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 북한산 숨은폭포(밤골계곡) ' ▲ 숨은폭포 (윗폭포와 아랫폭포) 여름 제국의 무더위 갑질이 극성이던 8월의 한복판에 일행들과 북한산(삼각산) 뒷통수에 숨 겨진 숨은폭포를 찾았다. 날도 징그럽게 더워서 도심에서 가까운 계곡에서 밤을 담구며 잠시 여름의 핍박을 피하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구파발(舊把撥)에서 가까운 진관사계곡이나 사기막골(효자동계곡)을 염두 에 두었으나 밤골계곡에 숨겨진 숨은폭포가 격하게 땡겨 그곳으로 출동했다. 여름의 기운이 제법 강했던 14시에 연신내(3,6호선)에서 그들을 만나 폭포에서 섭취할 간단 한 먹거리와 막걸리를 구입했다. 그런 다음 서울시내버스 704번(부곡리,송추↔서울역)을 타 고 박석고개와 구파발역, 북한산성입구, 효자비를 지나 효자2통 정류장에..
1. 청운사 앞 호제에 가득 핀 백련 김제 청운사는 전주 덕진공원과 함께 전북 지역의 대표 연꽃 성지로 꼽힌다. 이곳은 하얀 백련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경내 에 있는 하소백련지와 절 입구에 펼쳐진 호제에 백련을 가득 심어 그야말로 백련의 조촐한 세상을 이루고 있다. 백련이 한참 물이 오르는 7월 말 정도에 하소백련축제를 열고 있는데, 교통편은 군산시내에서 군산시내버스 36, 37번이 합 쳐서 1시간 간격으로 절 입구를 오가며, 김제시내에서 김제시내버스 23번(김제역 경유)이 3회 정도 오간다. 그리고 익산시 내버스 13번과 17번(익산역 경유)이 1시간 정도 간격으로 오가며, 대청리 대신에서 내려 10여 분 걸으면 된다. 2. 드넓게 펼쳐진 호제, 그 저수지를 가득 메운 백련의 푸른+하얀 물결 3. 호..
1. 경희궁 뒤쪽에서 바라본 경희궁 숭정전~태령전 구역과 서울 도심(광화문 주변) 정면에 뒷통수를 보인 집이 태령전, 그 너머로 용머리를 내민 집이 숭정전과 자정문, 왼쪽에 온전하게 보이는 팔작지붕 집 이 자정전이다. 2. 경희궁 태령전, 서암 뒤쪽 산책로 3. 영렬천 경희궁 뒤쪽 언덕 숲길에 영렬천이란 조그만 바위샘이 있다. 이곳은 지금은 사라진 경희궁 위선당 뒤쪽으로 물이 늘 마르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그 물도 매우 차가워 초정이라 불렸다. 서암에 있는 샘터와 함께 경희궁의 식수를 책임지던 곳으로 선 조의 글씨를 집자한 영렬천 바위글씨가 샘 위에 새겨져 있다. 4. 지금도 선명하게 남은 영렬천 바위글씨 이곳은 경희궁 위선당 뒤쪽이자 숭정전 서쪽으로 경희궁에서 가장 서쪽 구석이다. (숭정전, 태령전,..
' 도심 속의 상큼한 호수공원, 서서울호수공원(능골산) ' ▲ 서서울호수공원 중앙호수와 소리분수 여름 제국(帝國)이 막바지 위엄을 보이던 8월 끝 무렵에 일행들과 서서울호수공원을 찾았 다. 서서울호수공원은 서울 서남쪽에 생겨난 호수공원으로 그 이름은 익히 듣고 있었다. 비록 나와 서울 하늘을 같이 이고는 있지만 나는 서울 동북쪽 끝인 도봉동(道峰洞)이고 호수공 원은 그 반대인 서남쪽 끝에 있으니 서로의 거리가 무척 멀다. 하여 쉽게 인연이 닿지 않 았었지. 그러다가 이번에 억지로 인연을 갖다 붙여 그를 찾게 되었다. 오후 2시, 신도림역에서 일행을 만나 서울시내버스 662번을 서서울호수공원으로 이동했는 데, 나머지 일행은 까치산역(2,5호선)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왔다. ♠ 그림 같은 호수를 품은 서울 서..
