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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청동비를 품은 어필각
1칸짜리 맞배지붕 비각인 어필각에 소중히 깃들여져 있는 삼청동비는 높이 114cm, 폭 55cm, 두께
33cm의 작은 비석이다. 조성시기는 성수산 산신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알려진 것이 없는데,
전면에 삼청동 3자가 행초체로 쓰여있고, 글자 안에 주묵을 칠했다. 그리고 그 좌측에 '태조대왕필
적' 6자가 추가로 쓰여있다.
1904년에 작성된 '운수지'에는 태인현감(정읍 태인면) 손병호가 삼청동비를 상이암 옆으로 옮기고
어필각을 세웠다고 나와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상이암에서 기도를 한 인연으로 나라를
세우고 제왕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기념으로 태조 이성계가 남긴 비석이라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나 이성계가 이곳과 인연이 있는 것은 거의 사실이다.
2. 어필각에 깃든 삼청동비
태조 이성계가 직접 글씨를 남긴 비석이라고 하나 확실한 것은 없으며, 조선 중~후기에 제왕의 명령
으로 태조 이성계의 글씨를 참조하여 비석을 세우거나 이곳을 방문한 왕족이나 관리, 선비들이 태조
이성계를 기리고자 그의 글씨를 참조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점차 태조 이성계가 세운 비석으
로 둔갑된 것이다.
3. 삼청동비 뒷쪽에 있는 큰 바위
시커먼 바위 피부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바위글씨들이 가득 깃들여져 있다. 상이암이 태
조 이성계와 인연이 깊은 곳이고 천하 명찰이라 왕족과 사대부, 선비들까지 앞다투어 이곳을 성지처
럼 다녀갔다.
4. 삼청동비를 지닌 어필각과 그 뒤쪽에 병풍처럼 자리한 큰 바위(바위 이름은 없음)
5. 상이암의 법당인 무량수전
성수산 서쪽 자락 산주름에 깃든 상이암은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875년에 부동산 전문가로 명성이 높
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절이 들어앉은 성수산은 임실의 주산이자 대표 지붕으로 장수 팔공산 준령이 달려와 멈춘 세 가닥 중
힘찬 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호남의 미목(눈썹과 눈)으로 8명의 제왕이 나올 길지로 추앙을 받은 명산
이다. 하여 구룡쟁주지지 즉 9마리의 용이 구슬을 두고 다투는 형국이라고 한다.
도선국사는 성수산을 둘러보고는 '천자봉조지형'이라 크게 탄복을 하고 절을 세우니 그것이 상이암의
전신이라는 도선암이다. 도선은 왕융, 왕건 부자가 있는 송도를 찾아가 왕건에게 성수산에서 100일
기도를 권했다. 하여 왕건은 이곳을 찾아 100일 기도 끝에 나라를 세워 제왕이 된다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왕건은 너무 기뻐서 절 주변 바위(또는 비석)에 환희담 3자를 새겼다고 한다.
이후 고려 말에 무학대사도 이성계에게 상이암을 찾아가 기도를 할 것을 권유, 이성계도 100일 동안
기도를 하니 역시 새 나라 건국을 이룰 것이라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 또한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
와 손을 귀 위로 올리며 성수만세라 3번 외쳤다고 한다. 이에 크게 감동을 먹은 이성계는 삼청동 글
씨를 남겨 비석에 새겼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성수산은 천하 제일의 생왕처로 찬양을 받는다. 구룡
지지인 이곳은 군신조회형으로 제왕 앞에 신하들이 조례를 하는 형국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산세가
좋으니 천기와 지기로 인해 생기가 늘 넘친다고 한다.
하지만 상이암의 태조 왕건, 태조 이성계 설화는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이다. 솔직히 신라 후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는지도 확실치 않고, 저 머나먼 북쪽에 사는 왕건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기도를 할
이유가 없다. 이성계 같은 경우는 1380년 그 유명한 황산대첩으로 왜구들을 싹 쓸어버리고 전주로 오
다가 이곳에 잠시 들려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마치 100일 기도를 하고 무엇을 했
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크게 늘린 것이다. 그것도 모잘라서 이곳과는 관련도 없는 고려 태조 왕건까지
등장시켜 그도 흔쾌히 찾아와 기도를 했고 그 결과 새로운 나라를 건국했다는 식으로 천하 제일의 기
도도량임을 크게 내세운다.
1394년 각여선사가 중수해 상이암으로 이름을 갈았다고 하며, 1894년 동학운동 시절 병화로 파괴되
어 1909년 김대원이 중건했다.
고약한 왜정 때는 의병장 이석용이 성수산과 상이암을 근거로 의병활동을 전개했는데, 이를 파악한
왜군이 상이암을 공격해 절을 불질러버렸다.
1912년 대원이 재건했으나 1950년 6.25 때 파괴되었으며, 1958년 임실군수 양창현을 중심으로 한
상이암 재건위원들이 법당과 요사를 세웠다. 이후 2002년 동효가 상이암을 크게 손질해 지금에 이른
다.
천하 명찰이자 유명 기도처로 명성을 얻고 있는 상이암에는 법당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산신각, 칠성
각, 요사채 등 6~7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부도 3기가 있
다. 그 외에 삼청동비와 환희담 바위글씨, 청실배나무 등의 늙은 존재들이 있어 고색의 내음도 그런데
로 풍긴다.
6. 밑에서 바라본 칠성각과 늘씬하게 솟은 전나무
7. 상이암 청실배나무
이곳 청실배나무는 600년 이상 묵은 나무이다. 조성 시기가 아리송한 삼청동비와 환희담 바위글씨를
제외하면 경내에서 가장 늙은 존재로 이성계가 여기서 백일 기도를 올린 기념으로 심었다고 하는데,
나이를 보면 이성계가 이곳을 다녀간 1380년과 얼추 비슷해 정말로 그가 심었을 가능성도 있겠다.
청실배나무는 산돌배나무와 비슷한 종으로 절과 서원에서 향사에 올릴 청실배를 충당할 목적으로 많
이 심었다.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려 지금처럼 성장했으며, 봄이면 하얀 배꽃이 가득 피어난다. 하
지만 나는 늦겨울에 왔기 때문에 배꽃은커녕 겨울 제국에게 싹 털려 가지만 앙상한 가련한 모습을 보
게 되었다.
8. 상이암 부도
상이암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부도 3기가 경내에 전하고 있다. 이들 부도탑은 조선 중기 것으로
삼청동비와 환희담 바위글씨를 제외하고 가장 늙은 인공물인데, 오른쪽 부도는 주인이 전하지 않으
며, 왼쪽에 부도탑은 혜월당과 두곡당탑이다. 혜월당탑은 팔각원당형 탑으로 높이는 194cm이며, 두
곡당탑은 석종형탑으로 높이는 126cm이다. 혜월당과 두곡당에 대해서는 전하는 것이 거의 없다.
9. 혜월당탑과 두곡당탑 (상이암 부도)
상이암 부도는 혜월당탑과 두곡당탑은 전북 문화유산자료, 주인을 모르는 오른쪽 부도탑은 전북 유형
문화유산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같은 곳에 있는 부도탑 3형제임에도 별도의 지정문화재 등급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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