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남한산성 제2남옹성~제3남옹성 구간남한산성 남쪽 구간은 남문에서 제1남옹성, 제2남옹성, 제3남옹성을 거쳐 동문으로 이어진다. 남문에서 제1남옹성과 제3남옹성 이후에서 동문 구간은 경사의 패기가 좀 있으나 일단 그곳을 오르면 완만한 성곽길이 오르락 내리락 이어진다. 남한산성이 유명 관광지로 찾는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으나 남쪽 구간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늘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 2. 군포터군포는 성을 지키는 초소 건물이다. 남한산성에는 125개의 군포가 설치되어 산성을 꼼꼼히 지켰는데, 그 많은 군포는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모두 사라지고 다들 터만 남은 실정이다.이곳 군포는 약간 높고 평탄한 대지에 닦여진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이었다. 집 벽은 토석벽으로 닦았으며,..

1. 제1남옹성과 제2남옹성 사이에 자리한 성문 (성문 안쪽)이 성문은 남한산성에서 검단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통행을 위해 근래 닦여진 것이다. 산성 안쪽은 이렇게 터널 모습이고, 산성 바깥은 홍예문처럼 해놓았는데, 기존 성곽과 너무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2. 검단산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그 임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한산성(제1남옹성~제2남옹성 구간) 3. 어색한 홍예문 모습을 보이는 제1남옹성과 제2남옹성 사이 성문 (성문 바깥쪽) 4. 동쪽으로 달려가는 남한산성 남쪽 성곽남한산성은 수도권 유명 관광지이자 답사 및 등산 명소로 무지하게 바쁘게 산다. 하지만 남문~서문~북문, 수어장대 주변, 동문 주변, 산성로터리, 남한산성로에만 사람들이 크게 몰릴 뿐, 그 외에는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이번에..

1. 남한산성에서 검단산(536.4m)을 이어주는 임도남한산성 남문 안쪽에서 검단산을 이어주는 임도이다. 성남 약사사에서 동쪽 산길을 10여 분 오르면 이 임도와 만나는데,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검단산과 남한산성에 딸린 신남성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 가면 남한산성 중심부와 제1남옹성으로 빠진다. 나는 여기서 제1남옹성 방향 북쪽 길을 택했다. 2. 남한산성 제1남옹성남한산성 남쪽 성곽(남문~제1/2/3남옹성~동문 구간)에는 3개의 옹성이 닦여져 있다. 옹성은 성문이나 성곽 앞에 둘러진 성곽으로 성문과 성곽 수비력 증대를 위해 설치하는데, 이곳 제1남옹성(제1옹성)은 기존 성곽에서 남쪽으로 160m까지 길게 옹성을 쌓았다. 이 옹성은 1638년에 조성된 것으로 옹성 내부에 장대가 설치되어 남한산성 정상부인..

1. 성보전 바깥에 보관된 기와조각들성보전은 약사사의 보물 창고로 이곳에서 소유하고 있는 문화유산과 오래된 서적, 여러 불상과 보살상, 탱화, 절을 꾸리는데 공헌을 한 승려와 신도의 사진들, 사회에서 받은 여러 상장을 머금고 있다. 절을 세운 석인왕 대종사를 비롯해 절 승려와 신도들이 수집하거나 기증한 것들로 1999년 대웅보전 신축 공사 때 발견된 옛절에 기와조각와 도기, 자기 파편도 있다.약사사 자리에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의 흔적으로는 깨진 기와조각와 도기와 자기 파편, 석탑 등이 있으며, 석탑은 발견된 부재를 적당히 이어붙여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 탑은 경내에서 만덕3층석탑이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2. 유리막에 들어있는 옛 절터의 도기, 자기 파편과 여기저기서 수집한..

1. 약사사 적멸보궁 앞 3층석탑남한산 약사사는 남한산 남쪽 자락 270m 고지에 둥지를 튼 현대사찰이다. 남한산 자락이지만 절에서는 남한산 약사사라 하지 않고 '만덕산 약사사'를 칭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옛 절터가 있었다.1967년 3월 여래종 승려인 석인왕 대종사가 이곳을 접수해 절을 세워 한흥사라 했는데, 한흥사는 남한산성에 있던 절의 하나로 20세기 이후에 사라졌다. 하여 그 한흥사를 재건한다는 명분으로 그 이름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다가 1968년 약사여래입불상을 봉안하면서 절 이름을 약사사로 갈았다. 1999년 대웅보전을 새로 지었으며, 한국불교 여래종의 본산으로 여래종 종정이 머물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보전과 범종각, 성모전, 적멸보궁, 약왕전 등 10동 정도의 건물을 지..

' 울산 태화강 나들이 '(태화루, 태화강 십리대숲, 태화강 국가정원) ▲ 울산의 젖줄, 태화강 (태화루 주변) ▲ 태화강 십리대숲 ▲ 태화강 국가정원 묵은 해가 저물고 새해가 열리던 1월의 첫 무렵, 남동임해지역의 중심 공업도시인 울산 (蔚山)을 찾았다. 전날 부산 해운대(海雲臺)에서 1박을 머물다가 요즘 크게 뜨고 있는 태화강 십리대숲이 무척이나 궁금하여 다음날 아침 울산 땅으로 출동했는데, 그 십리대숲을 중심으로 태화 강 국가정원이 ..