1. 경희궁 태령전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영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다. 원래는 딱히 용도가 없는 잉여 건물이었으나 영조 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 이 건물을 중수해 이곳에 어진을 봉안했다. 왜정 시절에 파괴된 것을 2000년에 서궐도안을 참조해 복원했으며, 현판은 석봉 한호(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해 제작했다. 건물 안에는 근래 모사된 영조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어 건물의 역할과 기능은 여전하다. 2. 태령전에 봉안된 영조의 어진 3. 굳게 닫힌 태령문 (태령전 정문) 태령전은 왕년의 시절에도 궁역 서쪽 구석이었고, 아주 작게 복원된 지금도 서쪽 구석이다. 태령전의 정문인 태령문은 늘 닫혀있기 때문에 여기서 숭정문으로 다시 돌아나가야 된다. 4. 자정전 뒤쪽 바위 (서암 동쪽 바위)..
1. 경희궁 숭정전 숭정전은 경희궁의 중심 건물(법전, 정전)로 1618년에 세워졌다. 경종과 정조, 헌종이 여기서 즉위를 가졌으며, 1926년에 왜정이 조계사에 팔아먹어 조계사로 넘어갔다가 동국대로 이전되어 불당인 동국대 정각원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이곳 숭정전은 1988년에 복원된 것으로 흥화문처럼 복원은 되었으나 완전하게 이전은 하지 않아 숭정전의 원본은 동국대 정각원으로 계속 머물러 있다. 경희궁의 정전이긴 하나 다른 궁궐과 달리 궁역 한복판이 아닌 가장 서쪽 구석에 치우쳐져 있으며, 건물 주위를 행각으로 빙 둘렀는데, 원래보다 작게 복원되어 경복궁, 창덕궁 정전에 비해 협소하다. 그 뒤에는 편전인 자정전이 자리해 있다. 2. 숭정전 돌계단과 석대 돌계단과 석대를 숭정전이 제자리를 떠나고 ..
1. 경희궁 흥화문 경희궁은 덕수궁(경운궁)과 함께 서궐의 일원으로 조선 후기에 이궁으로 바쁘게 쓰였던 곳이다.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 뒤쪽에 복원된 일부만 남아 꽤 초췌한 모습이나 왕년에는 이 주변을 모두 아우르며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을 지녔던 궁궐이다. 그 규모는 현재 덕수궁 이상이었다. 경희궁 자리는 인조의 아비인 원종(덕흥대원군)의 사저가 있던 곳으로 광해군은 창덕궁을 중건하고 인왕산 자락 필운동 에 인경궁과 원종 사저 자리에 경덕궁(경희궁)을 세워 왕실의 위엄을 드높이고자 했다. 경덕궁은 1617년에 짓기 시작해 1623년에 완성을 보았으며,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같은 발음이라 1760년 경희궁으로 이름이 갈렸다. 도성 서쪽에 있어서 간단하게 서궐이라 불렸으며, 인조부터 철종까지 10..
1. 화양계곡 와룡암 와룡암은 화양9곡의 제7곡으로 계곡가에 길게 누운 바위인데, 그 모습이 용이 꿈틀거리며 누워있는 것처럼 보여 와룡암이 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바위 피부에 '와룡암' 바위글씨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으니 이곳에 왔다면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한문만 알면 의외로 찾기는 쉬움) 2. 계곡가에 길게 누운 주름진 와룡암 3. 와룡암 한복판에 깃든 와룡암 바위글씨 4. 와룡암에서 바라본 화양계곡 상류 쪽 (학소대 방향) 5. 학소대 학소대는 화양구곡의 제8곡으로 청학이 집을 짓고 새끼를 길렀다고 전한다. 청학이 과연 이곳에 살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계곡가에 우뚝 솟은 기암절벽에 노송이 우거져 있어 청학도 흔쾌히 찾을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옛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승지에 보통 ..
