지금은 석조전과 정관헌, 중명전만 남아있다. 중명전은 대한제국 황실의 도서와 보물을 보관하는 황실 도서관으로 1897년에 계획되어 1899년 완성을 보았는데, 한성부 건축기사로 초빙된 미국 사람 다이(J.H.Dye)의 설계로 1층 건물로 지어졌다. 허나 1901년 11월 화재로 파괴되자 이듬해에 지금처..
' 강동구의 북쪽 지붕, 고덕산 나들이 ' ▲ 광주이씨 광릉부원군파 묘역 봄이 아쉬움 속에 저물고 여름 제국이 서서히 이빨을 드러내던 5월의 끝 무렵, 강동구(江 東區) 암사동과 고덕동 지역을 찾았다. 선사시대 유적지의 성지(聖地)로 추앙을 받는 암사동(岩寺洞) 선사유적지(☞ 관련글 보러 가기)을 먼저 둘러보고 양지마을을 거쳐 고덕산으로 이동했다. 양지마을(양지말)은 암사3동에 자리한 시골 마을로 약 90호 정도가 살고 있다. 마을 북쪽 은 고덕산과 이어져 있고 남쪽과 동쪽, 서쪽은 밭과 주말농장 등의 경작지가 펼쳐져 있으 며 암사동 시내와도 거의 200~300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마을 집들은 상당수 전원주택 스타일로 다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과 뜨락을 갖추고 있어 마을에 들어서면 마치 교 외..
1. 충숙공 이상길묘역 (벽진이씨 충숙공묘역) 한글고비로 유명한 이윤탁한글영비에서 남쪽으로 500여m를 가면 충숙근린공원과 함께 충숙공 이상길묘역이 모습을 드 러낸다. 이상길(1556~1637)은 벽진이씨 집안으로 자는 사우, 호는 동천, 만사이다. 성주에서 태어났으며, 1579년 진사시에 붙었 고, 1585년 문과에 급제하여 풍저창 직장에 제수되었다가 1588년 감찰로서 호조좌랑에 제수되었다. 1590년에는 사간원의 정언 겸 지제교가 되었는데, 정여립 반란 사건과 관련하여 최영경의 국문을 주청하였다가 최영경 의 도당에 의해 모함을 받아 이듬해에 고산 찰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조좌랑으로서 어 가를 호종하여 그 공으로 강원감사 종사관에 제수되었으며, 이후로 병조정랑, 익산..
1. 남지장사 청련암 남지장사 동쪽에 자리한 청련암은 남지장사의 부속 암자이다. 684년에 양개조사가 왕명으로 남지장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지었다고 전하는데, 관련 유물과 기록이 부실한 실정이다. 임진왜란 시절에 사명대사가 지휘하는 승병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했으나 왜군의 공격으로 소실되었으며, 이후 1653년부터 1714년까지 여러 차례 중건했다. 허나 180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08년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경내는 乙 모양의 법당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창고 등 여러 채의 조그만 건물을 지니고 있으며, 법당이 청련암의 전부라 할 수 있는데, 대청과 많은 방을 지니고 있어 법당 및 생활공간의 역할을 했다. 건물 가운데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을 두 고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는데, 이는 승려의 생..
~~~ 서울 도심의 영원한 우백호, 인왕산 나들이 ~~~ ▲ 인왕산 (가운데 봉우리가 정상) ♠ 인왕산(仁王山) 입문 ▲ 인왕산 만수천약수터 봄이 한참 무르익던 4월의 끝 무렵, 일행들과 서울 도심의 영원한 우백호(右白虎)이자 내 즐 겨찾기 뫼의 하나인 인왕산을 찾았다. 인왕산은 10대 시절 선바위 답사를 시작으로 50번 넘게 인연을 지었는데, 낮 뿐만 아니라 야 간(19시 이후)에도 적지 않게 올라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나의 마음을 비추고 있다. 특히 인왕산에서 바라보는 서울 도심 야경(夜景)은 아주 일품으로 꼽힌다. 경복궁역(3호선)에서 출발하여 인왕산길로 들어서 창의문(彰義門, 자하문) 방면으로 가다보면 인왕천약수터로 인도하는 길이 살짝 손짓을 한다. 이 코스는 인왕산에서 가장 잘나가는 약수 로..
1. 녹동서원 향양문(외삼문) 달성군 우록리 산골에 묻힌 녹동서원은 모하당 김충선(1571~1642)을 배향한 서원이다. 김충선은 왜열도 사람으로 왜식 이름은 사야가인데 사야익의 아들로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조부는 사야옥국, 증조부는 사야옥이다. 고향은 와카 야마로 혼인하여 부인이 있었다. 전국시대에 이리저리 끌려나디며 싸우다가 풍신수길(도요토미히데요시)에 의해 왜열도가 어느 정도 통일이 되자 전쟁은 끝났구나 싶었으나 왠걸, 쥐약 먹은 풍신수길이 조선과 명을 공격한다고 난리를 쳐 1592년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가토기 요마사) 휘하의 우선봉장으로 출병하게 되었다. 전쟁에 염증이 나고 평소 조선을 동경했던 사야가는 조선 땅에 들어오자마자 휘하 병력 3000명을 이끌고 경상도 병마절 도사인 박진에게..
1,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원효로 성심여중고 교정에는 구한말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인 예수성심성당과 용산신학교 건물이 있다. 용산신학교 부속 으로 지어진 예수성심성당은 고딕풍으로 지어진 264㎡ 규모의 건물로 언덕 지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자연히 3층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하여 정면(남쪽)에서 보면 3층, 언덕에서 보면 2층으로 보인다. 1899년에 착공하여 1902년 완성을 보았는데, 프랑스 신부인 코스트가 설계했다고 하나 그는 1896년에 사망했으므로 사 망 전에 설계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설계를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회색 벽돌과 붉은 벽돌을 섞어서 쌓은 외벽에 부축기둥을 세웠는데, 전면 2개의 부축기둥을 위로 높게 돌출시켜 수직성을 강조했다. 창문은 뾰족아치창의 고딕양식이 며, 성당의 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