1. 십리대숲 은하수길 2. 대나무숲길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본 푸른 겨울 하늘 3. 대나무 울타리와 대나무 줄기를 쌓아놓은 곳 4. 어두운 대숲 너머로 살짝 보이는 바깥 세상 5. 태화강 십리대숲 은하수길의 서쪽 종점 6. 오산 만회정으로 이어지는 대숲길 7. 오산못 분수대와 길게도 펼쳐진 십리대숲 8. 만회정 (오산 만회정) 9. 만회정 주변 태화강 산책로 10. 만회정에서 바라본 태화강 (삼호교 방향) 11. 자라 암각화 12. 학 암각화 13. 관어대 바위글씨 14. 관어대에서 바라본 태화강 (삼호교 방향) 15. 오산못, 수생침상원 주변 산책로 16. 십리대숲을 따라 살짝 구부러진 수생침상원 주변 산책로 17. 십리대숲 은하수길 북쪽에 닦여진 수생침상원 (수생습지) 18. 십리대..

1. 울산의 젖줄, 태화강 (태화루 주변) 2. 태화강 십리대숲 3. 태화강국가정원 4. 울산 태화루 5. 태화루 대문(대문채) 6. 태화루 현판 7. 태화루 내부 8. 태화루에서 바라본 태화강과 태화교, 신정동 지역 9. 태화루에서 바라본 태화강과 십리대숲(태화강 국가정원) 10. 태화루와 돌담이 둘러진 남쪽 산책로 11. 강변 벼랑에 깃든 모감주나무 군락 12. 태화루 서쪽 산책로 13. 태화강 강변 산책로에서 바라본 태화루와 용연 14. 태화강 강변 산책로에서 바라본 태화루 주변과 태화강, 신정동 지역 15. 태화강 십리대숲 16. 태화강 십리대숲 동쪽 구간 (대숲 북쪽 길) 17. 태화강변 습지와 징검다리 18. 갈대들이 펼쳐진 십리대숲 수변 습지 19. 태화강의 남과 북을 이어주는 ..

1. 남한산 약사사를 찾아서 (약사사로 인도하는 숲길)남한산 남쪽 자락 성남시 구역에는 백련사와 덕운사, 약사사 등 3개의 현대사찰이 있다. 백련사는 양지동 남한산성입구에서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어서 여러 번 인연이 있으나 덕운사와 약사사는 딱히 갈 기회도, 갈 구실도 없어서 계속 미답처로 버려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약사사에 깃든 지장시왕도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크게 구미가 당겨 그곳을 찾아나섰다.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 2번 출구 밖 남한산성입구역 정류장에서 은행동, 양지동으로 가는 서울452, 성남33-1, 성남51, 성남240, 하남30, 성남55, 성남720-1A번 등을 타고 남한산성입구 정류장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올라가야 되는데, 절까지 차량이 마음놓고 바..

1. 순천 팔마비순천 도심인 순천행동우체국 앞에는 순천 지역의 오랜 명물이자 자랑거리인 팔마비가 있다. 팔마비는 순천 시내에 들어올 때마다 거의 꼭 봤던 존재로 버스 차창에서 보기도 하고, 거리를 걸으면서 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사진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팔마비에 사연은 대략 이렇다. 고려 중기인 13세기 초에 승평부사로 '최석'이 부임했다. 승평은 현재 순천 고을의 예전 이름이라고 하는데, 승평부는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고을 수령에게 말 8필을 선물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말 8필이면 지금 시세로 따지면 1~2억은 능히 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지역 백성들의 고충이 컸다. 최석이 승평부사 임기를 마치고 비서랑에 임명되어 이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관례대로 고을 백..

1. 아차산 주능선 아차산3보루~아차산5보루 구간 (서울둘레길5코스)아차산4보루에서 아차산 주능선길(서울둘레길5코스, 깔딱고개~광나루역 4.6km)을 따라 남쪽으로 10여 분 가면 아차산 정상부를 이루는 아차산3보루에 이른다. 3보루를 지나면 아차산5보루까지 완만한 능선길이 펼쳐지는데, 능선길에 소나무 등 수목이 울창하며, 산길 좌우로 일품 조망이 따라다녀 두 망막을 제대로 호강시킨다. 2. 아차산5보루아차산5보루는 해발 267m 봉우리에 둥지를 튼 보루로 둘레 158m, 내부 면적은 1,818㎡ 정도이다. 봉우리를 활용해 보루를 다졌는데, 보루 성벽은 세월의 격한 흐름에 죄다 휩쓸려 사라지고 겨우 흔적 일부만 남은 실정이다. 북쪽 비탈면에 석축 일부가 남아있으나 보존을 위해 흙으로 덮었으며, 보루를 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