1. 금사담 금사담은 화양계곡(화양9곡)의 제4곡으로 화양9곡 식구 중 가장 빼어난 곳으로 찬양을 받고 있다. 금사담이란 이름은 수정 처럼 맑고 깨끗한 물 속에 잠긴 모래가 마치 금가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계곡에는 암반과 바위들이 즐비하며 물놀이 에 좋게 모래밭까지 갖추고 있어 천연 풀장을 이룬다. 계곡 건너 벼랑에는 암서재란 정자가 있는데 그곳은 송시열이 화양동에 은거할 때 지은 별장이다. 2. 금사담과 늘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암서재 암서재는 노송이 울창한 층암벼랑 위에 닦여진 팔작지붕 정자이다. 송시열이 별장으로 지어 팔자좋게 머물던 곳으로 그는 여기서 '시냇가에 바위 벽이 열리어 / 그 사이에 집 1간을 지었네 / 고요히 앉아 성인의 교훈 받들어 / 한치라도 더위잡고 올라 보 려네' 시..
1. 만동묘 성공문에서 바라본 화양서원 경내 가파른 계단 밑으로 보이는 맞배지붕 문은 만동묘의 외삼문인 추양문이다. (왼쪽은 존사청과 풍천재, 오른쪽은 증반청) 2. 만동묘 내부 만동묘는 화양서원의 일원으로 서원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송시열의 유언으로 1704년에 세운 명나 나 신종, 의종의 사당으로 황색 단 위에 그것들의 위패를 봉안했다. 보통 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그 서원에서 중심적으 로 띄워주는 존재의 사당이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엉뚱하게도 명 신종, 의종의 사당을 두어 망해버린 명에 대한 꼴사나운 꼴통 사대주의를 징그럽게 보였다. 3. 만동묘 앞 석주 지역 유생과 조선 조정이 얼마나 만동묘를 애지중지했는지 키가 큰 석주까지 닦아놓아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돋 ..
1. 화양계곡 만동묘 화양계곡(화양구곡) 제4곡인 금사담 주변에 만동묘와 화양서원 묘정비가 있다. 17세기 문인이자 성리학의 대표급 인물로 쓸데없이 큰 이름을 지닌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화양계곡 경치에 퐁당퐁당 반해 이곳에 별서를 짓고 팔자좋게 머문 인연이 있는데, 그는 조정에 출사를 했다가 그만두고 이곳에 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고 전한다. 그는 왕세자 책봉 문제로 숙종에게 상소를 했다가 제주도로 귀양을 갔고, 심문을 받고자 상경하는 중에 정읍에서 숙종이 내린 사약을 먹고 82세의 나이로 강제 사망했다. 그는 골로 가기 전, 자신의 열성제자였던 수암 권상하에게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사당을 지을 것을 요구했다. 하여 권상하와 그 떨거지들은 아름다운 화양계곡에 명에 대한 꼴통 사..
~~~~~ 초여름 산사 나들이, 수락산 학림사 ~~~~~ ▲ 학림사 경내 ▲ 학림사 석불좌상 ▲ 수락산 여름 제국의 무더위 갑질이 슬슬 고개를 들던 7월의 첫 무렵, 서울의 동북쪽 지붕인 수락 산을 찾았다. 수락산(水落山, 638m)은 그의 그늘인 상계1동에 8년을 살면서 수없이 안겼던 뫼로 지금은 도봉산(道峯山) 그늘인 도봉동에 살고 있지만 가끔식 중랑천(中浪川)을 건너 수락산의 품 을 찾는 편이다. 수락산에는 다양한 코스가 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학림사로 올라가기로 했다. 지하철 4호선의 북쪽 종점인 당고개역에서 상계3,4동 달동네를 가로질러 수락산의 품으로 들어섰 는데, 길이 좀 복잡하긴 해도 햇갈릴만 하면 이정표가 나타나 길을 안내하니 헤맬 염려는 거의 없다. 달동네를 벗어나니 여름 제국(帝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